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세종대왕의 인간경영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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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나는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다. 요즘 한창 화두가 되고 있는 내용이 ‘세계화 시대를 이끌 글로벌 인재 육성’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배경은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가 말하는 소위 ‘지식사회 기반론’이라는 것이다. 지식사회 기반론의 핵심은 전통적인 산업 사회와는 달리 미래에는 부를 소유한 자가 아니라 지식을 생산할 줄 아는 자가 사회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 자유주의적 정책이 본격화됨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가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프리랜서, 일용직, 여성 노동의 증가는 역설적으로 소수의 ‘창의력 있는 인재’의 존재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합리화시키는 담론이 바로 “빌 게이츠 한 사람이 천만 명을 먹여 살린다.”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글로벌 인재 육성” 등의 신자유주의적 구호이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 기업들은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고전을 통한 인간경영이 화두가 되고 있다. 나는 이 점에 주목하고 역대 가장 존경받는 세종대왕의 인간경영 리더십에 대해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
Ⅱ. 본론
“훌륭한 리더는 직접 나서지 않는다. 다만 훌륭한 인재를 경영할 뿐이다” 세종대왕의 말이다. 이 말은 세종대왕이 인재경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몸소 실천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세종대왕은 어떤 인간경영 리더십을 발휘했을까?
첫째, 과업 지향적 리더십과 관계 지향적 리더십의 적절한 조화이다. 이러한 세종의 리더십
그림 경복궁 수정전. 세종 때 집현전으로 쓰이던 건물이다.
은 집현전 운영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집현전은 고려 인종(仁宗) 14년(1136)에 연영전(延英殿)을 집현전이라고 이름을 바꾼데서 비롯되는데, 실제로 집현전이 성과를 거둔 것은 세종 때였다. 집현전을 설치하게 된 목적은 조선이 표방한 유교정치와 대명(對明) 사대관계를 원만히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인재양성과 학문의 토대구축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세종은 유학에 능통한 문사들을 뽑아 이들에게 여러 가지 업무를 수행하도록 지시했다. 세종은 집현전 학사들이 경전, 역사, 자서, 시부 가운데 강독한 분량을 기록했다가 월말에 보고하게 했다. 그리고 열흘에 한 차례씩 당상관으로 하여금 글제를 내어 시험을 치르게 했다. 이런 내용만 본다면 세종은 업적을 이루기 위해 학사들을 닦달한 지극히 과업 지향적 리더십을 보인 것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집현전의 학사들은 사헌부(司憲府)의 규찰을 받지 않아 신분이 보장되었고, 산사(山寺)에서 독서에 몰두할 수 있도록 장기간의 휴가인 사가독서(賜暇讀書)의 혜택을 주었다. 또한 충실한 연구와 학문을 쌓도록 하기 위해 세종은 이들을 다른 관부에 전직도 시키지 않고 집현전에만 10년에서 20년 가까이 있게 하였다. 이런 면 외에도 세종의 관계 지향적 리더십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는 학자인 신숙주에게 베푼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일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세종이 밤늦도록 책을 읽다가 집현전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내시로 하여금 누가 밤늦도록 집현전에서 책을 읽고 있는지 보고오라 명하니 이에 내시가 보고 와서 아뢰기를 신숙주가 홀로 독서하고 있다 하니 왕(세종)이 친히 집현전에 나가 그 광경을 살피니 신숙주가 세종이 온 것을 모르고 계속 독서에 열중하였다 한다. 이에 왕이 새벽이 되도록 밖에서 글 읽는 소리를 경청하다 신숙주가 고단하여 책을 읽다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고 추운날씨에 독서에 열중한 신하에게 자신의 어의를 벗어 덮어주고 돌아왔다고 한다. 이튿날 아침 깨어난 신숙주가 자신 등에 씌워진 어의를 보고 내시에게 물어보아 전날 밤 왕이 행차하신 것을 알고 그 은혜에 감복하여 왕의 침전을 향해 절을 하였으며 더욱더 학문연구에 열중하였다 한다. 선배리더십연구소, [션배] (서울:HRD북스, 2007) p.264인용.
세종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서 집현전 학사들은 학문과 연구에 정진할 수 있었다. 과업 지향적 관계 지향적 리더십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이고 우월한지는 판가름 할 수 없다. 다만 현저히 다른 성격을 보이는 두 리더십을 적절히 조화해 인적 자원을 관리한 세종의 현명한 선택이 당시대의 찬란한 문화와 유교정치의 발전을 이룩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둘째, 편견없는 실력 위주의 등용이다. 세종은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선입관 없이 인재를 등용했다고 하는데 이를 뒷받침해주는 일화를 하나 소개하겠다. 세종이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세 사람을 만나고 있을 때였다. 세종은 차례로 그들의 집안 내력과 학문의 깊이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세 번째 사람은 성삼문이었다. “자기소개를 해 보거라.”는 세종의 질문에 성삼문은 이렇게 대답했다. “전하께서 성덕이 높으시다는 소문을 멀리서나마 듣고 늘 흠모해 왔습니다. 이제 전하께서는 앞으로 전하의 시대를 열어 가야 하는데, 인물의 됨됨이를 보지 않으시고, 그가 어떤 명문가의 자제인지, 또 그의 아비가 누구인지, 어떤 배경인지에 대해서만 물으시니 오늘 적잖게 실망했습니다. 소생은 지리산 촌 동네의 이름 없는 쇠락한 선비 가문의 자식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의 앞날을 위해 죽도록 일할 준비가 누구보다도 단단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종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당돌한 답변이었지만, 세종은 그 대답을 문제 삼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바른 말이고 옳은 얘기다. 앞으로 과인에게 직언으로 대하고 나를 많이 도와 달라.” 세종이 임금으로서 신하에 대해 예우를 갖추자 성삼문은 크게 절하며, 성은이 망극하다고 했다. 말년에 삼문은 임금에게, 당시 마음속으로 ‘이러한 군왕이라면 죽음을 각오하고 충성하겠노라’ 결심했음을 고백했고 한다. 성삼문 등용 일화 인용(NAVER 검색.)
