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사회학 한국의 이슬람,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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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의 이슬람,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1. 서론
우리나라에서 이슬람 이란 매우 소수에 속하는 집단이다. 그나마 해외 이슬람의 모습은 텔레비전 등 대중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소개되는 경우가 있지만, 막상 한국 안에서의 모습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이슬람은 전세계에 걸쳐 널리 퍼져있는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이며, 이를 따르는 사람들 또한 약 16억 명에 달한다고 추산될 정도로 비중이 큰 종교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꾸준히 성장해가고 있기도 하다. 1990년대부터 급격하게 우리 사회에 진입하여,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는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상당수가 이슬람 국가에서 나고 자란 무슬림 이라는 점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한국인에게는 매우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이슬람. 이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활동하고 있으며 어떤 모습을 띄고 있는지에 알아보는 것은, 다원화된 사회에서 앞으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할지도 모를 이들 무슬림에 대한 의미 있는 탐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여기서는 한국 이슬람 중앙회를 연구 대상으로 하여, 파슨스(Talcott Edgar Frederick Parsons, 1979-1902)의 AGIL Paradigm 을 통해 그 조직을 분석해보고, 이들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가지게 된 환경적 원인을 알아 본 후, 앞으로 이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SWOT분석 도구 를 이용하여 탐구해 보고자 한다. 능력과 시간의 한계 상, 직접 경험을 통한 조사가 어려웠으므로 주로 인터뷰와 출판물을 통한 조사를 중점적으로 수행하였으며, 한국 이슬람 중앙회의 다양한 활동들 중 종교 조직으로서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다고 본 선교 활동에 초점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였다.
2. 본론
(1) 한국 이슬람의 역사
최초로 한반도에 이슬람이 알려진 것은 고려시대의 일이다. 당시 고려인들이 대식(大食)국 이라고 부르던 이슬람 국가의 상인들이 100여명 이상의 사절단을 이끌고 고려를 방문하여 교역을 시도했던 기록이 남아있다. 이전에도 9세기경 중국과 동남아시아 해역까지 진출했던 이슬람 상인이 신라에 방문했으리라고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직접적인 접촉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 것은 고려시대이므로, 이 시기에 한반도에 이슬람이 알려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일일 것이다. 상인들의 접촉 수준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이슬람의 문화와 사상이 전해진 것은 고려 말 원나라의 간섭을 받을 때라고 볼 수 있다. 원나라 정부에 상당수 진출해 있던 중앙아시아계 무슬림들이 고려 정부에도 참여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한반도에도 무슬림 공동체가 형성되게 되었다. 당시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에는 이슬람 성원이 만들어졌다. 당시의 무슬림들은 그들의 언어인 위구르어 를 사용했고, 고유한 의상을 입었으며, 이슬람식 예배를 보는 등 이슬람 문화에 따라 생활했다. 이렇게 한반도에 자리잡게 된 무슬림들은, 이후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들어선 후에도 한반도에 남아 과학 기술을 전달하는 등 문화적 교류를 지속해 나간다. 하지만 15세기 이후 중심 사상으로 유교를 채택한 조선이 국가로서의 체계를 갖추어나가면서, 점차 유교와 다른 이질적인 사상들을 거부하게 되자 한반도에서 무슬림 공동체는 거의 와해되었다. 1920년대에 볼셰비키 혁명 이후 삶의 터전을 잃은 투르크계 무슬림들이 한반도에 정착하기도 하였지만, 전반적으로 20세기까지 한반도에서 무슬림 공동체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이 존재하였으나, 지금의 한국 무슬림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었던 직접적인 계기는 터키군의 한국전쟁 파병이었다. 터키군은 전선에서 전투에 참여하면서도, 후방에서의 지원 활동 또한 활발하게 전개하였는데 그 중 대표적인 활동이 전쟁고아들을 위한 학교 및 고아원 시설 운영이었다. 이런 지원 활동을 통해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종교가 한국 사회에 조금씩 알려질 수 있었고, 터키군 군종 이맘 으로서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압둘 가푸르 카라이스마일오울루(Abdul Gafur Karaismailoglu)의 선교 노력에 힘입어 한국 무슬림 1세대가 형성되었다. 한국인 무슬림 1세대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압둘라 김유도와 우마르 김진규를 들 수 있으며, 이들은 한국 이슬람 협회를 구성하고 터키군 당국의 지원을 받아 서울에 천막 사무실을 설치하고, 압둘 가푸르 카라이스마일오울루 이맘을 초청하여 강연회를 여는 등 이슬람을 알리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였다. 이런 노력들은, 압둘 가푸르 카라이스마일오울루 이맘의 후임으로 20대의 젊은 이맘인 쥬베이르 코취(Zubeyr Koch)가 부임하면서 더욱 활기를 띄게 되었다. 대형 천막에 미나렛 을 세운 최초의 임시 성원 을 서울 이문동에 만드는 한편 선교에도 한층 더 노력하였으며, 이에 힘입어 208명의 한국인이 새로이 이슬람에 입교하여 무슬림이 되기도 하였다.
