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정만 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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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만 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
1. 들어가며
요즘 사람들은 “시대가 거꾸로 가고 있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어느 정도 민주적인 사회가 만들어진 것 같으면서도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아직도 우리는 진실에 대해 분노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한다. 소설 속 등장하는 크레인 기사 ‘나정만’의 말처럼 “내가 아니기만 하면 될”뿐 “밥벌이 떨어져나가는”상황이 두렵기 때문이다. 소설「나정만 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은 ‘용산 참사’를 모티브로 삼아 ‘그날 오지 않은’ 크레인 기사 ‘나정만’의 사적이고 일방적인 발화로만 이야기가 전개된다. 우리는 그 독특한 서술양식과 그것을 통해 화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본문 - 무엇을 중심으로 이야기 할 것인가.
소설 속에서 모티브로 삼은 ‘용산 참사’는 2009년 1월 19일 서울시 용산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과 경찰이 대치하던 중 화재로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을 가리킨다. 안타까움이 큰 만큼 사회적인 파장 또한 컸으며, 그에 따라 사고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두고 논란과 의구심 또한 적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은 이러한 의구심을 화두로 던질 뿐, 그 날의 사건에 대해 자세히 나열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건 현장에 오지 않은 크레인 기사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또 그의 발언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의 대부분이 참사 당일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그가 크레인 기사가 되기까지의 삶과 그 삶이 처한 현재 상황을 보여주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본래 계획은 100톤짜리 크레인 두 대와 컨테이너 두 대를 이용, 양쪽 방향으로, 한 쪽은 망루 지붕을 걷어내고, 다른 한 쪽은 출입문 쪽으로 진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일 새벽, 약속한 크레인 기사가 잠적하는 바람에 작전은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219쪽)
사실상 소설의 발화시점은 “하지만 당일 새벽, 약속한 크레인 기사가 잠적하는 바람에 작전은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잠적’이라는 용어 안에는 의지적인 행동이라는 말이 내포되어 있다. 독자는 ‘왜 크레인 기사가 오지 않았지?’라는 궁금증과 기대감을 가지고 소설을 읽게 된다. 이 때 독자가 궁금증을 해결 할 때까지 소설을 읽게 만드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독자에게 흥미를 유발하는 장치는 서술방식에서도 볼 수 있다. 소설은 ‘크레인 기사’와 ‘소설가’ 사이의 대화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소설적 상황 일 뿐 따지고 보면, ‘크레인 기사’의 독백이 전부이다. ‘크레인 기사’가 ‘서술자(발화가)’가 되고 ‘소설가’는 ‘청자(수신자)’가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독자는 마치 그들의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몰래 엿듣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런 효과로 인해 독자에게 소설을 읽어나가는 재미를 유발시킨다. ‘용산 참사’와 상관없는 ‘크레인 기사’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데도 불구하고 소설을 끝까지 읽게 되는 이유이다. 서술이 작품의 의미를 구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배울 수 있는 부분이다.
소설 중간쯤에 그 날 크레인 기사가 잠적한 이유가 나온다. 우리들의 기대와 다르게 단순히 과적단속에 걸려 되돌아갔을 뿐이었다. 결국 그가 43톤 이상은 한강 다리를 건널 수 없다는 도로법 54조를 무시한 것이 직접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책임을 모두 그에게 지우기는 어려워 보인다. 경찰들은 급박한 상황이었다 해도 100톤 가까이 되는 크레인이 한강 다리를 함부로 건널 수 없다는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을까? 또 경찰 쪽 일이라지만 사실은 철거 용역회사가 주도해 진행됐다. 이 외에도 경찰이 진행한 진압 작전의 계획과 수행이 철저하지 못했다는 의구심이 드는 곳이 많다. 하지만 경찰의 진압 작전에 대해서는 누구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현실 모순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여러 의구심을 제쳐두고 자신의 이야기가 휴대폰으로 녹음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대화상대인 소설가와 갈등을 벌이는 국면으로 이야기의 방향이 바뀐다. 여기서 우리는 주목해야 되는 것은 ‘나정만’이 녹음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는 이유이다.
이 바닥이 그렇게 넓은 것도 아니고, 한 번 소문나면 큰 톤수 크레인은 다신 못 몰거든요. 사장들도 인터넷에 카페 같은 거 만들어서 크레인 기사 정보 공유하고 그러는데…… (226쪽)
그는 무슨 이유로 녹음된 휴대폰을 빼앗기 위해 몸싸움까지 벌이는 걸까? 바로 자신의 발언이 공권력의 무리하고 성급한 행사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활용되어 그로 인해 다시는 크레인 레버를 만지지 못할지도, 대출이자를 내지 못해 온 가족이 길바닥에 몰릴지도, 경찰이나 용역에게 어떤 해코지를 당할 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의 이런 모습을 통해 억압된 사회와 자신의 생계나 일상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무게감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정만’ 혼자가 아니다. 또 다른 등장인물이며 화자인 소설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소거시킨 채 이야기를 전하는 상황은 그 또한 어떤 두려움을 지니고 있으며, 그 두려움에 자신을 드러내거나 남기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기도 한다.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거고, 무서운 건 무서운 거 아니냐고요?”하는 ‘나정만’의 반문에 소설가가 말없이 울고 있는 대목은 작가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
3. 나가며
사회의 부조리를 낱낱이 고발하는 것은 소설가의 중요한 역할이자 영원한 숙명이다. 하지만「나정만 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에 등장하는 소설가처럼 대부분의 현소설가들은 현실의 모순에 직접 부딪히기 꺼려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소설은 용산 참사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지만 정작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참사의 책임 소재를 따지거나 그 의구심을 증폭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하는 행위나 그런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두려움과 그 무게감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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