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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번의 위진남북조 역사소설 남북사통속연의 41회 42회 한문 및 한글번역
반란도당이 사람을 보면 곧 베니 어떤 효녀와 열부를 상관하겠는가? 첫째 칼은 장초원을 죽이고 둘째 칼은 장직을 베어 죽였다. (不沒楚瑗, 意在闡幽。)불몰초원 의재천유闡幽:숨겨진 이치를 밝힘장초원을 없애지 않아 뜻은 숨겨진 뜻을 밝힘이다.索性梟稷頭顱, 函送北朝, 作爲贄獻禮物。삭성효직
48페이지 | 6,000원 | 2018.12.26
채동번의 중국 동한 역사소설 후한통속연의 53회 54회 한문 및 한글번역
사건만 하고 문호만 지키며 가까운 관청 재물만 주관하나 지금 정사에 관여하고 중임에 오류를 더하고 자제를 나열해 오로지 탐욕 포학해서 천하가 흉흉해짐이 모두 이 때문이니 대개 죽이고 내쫓아 궁정을 소탕하십시오!”竇太后徐答道:“漢朝故事, 世有宦官, 但當稽察有罪, 酌量加懲, 怎可同時盡
47페이지 | 9,000원 | 2018.07.26
70년대 문학 전개과정 연구-이문구, 황석영, 조세희, 김지하, 신경림 중심으로
반란 사건과 지리산의 빨치산 운동 등으로 이어지는 공산당의 유격 활동의 실상을 근원적인 것에서부터 사실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방법으로 분단과 한국전쟁의 비극이 상당 부분 민족 내부의 모순에 기인하고 있음을 반성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관념
83페이지 | 2,000원 | 2018.03.07
채동번의 명나라 역사소설 명사통속연의 자서 1회 2회 한문 및 한글번역
사건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따로 설명하는 절(節) 笼罩 lǒngzhào ① 덮어씌우다 ② 주위 ③ 뒤덮다 ④ 둘레전반회는 인연을 서술하며 전체 책의 설자이고 이미 일부 명나라 역사를 안에 덮었다.入後擧元季衰亂情狀, 數行了之, 看似太簡, 實則元事備見元史。입후거원계쇠란정상 수행료지 간사태간
43페이지 | 5,000원 | 2018.02.08
채동번의 명나라역사소설 명사통속연의 3회 4회 한문 및 한글번역
여수일 일면품보자흥주원장이 허락하고 며칠 잔치에 남겨 한편으로 곽자흥에게 보고하게 했다.不意子興與德崖有隙, 竟親領大兵, 自滁赴和, 來執德崖。불의자흥여덕애유극 경친령대병 자저부화 래집덕애뜻하지 않게 곽자흥과 손덕애가 틈이 있어서 마침내 친히 큰 병사를 거느리고 저양에서 화양
40페이지 | 5,000원 | 2018.02.08
채동번의 중화민국역사소설 민국통속연의상 제13회 14회 한문 및 한글번역
반란을 주창 도모하는 흉폭한 야심은 접할수록 사나워지고 가령 정당의 명의는 간추는 도모를 완수했다.借報館之揄揚, 以掩其凶頑之跡, 排解之使, 困於道途, 防禦之士, 疲於晝夜。차보관지유양 이엄기흉완지적 배해지사 곤어도도 방어지사 피어주야报馆 bàoguǎn 신문사揄扬 yúyáng ① 극구 칭찬
41페이지 | 6,000원 | 2018.02.07
여수에서 중위 김지회, 상사 지창수를 비롯한 일련의 남로당 계열 장교들이 제주 43 사건진압 출동 명령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10월 27일 완전히 진압되었고, 이후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의 공모자 색출이 시작, 수천여 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이 반란 공모자로 몰려서 살해되었다. 이를 계
36페이지 | 2,500원 | 2018.01.15
채동번의 당나라 역사소설 당사통속연의 81회 82회 한문 및 한글번역
여수안공주 하가원규下嫁 xiàjià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 시집가다당문종은 그의 공손함에 가상하게 여겨 특별히 강왕 이오의 여식인 수안공주를 왕원규에게 시집보냈다.元逵遣人納幣, 備具六禮, 迎主而歸, 自是益加遜愼。원규견인납폐 구비육례 영주이귀 자시익가손신왕원규는 사람을 보내 납폐
51페이지 | 7,000원 | 2017.12.17
채동번의 당나라 역사소설 당사통속연의 83회 84회 한문 및 한글번역
반란해 다행히 이덕유는 오랑캐로 오랑캐를 공격하는 계책을 서서 이에 강한 오랑캐가 물러나 황제 딸이 돌아와 북방은 여전히 안정을 얻어 정치가 사람에게 있다고 함이 진실로 헛된 말이 아니다.文宗有一德裕而不能用, 此其所以齎恨終身歟。 문종유일덕유이불능용 차기소이재한종신여齎恨 jī h
46페이지 | 7,000원 | 2017.12.17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1948년 5월 10일 예정된 선거가 연기되었고, 52년 11월에야 진정되었다. 그와 더불어 1948년 10월 19일 여순반란사건이 일어났다. 반란군은 여수를 장학한 뒤에 순천을 장악하여 수일간 그 곳이 공산지배하에 들어갔다. 10월 24일 순천과 27일 여수가 탈환됨으로써 여순반란은 끝
7페이지 | 1,000원 | 2017.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