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 - 영화 피아니스트 에서 묘사되고 있는 예술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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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아니스트 에서 묘사되고 있는 예술의 가치
원래 ‘아우슈비츠를 보고도 음악을 논할 수 있었는가’는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계열의 문인들이 했던 ‘아우슈비츠를 보고도 서정시를 논할 수 있는가’에서 따온 제목이다.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은 폴란드의 한 피아니스트가 세계 2차대전에서 생존한 이야기이다.
영화에서 우리가 고찰해봐야 할 문제는 ‘주인공은 그런 한계 상황 속에서도 피아노 연주를 갈망했는가?’이다. 그는 게토 지역에서 도망쳐 나와 독일인 번화가 지역에 숨어 살게 되는데, 숨어살게 된 집에서 사용하지 않아 먼지가 잔뜩 낀 피아노를 보고, 소리를 내면 죽게 되므로 차마 직접 연주는 하지 못하고 피아노를 치는 흉내만 낸다. 그 곳에서 몇 달 간을 지내면서 폭격이 일어나는 밤에는 소파에 누워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피아노를 치는 상상을 한다. 본격적인 연합군의 공격이 시작되고 그가 숨어살던 건물이 폭격을 당하자 독일군 병원으로 도망친다. 독일군 환자들의 고름이 담긴 물을 마시면서도 그는 건물 안에서 피아노를 발견하자 또 피아노를 치는 상상을 한다. 그러나 독일군 병원도 폭격을 맞아 무너지게 되자 다른 건물로 대피하는데, 그 곳에서 자신을 살인할 자유를 갖은 독일군 장교를 만나게 된다. ‘직업이 뭐냐’라는 독일군 장교의 엉뚱한 질문에 그는 ‘피아니스트’라고 답한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던 독일군 장교는 빈정거리는 태도로 피아노를 쳐보라고 권유하고, 주인공 피아노를 친다. 그 연주 덕분에 독일군은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아 퇴각할 때까지 그에게 음식을 제공한다.
어떻게 주인공의 ‘예술에 대한 열정’이 가능했는가? 나는 2년 전에 보았던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폴란드 예술가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하나 언급하겠다. 당시 아우슈비츠에 유태인들이 모이자 독일군측은 그들 가운데서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을 축출한다. 그리고 나머지 유태인들이 일을 할 때 그들의 작업능력을 높이기 위해 ‘모차르트’의 음악을 연주하라고 지시한다. 연주에 참여한 유태인들은 노동에서 제외되는 혜택을 누릴 거라고도 덧붙였다. 당연히 음악을 전공했던 유태인들을 이에 응했다. 동족의 작업능력을 높이는데 일조한다는 자긍심뿐만 아니라 노동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기쁨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연주했던 것은 작업능력을 높이기 위한 배경음악이 아니었다. 그들이 연주했던 음악은 다른 동족들이 가스실로 들어가기 전 지상에서는 마지막으로 들을 수 있었던 죽음의 음악이었다. 독일군이 모차르트 음악만을 연주하라고 했던 이유도 이와 관련된 것이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일관된 박자의 음표들만을 나열한 단순한 악보이면서도 밝고 긍정적인 느낌을 갖는 특징을 지닌다. 즉, 유태인들이 가스실로 들어가기 전에,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들이 죽을 거라는 상상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독일군의 전략이었다.
이 연주에 참여했던 음악가들은 당시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 당시 제 1바이올린을 맡았던 여성은 이렇게 고백했다. “동족에게 죄를 짓는다는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우선 살고 봐야 했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내 동료들은 그 자리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들은 음악가를 선발하는 오디션에서 심지어 자신의 부모들조차 제치고 선택받으려고 했다.”
아우슈비츠는 괜히 죽음의 장소가 아니었다. 아무리 톨스토이가 예술의 미학론을 외치면 무엇 한단 말인가? 그 때는 인류의 최고 활동이라 할 수 있는 예술조차 대량학살에 이용되던 시기였다.
예술조차 이용되던 그 순간에도 주인공은 어떻게 피아노에 대한 열정을 간직할 수 있었는가? 예술이 대량학살의 도구로 추락했던 그 때,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런 급박한 한계상황 속에서 그의 열정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주인공은 살아남고자 고군분투했다. 이러한 그의 열정은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가 피아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은 받아드리기가 어렵다. 도대체 예술에 무엇이 있기에 주인공은 그러했던 것일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예술의 항존성을 근거로 답을 내렸다. 1923년 세계 대공황이 닥쳤을 때 미국 교육계에서는 진보노선의 철회를 주장되는 한편, 학교 교육에서 이전처럼 ‘문학과 같은 예술의 고전(The Classics)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복고로의 회진이 강하게 주장되었다. 이러한 의견을 주장했던 교육학자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과학과 같은 인류의 진보가 경제 대공황이라는 혼란을 맞이한 사람들에게 그 혼란을 이길 힘을 주었는가? 아니다. 세계 도처에 비인간화가 가속되고 있다. 인류의 역경을 이겨낼 힘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것은 고전에 있다. 고전에는 인류의 불변하는 진리들이 담겨져 있다. 과학과 이성이 하지 못했던 인류에의 구조를 이 진리들만이 해낼 수 있다.”
주인공이 생존에의 에너지자원으로 사용했던 예술은 인간의 활동 중에서도 가장 높은 단계에 위치하는 활동이었다. 그러나 예술은 가장 첨예한 형이상학적 산물이므로 가장 형이하학적인 인간의 동물적인 욕구 앞에서는 그 가치가 부질없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동물적인 욕구에는 극한 상황을 견뎌낼 수 있게 만드는 정신력이 없다. 이 정신력은 오로지 형이상학적 산물, 즉 예술에만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너무나도 비인간적인 상황에 닥쳐있었기 때문에 이 진리가 눈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였던 주인공은 이 진리를 알고 있었고, 이 진리는 결국 그를 생존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교훈은, 아무리 비인간화가 진행되더라도 결국 정신적인 가치만이 인류를 존속시켜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정신적인 가치의 최상위의 위치에는 예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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