이들 한국인 무슬림들은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1960년대에 들어 본격적인 국내 선교에 나서는 한편, 해외의 이슬람 국가들과도 유대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당시 한국 이슬람 협회 회장이었던 우마르 김진규는 사브리 서정길과 함께 중동 각국을 순회하며 한국 이슬람의 실정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 결과 1961년 9월에 14명의 말레이시아 무슬림 대표들이 실정을 살피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이들의 방문이 계기가 되어, 1962년 2월 여학생 3명을 포함한 11명의 한국인 무슬림 연수단이 말레이시아의 클랑 이슬람 대학을 방문하여 6개월간 연수를 받고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에도 압둘 라작(Abdul Razzaq) 말레이시아 부수상 내외, 하지 노아(Haji Noah) 말레이시아 국회의장 등이 한국을 방문했고, 1963년 11월 압둘 라흐만(Abdul Rahman) 말레이시아 수상이 방한하여 성원 건립 기금으로 33,000말레이달러를 지원하기에 이른다. 한국 이슬람 협회는 이를 바탕으로 성원 건립을 시도했지만, 추가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은 끝에 결국 여러 군소 조직으로 갈라지게 된다.
일시적으로 분할되었던 한국 이슬람 조직은, 여러 차례의 통합시도 끝에 1964년 10월에 ‘한국 이슬람교 중앙연합회’라는 이름으로 새로이 조직을 결성하게 된다. 같은 시기에, 지금도 한국 이슬람의 대부로 추앙 받는 사이드 무함마드 자밀(Saiyd Muhammad Jamil) 파키스탄 꾸란 협회 회장이 한국을 방문하여 무슬림 교육과 선교의 기틀을 잡는다. 이에 힘입어 한층 더 성원 건립에 노력할 수 있게 된 한국 이슬람교 중앙연합회는, 여러 이슬람 국가에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문화관광부 에 공식적으로 법인 등록을 마침으로써 명실상부한 종교 단체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런 노력 끝에 1970년에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1,500평 정도의 서울시 부지를 중앙 성원 건립용으로 기부 받았고, 이슬람 국가들로부터 400,000 달러에 달하는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1974년에 중앙 성원 건립이 시작되어 1976년 완공되었다. 또한 이 시기부터 일어난 중동 건설 붐의 영향으로 1970년대의 한국 내 이슬람 선교 활동은 매우 활발하게 일어났다. 그 결과 당시까지 약 3,700명 정도였던 무슬림 수가 두 배 가까이 증가하였고, 이슬람 국가들과의 협력관계도 한층 더 강화되었다. 한국 무슬림들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했던 중앙 성원의 건립을 계기로 그 동안 서울에 집중되어있던 선교 노력이 지방으로 확산되어, 1976년 말에는 암둘라힘 김명환을 중심으로 한 부산지역 무슬림들이 임시 성원을 설치하여 예배를 시작했고, 1978년에는 압둘라 전용린의 노력으로 경기도 쌍용리 주민들이 신앙 생활을 시작하여 농촌 지역 선교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런 움직임은 꾸준히 전국으로 퍼져나가서 1986년에는 전주, 안양에 각각 성원이 건립되기도 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무슬림들의 판도가 크게 변화하게 된다. 이 시기부터 이슬람 문화권에서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전까지 한국인을 중심으로 하여 느리지만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었던 이슬람은 이 시기에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게 되었고, 또한 이슬람 문화권에서 교육을 마치고 돌아온 젊은 2세대 지도자들에 의해 질적으로도 발달하게 된다. 2005년 현재, 전국에는 9개의 이슬람 성원과 60여 개의 임시 예배소가 있고, 외국인을 포함하여 15만 명 가량(한국인 무슬림 약 35,000명)의 무슬림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2)한국 이슬람 중앙회 산하 조직
현재 한국 이슬람을 대표하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1967년 정부의 인가를 받아 설립된 종교법인인 ‘재단법인 한국 이슬람교(Korean Islamic Foundation, KIF)’이다. 이 기구는, 명목상 한국 내 이슬람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이자 집행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한국 이슬람을 이끌어 나가고 있으며, 이 논문에서 주로 다룰 ‘선교’를 담당하는 단체는 1964년 10월에 발족된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Korea Muslim Federation, KMF)’이다.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에 소속되어 현재 활동하고 있는 단체로는 ‘한국 무슬림 신도회’, ‘한국 무슬림 학생회(Korea Muslim Student Assembly, KMSA)’, ‘한국 이슬람 문화 연구소(Korea Institute of Islamic Culture, KIIC)’, ‘마드라사 술탄 이븐 압둘 아지즈’, ‘주한 이슬람 공관장 자문위원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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