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 광화문 촛불시위의 함의와 한계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04.11.02 / 2019.12.24
  • 4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8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목차
1. 광화문촛불시위의 함의

2. 광화문촛불시위의 쟁점
1) 광장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2) 세대론
3) 축제론
4) 반미주의와 신자유주의

3. 맺음말
본문내용
1. 광화문촛불시위의 함의

시위를 통하여 한국의 미국에 대한 지위, 소파문제, 주한미군에 대한 문제인식은 대중화되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한미간의 수평적 관계도, 소파개정도, 주한미군이 철군된 자주국가도, 전쟁의 위험이 사 라진 안정지대로 바뀌지 못했다. 참여정부의 목표인 동북아 ‘평화발전’의 추구 정책에 따른 평화통일을 위한 진보 도 명확하지 못하다.
그러나 ‘광화문촛불시위’는 몇 가지 점에서 이전의 시위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첫째, 시위장소로서의 ‘광화문’이 갖는 함의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시위장소를 떠올릴 때면 광화문이나 명동성당 을 떠올린다. 그런데 광화문은 광장이지만, 명동성당은 성소로서 피난처이다. 광화문은 수만, 수십만 명이 제한 없 이 운집할 수 있는 대양과 같은 곳이지만, 명동성당은 만 명이 들어서기에도 비좁은 곳이고, 운집하기에도 제한이 많다.
1970, 80년대 평화적 시위조차 허용되지 않던 군부 독재의 철권 아래에서 명동성당은 시위자들에게 치외법권지대 로서 의지처를 제공해 주었다. 그 절정이 된 것은 1987년 6월 항쟁이었다. 물론 1980년대에도 가두시위는 종종 있 었다. 종로, 신림동, 신길동, 가리봉동, 대림동, 목동, 사당동, 경동시장, 미아삼거리, 동대문시장, 신촌 로타리 등도 시위장소로 종종 이용되었지만, 그곳은 광장이 아니라, ‘5분 투쟁’, 즉 게릴라적 투쟁의 장소였다.
1987년 이후 시위장소는 차츰 ‘광장’으로 변하였다. 대학교의 아크로폴리스와 같이 토론과 집회와 시위기능을 갖춘 광장과 같은 장소로서 광화문․시청은 21세기형 시위장소가 되고 있다. 광화문은 서울의 중심이자 대한민국 행정부, 정부종합청사, 그리고 청와대, 미대사관이 있는 대한민국 정치 1번지이자, 시민의 다양한 목소리와 시위가 함께하 는, 즉 정치사회와 시민사회가 공존할 수 있는 광장이다. 21세기 시민사회의 중심으로 된 광화문은 투쟁일변도의 시위형태에서 투쟁과 축제가 공존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둘째, 새로운 공간 속에서 진행되는 ‘촛불시위’는 새로운 시위문화를 창조하고 있다. 부모의 손을 잡고 나온 어린이 들이 적잖이 있었다. 교복이나 사복을 입은 중․고등학생들 역시 눈에 띄었다. 뿐만 아니라 수녀, 여스님, 여성교목 들도 고정 주체이다. 이러한 모습은 1980년대 시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정경이 아닐 수 없다. 군부독재 하의 소위 ‘5분 투쟁’처럼 ‘치고 빠지는’ 전술에 기초한 가두시위에서는 기동력이 중시되므로 가족단위의 집회라는 것은 상상 하기도 어려웠다. 또한 정치투쟁 일변도의 시위에서는 다양한 집단의 참여를 독려하기 곤란하다. 이제 촛불시위와 같은 ‘평화적’ 시위에는 남녀노소 다양한 주체가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야말로 시민사회형의 시위형태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광화문촛불시위는 시민사회의 성숙을 뒷받침한 시위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1980년대 시위는 운동권 학 생, 진보적 지식인, 종교인, 선진적 노동자․농민․빈민․여성 등이 주도한 ‘구사회운동’적 주체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면, 2000년대 시위는 그러한 주체들이 중심이 되면서도 신사회운동의 주체가 실세화되고 있는 측면이 있다. 다양한 시 민들이 등장하면서 주체가 다양화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시위는 ‘생명을 건 투쟁’이었고, ‘군부독재타도’라는 단일한 목적을 실천하는데 받쳐졌다. 그러나 2000년대 시위는 형식적 민주화가 일정 정도 실현된 바탕 위에서 시 위의 목표도 다양하고 방식도 다양하다. 그 다양한 조건을 묶을 수 있는 틀로서 촛불시위와 같은 광장형, 평화지향 형 시위가 채택되었다. 그러한 시위는 최초이다. 소수의 사람에 의해 제안되었지만, 형식적 민주주의가 일정 실현 되고 시민사회의 성숙한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다면 실천될 수 없는 형태이다. 이는 2002년 대선과 맞물리면서 전혀 가능할 것 같지 않았던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도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넷째, 광화문촛불시위를 가능하게 했던 데에는 정보민주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광화문시위는 시시각각 단위로 인터넷 매체를 타고 전국으로 전세계로 방송되었다. 더 이상 소문이 아닌 ‘비동시성의 동시성’과 같은 현장성 현장 성을 극대화시키는 데에는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1968혁명과 촛불시위에 대해서
  • 촛불평화대행진을 벌인다. 이때의 구호는 이미 살해군인들만의 처벌이 아닌, sofa의 개정과 재판무효, 부시의 사과에 이른다. 이제 촛불시위는 반미의 성격을 강하게 띄기 시작한다.2003년도 여전히 촛불시위는 끝나지 않았다. 3월, 미국이 이라크전을 일방적으로 개전하면서 광화문에 촛불시위가 다시 시작된다. 3월 20일의 참여는 4000여명이었다. 2003년의 촛불시위는 이라크전쟁반대, 한국군파병반대의 기치를 내걸었으며, 한반도의 전쟁위협중단과 자

