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의 광화사 심리주의적 접근] 작가 김동인과 그의 작품 광화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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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5.18 / 201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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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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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사의 작가인 김동인의 생애와
광화사 줄거리와 함께 주인공들의 심리를 위주로 분석하였습니다
-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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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동인의 생애
광화사 줄거리
광화사 분석
나의 생각
-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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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동인의 생애
본관 전주. 호 금동(琴童)·금동인(琴童人)·춘사(春士). 창씨명(創氏名)은 곤토 후미히토[金東文仁]
김동인은 1900년에 평안남도 평양 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 도쿄[東京]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학부를 졸업하고, 가와바타 미술학교[川端畵學校]를 중퇴하였다. 미술을 그만두고 1919년 최초의 문학동인지 《창조(創造)》를 발간하고,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고 귀국하였으나, 출판법 위반 혐의로 일제에 체포·구금되어 4개월 간 투옥되었다.
출옥 후 《목숨》(1921) 《배따라기》(1921) 《감자》(1925) 《광염(狂炎) 소나타》(1929)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혁신에 공헌하였다.
그 당시에 우리나라에는 춘원 이광수의 {무정}이 있었을 뿐으로 순문학 작품은 아직 형태조차 없던 시대건만, 어려서부터 외국문학을 접한 김동인은 1919년에 독립만세의 봉화가 터지기보다 한 달 앞서 도쿄에서 순문학잡지 {창조}를 발간하였다. {창조} 발간 이후 김동인은 30여 년간 오로지 문학의 길로만 정진하였다.
그들의 문학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김동인은 우리 근대문학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순문학자, 그야말로 결벽증에 가까운 예술지상주의자로 추앙되고 있다. 문학 이외의 경력이나 이력 같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오직 소설의 길에 평생을 바쳤다는 것이다...(중략)
광화사에 대하여
1935년 <야담>에 발표. 유미주의적 경향이 잘 나타난 작품. 그는 미에 대한 견해를 여러 글에서 제시한 바 있는데, `악(惡)도 미(美)`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미에 대한 광포적(狂暴的) 동경`으로 요약될 수 있다. 미에 대한 이러한 태도를 허구적으로 표현한 것이 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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