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의료사업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20.07.25 / 2020.07.25
  • 4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1,6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하고 싶은 말
주요 내용을 요점정리한 A+ 과제물입니다.
본문내용
조선시대의 의료사업
고려시대는 불교의 영향을 받아 대비원, 제위실 및 혜민국을 설치하여 빈민의 질병을 치료하고 약물 및 의류 등을 급여하였다. 이러한 일은 주로 승려들이 맡아 하였다. 조선시대의 의료제도로는 태조 원년(1392) 궁내 의료를 담당하는 전의감과 일반 백성의 의료기관인 혜민서 및 동서대비원 등이 설치되었다. 태조 6년(1397)에는 제생원이 별도로 설치되어 (1) 의방(醫方)의 조사 및 수집. (2) 의학 서적 간행, (3) 약물의 조사 및 채집, (4) 여의 양성 등에 주력하였다. 세종 6년(1424)에는 질병을 치료하는 기관으로 구병실을 설치하여 병자를 구휼하였다.
또 "세종실록"에 의하면 세종 26년(1444)에 국왕은 한성부에 전지(傳旨)를 내려 기민을 한곳에 많이 수용하여 시식케 하면 질병이 발생, 전염하여 사망하는 일이 많을 것이니 동서활인원과 각 진제장(脈齋場)에 분산하여 극진히 진제하고 혹 병든 사람이 있으면 타인에게 접근치 않도록 한 성부와 5부 관리가 분담하여 잘 감독하라 하였다.
"태종실록"에 의하면 태종 10년(1410)에 도성 내 주인 없는 시체를 매장하는 새로운 제도를 시작하였다. 그 내용은 매치원이라는 기구를 임시적으로 설치하여 즉은 사람의 집에 인접한 10가구가 시체를 매장하고 그 비용은 주인이나 혹은 10가구가 공동으로 분담하며 만일 이에 협력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이를 조사하여 죄를 주기로 하였다. 이 제도가 있게 된 이유는 당시 한성부 내에 시체를 가로나 개천 등에 내다버리는 일이 있어 공중위생상으로나 미관상으로도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체를 매장하고 도성을 깨끗이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후 숙종 35년(1709)에 혜민서를 설치하고 제생원을 병합하여 일반인의 질병치료를 겸하였다. 혜민서 제도는 고려시대의 혜민국을 조선시대 건국 초에 답습한 것으로 그 직제에 있어서도 여러 번 개혁되었으며 세조 11년(1465)에 혜민서로 개칭되었다. 그 직무는 각 도로부터 각종 약재를 중앙에 수납하게 하고, 일반 백성들을 그 신분의 귀천 및 노소를 가리지 않고 질병을 치료 구제하는 관서이다.
동서활인원(東西活人院)은 불교의 대자대비의 사상에 의한 고려시대의 동서대비원의 명칭을 조선시대 초부터 답습하였던 것인데 태조의 배불정책에 따라 동서활인원으로 개칭되었으나 그 후 성종 16년(1485)에 다시 동서대비원이라 하였다. "경성부사(京域府史)" 1권에 따르면 동활인원은 현 성북구 돈암동에 있었고, 서활인원은 현 서대문구 아현동에 있었던 것 같다. 동서활인서의 직무는 주로 전염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었으며 전염병의 유행이 극심할 때는 활인서(活人署) 주위에 병막을 치고 환자들을 수용하여 의료를 함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무격(巫視)을 전속시켜 그 유행질병의 악귀를 퇴치하는 방안을 강구케 하기도 하였다.
제생원(濟生院)은 태조 6년에 창설된 것이며, 고려시대 후기부터 채취해 온 향약을 집성한 "향약제생집성 30권을 편집하였다. 태조 6년(1397)에는 창고 궁사의 동녀 수십 명을 선택하여 맥경 침구법을 가르쳐 부인들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녀(醫女)를 양성함과 동시에 빈곤자 질환에 대한 구료사업도 하였으나 세조 5년에 혜민서에 병합되어 폐지되었다. 의녀는 태종 6년(1406)에 제생원에 설치된 후 남자 의원들의 진찰을 받기를 꺼리는 부녀 환자들의 의료를 담당케 하였다. 또 성종 9년(1478)에는 의녀를 내의. 간병의 및 초학의 등의 3종으로 구분하여 급료를 정하여 의녀의 과업을 권장하였다.
그러나 남녀의 자유로운 접촉이 없었던 당시였으므로 일반 증류계층의 여자들은 이에 종사함을 원하지 않아 주로 하천 계층의 출신들이 선발되었던 관계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월령의에 관하여서는 "경국대전" 예전조에 규정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한성부 5부에 빈곤한 질병인이 있는 경우에는 월령의를 파견하여 치료케 하고, 빈곤하여 약값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자에게는 관에서 그 비용을 지불하고 예조에 보고케 하였다.
조선시대에 있어서의 의료사업과 구빈사업은 정부기구에 있어서나 그 실시사업에 있어서 동일체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재해와 괴질이 발생할 때는 각 해당 지역에 중앙으로부터 재상어사, 구황어사, 진휼사, 또는 구급경차관 등을 파견하여 그 실상황을 조사하고 구료 등의 활동을 하게 하였다.
조선시대에 있어 의료 이외에도 질병을 퇴치하는 또 하나의 민속적 방법으로 무격(巫視)적 술법과 불제(祿除) 방법이 있었다. 국가기관인 동서활인원에 무격을 두어 의관과 함께 의료에 종사케 하였고, 중종 10년(1515)에는 무녀를 국무라 칭하고 궁중 출입을 허용하여 질역(疾疫)이 있을 때에는 의무로서 의관과 동시에 질병을 치료케 하였다.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사회복지] 고려시대의 구제제도와 구휼사업
  • 의료구제 사업혜민국 : 고래시대 서민의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설치한 의료기관예종 7년( 1112 )에 설치하여 충선왕때는 사의서에 예속되었다가, 공양왕 3년( 1391 )에 혜만전약국으로 이름 바뀜관원으로는 판관 4명을 두었으며, 본업과 산직을 교대로 보내어 일을담당하게 하였다.동서대비원 : 나라에서 운영한 의료구제기관으로 주로 개경( 지금의 개성 )의동서 2곳에 설치하여 동서대비원이라 불리운다.설치연대는 명확치 않으나 1036년( 정종2년