  • 대중문화의이해_교재 108쪽에는 젊은 세대의 자유분방한 문화적 에너지가 과거와는 다른 자발적 참여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갈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내용을 참조하면서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 나타난 자발적 참여 문화의 사례를 들고 그에 대해 분석해 보십시오 (2)
  • 촛불시위와 이로 인해 발생한 탄핵 사태는 단순한 사회적인 사건 또는 일회성 이벤트로 여기기에는 변화와 함의가 크다. 여전하게 진행형인 촛불시위 이후의 한국사회를 어떻게 해석을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 또한 심각하다. 2016~2017년에 걸쳐서 벌어진 촛불시위 기간 동안에 전국적으로 약 1,700만여명의 국민이 참여하고, 촛불의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순히 정권교체라고 하는 정치공학적인 의미만으로 축소, 해석을 하기에는 한계점을 가지

  •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촛불시위를 통해서 본 참여민주주의의 위기와 전망
  • 촛불시위의 형태-편집부 저. 경향신문사 『촛불 그 65일의 기록』참조.한국정치사회에서 촛불시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초의 촛불시위는 2002년 11월 미군장갑차량에 깔려 숨진 두 여자 중학생의 사인규명과 추모를 위해 처음 열렸다. 당시 이 사건은 월드컵 축구대회와 제 16대 대통령선거의 열기에 묻혀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11월에 인터넷신문기자가 촛불시위를 제안하였으며 이것이 네티즌 중심으로 확산되어 서울 광화문에서 대규모

  • [정치학] 촛불시위가 가지는 의미와 가능성
  • 정치학 개론 촛불 시위가 가지는 의미와 가능성 Ⅰ. 새로운 정치 현상의 대두, 촛불 시위이번 주말 오후, 광화문에서 촛불 시위 열릴 예정. 어느 신문 기사의 한 표제이다. 언제부터인가 촛불 시위라는 용어가 우리 삶의 익숙한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 촛불 시위가 열렸을 때에 그것은 국민들에게 매우 생경하고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의 삶의 일부로써 한 부분을 차지해가고 있다. 촛불 시위가 정치적 문화로써 자리

  • 정치학개론 촛불시위가 가지는 의미와 가능성
  • 정치학 개론 촛불 시위가 가지는 의미와 가능성 Ⅰ. 새로운 정치 현상의 대두, 촛불 시위‘이번 주말 오후, 광화문에서 촛불 시위 열릴 예정’. 어느 신문 기사의 한 표제이다. 언제부터인가 촛불 시위라는 용어가 우리 삶의 익숙한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 촛불 시위가 열렸을 때에 그것은 국민들에게 매우 생경하고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의 삶의 일부로써 한 부분을 차지해가고 있다. 촛불 시위가 정치적 문화로써 자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