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촛불시위의 함의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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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촛불시위의 함의와 한계
1. 광화문촛불시위의 함의
시위를 통하여 한국의 미국에 대한 지위, 소파문제, 주한미군에 대한 문제인식은 대중화되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한미간의 수평적 관계도, 소파개정도, 주한미군이 철군된 자주국가도, 전쟁의 위험이 사 라진 안정지대로 바뀌지 못했다. 참여정부의 목표인 동북아 ‘평화발전’의 추구 정책에 따른 평화통일을 위한 진보 도 명확하지 못하다.
그러나 ‘광화문촛불시위’는 몇 가지 점에서 이전의 시위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첫째, 시위장소로서의 ‘광화문’이 갖는 함의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시위장소를 떠올릴 때면 광화문이나 명동성당 을 떠올린다. 그런데 광화문은 광장이지만, 명동성당은 성소로서 피난처이다. 광화문은 수만, 수십만 명이 제한 없 이 운집할 수 있는 대양과 같은 곳이지만, 명동성당은 만 명이 들어서기에도 비좁은 곳이고, 운집하기에도 제한이 많다.
1970, 80년대 평화적 시위조차 허용되지 않던 군부 독재의 철권 아래에서 명동성당은 시위자들에게 치외법권지대 로서 의지처를 제공해 주었다. 그 절정이 된 것은 1987년 6월 항쟁이었다. 물론 1980년대에도 가두시위는 종종 있 었다. 종로, 신림동, 신길동, 가리봉동, 대림동, 목동, 사당동, 경동시장, 미아삼거리, 동대문시장, 신촌 로타리 등도 시위장소로 종종 이용되었지만, 그곳은 광장이 아니라, ‘5분 투쟁’, 즉 게릴라적 투쟁의 장소였다.
1987년 이후 시위장소는 차츰 ‘광장’으로 변하였다. 대학교의 아크로폴리스와 같이 토론과 집회와 시위기능을 갖춘 광장과 같은 장소로서 광화문시청은 21세기형 시위장소가 되고 있다. 광화문은 서울의 중심이자 대한민국 행정부, 정부종합청사, 그리고 청와대, 미대사관이 있는 대한민국 정치 1번지이자, 시민의 다양한 목소리와 시위가 함께하 는, 즉 정치사회와 시민사회가 공존할 수 있는 광장이다. 21세기 시민사회의 중심으로 된 광화문은 투쟁일변도의 시위형태에서 투쟁과 축제가 공존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둘째, 새로운 공간 속에서 진행되는 ‘촛불시위’는 새로운 시위문화를 창조하고 있다. 부모의 손을 잡고 나온 어린이 들이 적잖이 있었다. 교복이나 사복을 입은 중고등학생들 역시 눈에 띄었다. 뿐만 아니라 수녀, 여스님, 여성교목 들도 고정 주체이다. 이러한 모습은 1980년대 시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정경이 아닐 수 없다. 군부독재 하의 소위 ‘5분 투쟁’처럼 ‘치고 빠지는’ 전술에 기초한 가두시위에서는 기동력이 중시되므로 가족단위의 집회라는 것은 상상 하기도 어려웠다. 또한 정치투쟁 일변도의 시위에서는 다양한 집단의 참여를 독려하기 곤란하다. 이제 촛불시위와 같은 ‘평화적’ 시위에는 남녀노소 다양한 주체가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야말로 시민사회형의 시위형태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광화문촛불시위는 시민사회의 성숙을 뒷받침한 시위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1980년대 시위는 운동권 학 생, 진보적 지식인, 종교인, 선진적 노동자농민빈민여성 등이 주도한 ‘구사회운동’적 주체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면, 2000년대 시위는 그러한 주체들이 중심이 되면서도 신사회운동의 주체가 실세화되고 있는 측면이 있다. 다양한 시 민들이 등장하면서 주체가 다양화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시위는 ‘생명을 건 투쟁’이었고, ‘군부독재타도’라는 단일한 목적을 실천하는데 받쳐졌다. 그러나 2000년대 시위는 형식적 민주화가 일정 정도 실현된 바탕 위에서 시 위의 목표도 다양하고 방식도 다양하다. 그 다양한 조건을 묶을 수 있는 틀로서 촛불시위와 같은 광장형, 평화지향 형 시위가 채택되었다. 그러한 시위는 최초이다. 소수의 사람에 의해 제안되었지만, 형식적 민주주의가 일정 실현 되고 시민사회의 성숙한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다면 실천될 수 없는 형태이다. 이는 2002년 대선과 맞물리면서 전혀 가능할 것 같지 않았던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도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넷째, 광화문촛불시위를 가능하게 했던 데에는 정보민주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광화문시위는 시시각각 단위로 인터넷 매체를 타고 전국으로 전세계로 방송되었다. 더 이상 소문이 아닌 ‘비동시성의 동시성’과 같은 현장성 현장 성을 극대화시키는 데에는 인터넷 외에도 핸드폰이나 디지털 카메라, 디지털 카메라폰 등이 활용되었다. 1994년 멕시코 남부의 사파티스타들이 정부군에 의해 고립된 채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며 생존권 투쟁을 전개하였으나, 그들 이 세계적 각광을 받았던 데에는 그들이 제기하는 투쟁 상황이 인터넷을 타고 세계로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광화 문촛불시위 역시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도됨으로써 소파(SOFA) 문제를 대중에게 홍보함과 동시에 반전평화 의 절박함을 널리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지역의 문제를 지구화 지구화는 ‘globalization’으로 서 흔히 ‘세계화’로 번역되지만, 한국에서는 세계화가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의미에서 사용되므 로 이 글에서는 원어를 직역하여 지구화로 대체한다. 물론 지구화든 세계화든 그것은 미국이나 초강대국이 주도하 는 ‘일체화’적 의미가 있는가 하면 또한 세계 사회운동 단체나 개인들이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며 연대하는 의미도 있다.
2. 광화문촛불시위의 쟁점
촛불시위는 다양한 쟁점을 파생시켰다. 물론 촛불시위의 핵심적인 자리에는 동등한 한미관계의 설정이나 그에 따른 소파 개정, 주한미군 철수 문제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서는 촛불시위에 대한 지식사회학적 함의와 쟁점을 도 출하는데 주력하고자 한다.
1) 광장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광화문촛불시위는 ‘광장민주주의’라는 개념을 떠올릴 수 있게 한다. ‘광장’ 개념은 광화문이나 서울시청광장과 같은 물리적 공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폐쇄된 밀실 정치와 상반된 정치문화, 절차적 과정, 의사결정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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