  • 한국의 사회복지발달사
  • 〈서론〉우리나라의 사회복지제도나 사회복지사업의 발달은 그 역사가 오래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빈민 구제나 의료보호사업들을 보면 그 근원은 상고(上古)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구제의 내용에서도 국민을 위해 사회복지 사업을 충실히 해나간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는 선진복지국가들과 비교하여 1세기 정도 뒤졌다고 볼 수 있으나 본격적으로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 우리나라의 사회복지발달에 대해 논하세요
  • 우리나라의 사회복지발달에 대해 논하세요.목차우리나라의 사회복지발달에 대해 논하세요.1) 근대 이전의 사회복지 전개과정(1) 삼국시대(2) 고려시대1/ 재해구제사업2/ 의료구제사업(3) 조선시대(갑오개혁 이전)1/ 비황제도2/ 구황제도3/ 의료구제사업4/ 상조제도2) 근대 이후의 사회복지 전개과정(1) 갑오개혁 이후의 조선시대(2) 일제시대와 미군정시대1/ 일제시대2/ 미군정시대(3) 제12공화국의 사회복지(4) 제3공화국의 사회복지1/ 새로운

  • 유학과 서구의 복지사회에 대한 관점
  • 의료사업내의원 : 왕실의 의료를 전담진휼 및 진대사업, 원납 등혜민서, 정의감 : 육조의 관리와 일반백성의 의료 교육을 담당활인원 : 도성내의 전염성 질환의 퇴치 담당ContentsStep.1 Step.2 Step.3 Step.6 Step.4 Step.5 조선시대의 복지제도유학과 서구의 복지사회에 대한 관점유교적 사회복지ContentsStep.1 Step.2 Step.3 Step.6 Step.4 Step.5 유학과 서구의 복지사회에 대한 관점중 세근 대 이 전 서 구 의 복 지 사 상ContentsStep.1 Step.2 Step.3 Step.6 Step.4 St

  • [한국 보건행정 역사] 우리나라 보건행정의 변천 - 시대별 보건행정조직(조선시대, 한일합병시대, 미군정시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의 보건행정조직)
  • 조선시대조선시대는 쇄국정책으로 한방을 주축으로 한의학이 발전되어 왔다. 삼국시대를 거쳐 한토의약을 토대로 약간의 의료행정기관도 생겨나게 되었다. 의약서적이 들어온 것은 문헌상으로 고구려 평강왕 3년에 중국 강남 오나라부터 이며, 근세 조선에 와서는 예조판서 산하에 (1) 전의감을 두고 일반의료행정을 담당케 하였고 (2) 내의원(內醫院)에서 왕실의료 (3) 혜민서(惠民署)에서 서민의 구료사업 (4) 활인서(活人署)에서는 도성내 전염병 환자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최근 판매 자료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