위의 일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세종은 신분의 높낮이에 관계없이 인재를 대우했다. 세종은 왕실의 종친이라 특혜를 주는 경우도 없었고, 그 아비가 훌륭하다고 아들에게 특혜를 주는 일도 되도록이면 제한했다. 나라와 종사에 이익을 주는 작은 재주라도 가진 이라면 그가 어떤 재주를 가졌건 간에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었다. 이러한 세종의 인재 등용 원칙은 즉위하면서부터 철저하게 지켜졌다. 세종은 공짜 밥을 먹고 있는 종신들과, 일하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하릴없이 시간이나 때우는 무리를 철저하게 가려냈다. 이러한 세종의 인재등용 방법은 현 시대에 많은 시사점을 주는 듯 하다. ‘인맥이 곧 자산이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우리 사회의 학연, 지연을 중요시 하는 풍조는 쉽사리 무너지지 않고 있다. 더욱이 지금의 20대가 만나게 될 세상은 확실히 30대와 40대가 만났던 한국 사회와는 다르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대학 졸업장만 있어도 대기업의 문은 열려 있었고, 그들이 지금 기득권층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이 세대가 지나치게 오래 정체되어있어 뒤의 세대에게 그만큼의 기회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금의 20대가 차지할 수 있는 사회적 문은 여실히 좁아졌고, 반면에 사회적 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 큰 실정이다. 좋은 집안 출신의 자녀들이야 노력하지 않고도 소위 ‘낙하산’이라고 불리는 특혜에 그들의 부모가 물려준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청년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남은 사람들끼리 경쟁하고 헐뜯는 그들만의 ‘배틀로얄(Battle Royale)’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어떻게든 좁은 문을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정상적인 취업 전에 휴학을 하거나 취업 준비 등의 이유로 졸업이 늦어지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삶의 변화들이 혼인 연령을 늦추고 덩달아 출산연령도 늦춰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렇듯 삭막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세종의 열린 인재 등용은 이상향처럼 보인다. 청년들에게 이것이 단지 이상향으로 존재하지 않게끔 CEO들의 많은 회의와 정부의 제도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인재를 아끼고 신뢰하였다. 세종은 지위의 높고 낮음을 뛰어넘어 인재를 등용했을 뿐 아니라, 등용한 인재를 보호하는 데도 힘썼다. 언관들이 황희, 김종서 등을 도덕성 문제로 집요하게 공격했지만, 공적을 이룰 때까지 그들을 보호하면서 기다렸다. 세종은 그들이 뛰어난 인재라는 것을 확신했고, 공적으로 그들의 허물이 극복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황희는 원래 충녕대군의 왕위 등극을 반대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부왕 태종의 당부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양영대군을 지지했던 그는 자신의 정적을 금방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잘못하다간 왕위에 오른 세종과 그 지지 세력에 의해 황희는 숙청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세종은 유배에서 풀려난 황희를 믿고 중용했다. 황희를 탄핵하자는 상소는 계속되었지만, 세종은 황희를 감싸 안아주었다. 세종은 황희가 판단력이 뛰어나고, 적당한 인물을 천거하는 능력도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건국 혁명 과정에서 소외되거나 희생된 사람들을 배려하는 점을 높이 샀다. 한마디로 나라를 안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김하는 중국어가 매우 뛰어나, 중국 사신이 왔을 때 의사소통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가 어떤 기생을 연모하였는데, 종실 출신의 어떤 재상도 그 기생을 탐하고 있었다. 어느 날 김하가 그 기생집을 방문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종실의 그 재상도 한날한시에 방문하는 바람에 마주쳐 서로 얼굴을 크게 붉혔다고 한다. 그 이야기가 세종의 귀에 들어왔다. 세종은 종실 출신의 그 재상을 불러들였다. “경은 기생 하나를 두고 김하와 다툰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사실인가?” 재상이 황공한 표정으로 엎드려, 그렇다고 말했다. 이에 세종은 험상궂은 얼굴로 말했다.“너 같은 자는 나라에 아무 쓸모가 없으니 있으나마나 하지만, 김하는 다른 사람이 못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가 없으면 중국에서 오는 사신을 맞을 수가 없고, 중국에 가는 사신 또한 제대로 일을 못한다. 김하는 아들이 없으니 마땅히 그 기생을 김하의 첩으로 삼도로 하라. 만일 다시 한번 이런 일로 싸움을 벌인다면 너에게 벌을 줄 것이다.” 이용범, [선비] (서울:바움, 2004) p.264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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