시감상-굴 소년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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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소년의 노래
1. 들어가며
이기성의 첫 시집 『불쑥 내민 손』과 두 번째 시집 『타일의 모든 것』을 이어서, 이기성의 시는 일상을 보고 있으면서도, 일상의 이면을 파헤치며 악몽과도 같은 무언가를 포착한다. 시인의 날카로운 시선은 무난히 흘러가는 일상 속에 잠자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보고 있으며, 그 그림자는 우리가 알면서도 무시해 왔던 슬프고 괴로운 ‘만인의 비밀’이다. 인지할수록 우리에게 괴롭고 씁쓸한 기억을 가져다주는 ‘비밀’을, 우리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잊어버리고 지낸다. 시를 위시한 문학작품이 우리가 잊고 지냈던 아픈 ‘비밀’을 언어를 통해 다시금 상기하게 하지만, 특히 이기성의 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풍경을 통해 그 시선의 프레임을 비틀고 일그러뜨려 그 풍경에 내재한 그림자를 보여준다. 시인이 만들어낸 이 反풍경은 황량하고 메마른 폐허 같다. 이기성 시집 『타일의 모든 것』해설
무엇보다 이 反풍경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오히려 밀접하다고 할 수 있는 일상이므로 더욱 가슴 아프다.
이번에 분석할 시 「굴 소년의 노래」역시 마찬가지다. 시인은 팀 버튼(Tim Burton)의 작품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의 내용을 토대로, 일상의 이면에 묻혀 흔히 무시되어 버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의 욕망, 이를 바라보는 슬픔을 보여주고 있다. 본래 이기성의 시 「굴 소년의 노래」만을 두고 분석해야 하겠지만, 시의 내용 전반이 팀 버튼의 작품과 밀접한 연관이 되어 있기에 시 자체의 분석에 앞서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을 우선 검토해보도록 하겠다.
2.「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참고자료 참조.
참고자료에 실린 팀 버튼의「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은 머리가 거대한 굴로 되어 있는 소년의 비극적인 이야기다. 아이를 원했던 부부였지만, 낳은 것은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장애를 가진, 인간이지만 인간이라고는 하기 힘든 아이였다. 부부는 굴 소년 샘이 도무지 마음에 차지 않았고, 샘은 늘 소외받으며 살아간다. 어느 날, 비릿한 냄새가 나면 아들 생각이 난다는 여자는, “우리 잠자리가 이렇게 된 건 저 아이 때문”이라며 남편과 함께 의사를 찾아간다. 의사는 굴을 먹으면 정력에 좋다는 말과 함께 아들을 잡아먹을 것을 권유하고, 남자는 굴 소년의 머리를 열어 마셔버린다. 부부는 바닷가 모래밭에 아들을 묻었지만 돌아서는 순간 밀물의 파도에 쓸려가 버리고 그들도 이내 샘을 잊어버린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부부는 성관계를 가지며, 이번에는 차라리 딸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느 부모나 다 건강한 아이를 원하고, 자신의 아이가 행복했으면 한다. 자신의 아이를 사랑해주고, 타인에게도 사랑받았으면 한다. 하지만 그런 아이가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장애를 가진 아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도의적으로는 물론 사랑해야 마땅하겠지만, 우리들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정상적이지 않은 아이 그 자체를 순수하게 사랑해줄 수 있을까? 팀 버튼의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을 읽고 나면 부모의 행위에 분노하게 된다. 그들은 샘을 사랑하지 않았고, 때로는 ‘조개 같은 녀석’ 이라고 부른다. 또한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자식을 잡아먹는다. “두 사람은 서둘러 바닷가 모래밭에 아들을 묻고는 / -한숨 섞인 기도와 눈물 섞인 울음으로- / 새벽 3시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의 부모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은 이곳에서 드러나나, 그 또한 집에 돌아오자마자 잊어버리는 것이다. 작중 굴 소년의 부모는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그리고 고통의 해방을 위해 자식을 죽여 버리는 인물이지만, 그 모습은 너무도 현대적인 인물과 닮아있다. 소중한 존재일지라도 맘에 차지 않으면 쉽게 내다버리고 ‘대체품’을 찾는, 때로는 냉혹하며 이해타산적인 그들의 성질은 그들을 보고 욕하는 우리와 몹시도 닮았다. 우리 마음의 이면에, 그런 점이 아주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3. 작품 분석
이제 이기성의 시 「굴 소년의 노래」를 읽어보자. 해괴하고 알 수 없었던 시의 전반적인 내용은 앞서 분석한 팀 버튼의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의 내용을 많이 따르고 있다. 시는 팀 버튼의 작품 이후의 장면을 상상하여 쓰이고 있는데, “굴 소년은 굴 소녀와 같군요.”라는 말에서 드러난다. 팀 버튼의 작품에서는 ‘굴 소녀’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작품 끝에 굴 소년의 어머니가 속삭이는 “딸을 낳았으면……”이란 문구에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시인은 이 마지막 문구를 그들이 또 다시 ‘굴 소녀’를 낳았다고 해석했다. 그러면 시에서 드러난 ‘굴 소년’은 앞서 장남인 굴 소년이 아니라 ‘굴 소녀’에 이어 낳은 ‘굴 소년’이 된다. “머리가 하얀 굴 소년의 아버지는 소주를 마시고, 굴 소년의 엄마는 다시 굴을 임신했군요.” 라는 부분에서, 그들 부부는 몇 차례나 정상적인 아이를 낳기 위해 애써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그간 낳은 ‘굴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시에 등장하는 ‘굴 소년’은 “차고 무뚝뚝하”며, “좁은 골목에서 혼자 공을 차는” 외로운 아이다. 뿐만 아니라 “전봇대에 붙”고 거울에 눌러 붙으며, “발가락과 손가락이 없고 말이 없고 눈물이 없”는 그야 말로 사람보다 바다생물인 ‘굴’에 더 가깝다. 그들 부부가 낳은 ‘굴 아이들’은 갈수록 사람보다는 굴에 더 가까운 행세를 하고 있으니, 보다 사람에 가까웠던 팀 버튼 작품의 굴 소년조차 거부했던 그들 부부가 ‘굴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을지는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들 부부에게 있어서 ‘굴 아이들’은 자신의 인생에 걸림돌이자 행복을 방해하는 ‘저주스러운 것’과도 같을 것이다. 팀 버튼의 작품에서 그들 부부가 장남인 굴 소년 ‘샘’을 대하는 태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어두운 방에서 굴 소년의 부모는 눈물을 흘렸어요. 낡고 녹슨 거울에서 굴 소년을 떼어내기 위해.” 라는 문구에서 굴 소년의 부모가 흘린 ‘눈물’은 자기 자식을 생각해서 흘린 눈물이 아니다. 그들이 이제 도무지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는 ‘굴 소년’을 보고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린 것은 맞지만 어디까지나 그 눈물의 대상은 자식이 아니며 그들 ‘자신’에게 있다. 몇 차례 정상적인 아이를 낳기 위해 애쓴 자신들에게 주어진 저주받은 운명, 그 고통과 서러움에 북받쳐 흘린 눈물인 것이다. 그들 부부는 ‘굴 아이들’을 자기들의 ‘소중한 자식’으로 보지 않았으며, ‘사람’으로도 보지 않았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굴 아이들’을 언제나 대체 가능한, 불필요하면 언제든지 내버려도 되는 ‘물건’으로 취급했다. “물렁한 굴 소년은 굴 사탕과 같”고, “발가락과 손가락이 없고 말이 없고 눈물이 없”다는 말과 시인이 그들 가족을 지켜보면서 슬프게 흘린 “그것은 왜 녹색의 심장을 쩍 갈라지게 할까요?”라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다.
“여보세요, 어젯밤에 사라진 굴 소년은 나의 입 속에 있군요. 물컹이는 탄식을 씹으며 우리는 같이 굴 소년의 노래를 합시다. 지구의 검은 얼굴에 딱 붙은 우리는,”
시 후반부의 “여보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시적 상황은 동화적 상상력에서 환기되어 화자가 앉아 굴을 먹고 있는 현실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여기서 시인이 시선을 돌려버리면 시는 팀 버튼의 작품 그 이상의 메시지를 담지 않는다. 시인은 “물컹이는 탄식을 씹으며”, “굴 소년의 노래”를 하는 화자를 통해 그 시선을 확장시킨다. “지구의 검은 얼굴에 딱 붙은 우리는,” 이라는 화자가 노래하는 ‘굴 소년의 노래’는 어디선가 인용된 문구가 아니다. 그렇기에 이어질 말을 알 수도 없다. 하지만 시인은 딱 저 반 소절의 ‘노래 가사’를 통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부 말하고 있다. 시인이 새기고 화자가 노래하는 “지구의 검은 얼굴에 딱 붙은 우리”는, 시 전반에 수도 없이 표현되는, ‘사물’이나 마찬가지인 ‘굴’이다. 필요에 따라 낳고, 필요에 따라 ‘폐기’되는 ‘굴’. 화자는 앞서 부부의 손에 또 다시 ‘폐기’되는 굴 소년을 보면서 “그것은 왜 녹색의 심장을 쩍 갈라지게 할까요?”라고 슬프게 읊조린다. 이 “녹색의 심장”은 그들을 지켜보고 슬퍼하는 화자를 비롯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며, 이는 우리들 역시 “녹색의 심장”을 지닌 ‘굴’과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굴 소년’을 비롯한 ‘굴 아이들’은 그들 부부의 행복, 즉 욕망을 위해 사물처럼 폐기되었다. 우리는 그들을 손가락질하며 인간의 도의조차 저버린 놈들이라고 욕하겠지만, 팀 버튼의 작품 분석에 앞서 언급했듯이 그들의 행동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무리 소중한 존재라도 자신들에게 필요가 없으면 가차 없이 내버리고 대체품을 찾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이익과 욕망을 좇으며 인간, 아니 생명의 존엄성조차 짓밟고 발판삼아 理想의 사과를 따먹으려 하는 행위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무엇보다 무시무시한 것은 우리들이 그런 잔혹한 행위를 하고 있다는 인식 그 자체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인은 그런 현대인의 극단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굴 소년 이야기’를 앞세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첫 번째 충격을 주었고, 이어 우리들이 그들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며 두 번째 충격을 주었다. 이 충격은 스스로가 깨끗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추악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거울’이 될 것이다. 이 거울은 “낡고 녹슨 거울”이며 그 탁한 반사면에 비치는 우리의 모습은, “녹색의 심장”을 가진 ‘굴’과 같을 것이다. 우리들은 이미 무의식적으로 서로서로를 굴과 같은 ‘사물’처럼 대하고, 때로는 우리 자신마저 수단과 목적을 위해 소모할 수 있는 굴과 같은 것으로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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