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사회복지] 사궁의 보호(4궁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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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사회복지] 사궁의 보호(4궁보호)
사궁(四窮)이란 빈곤(貧困)하고 자활할 수 없는 환과고독을 말한다. 즉, 늙고 아내가 없는 홀아비를 환, 늙고 남편이 없는 여인을 과, 어리고 부모가 없는 자를 고, 늙고 자녀가 없는 노인을 독이라 하며 이들에 대한 보호는 삼국시대 이래로 중요한 구제사업으로 실시되어 왔다. 조선시대에 있어서도 이들에 대한 보호는 관의 의무로 되어 부양할 친족이나 동거할 자가 없는 이들을 일시적 또는 계속적으로 수용하여 의식을 공급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왔다.
"세종실록" 권 24에 따르면 세종 6년(1424) 34월에 기민 수는 전국 8도 중 경기도와 전라도를 제외한 6개 도에 있어 총 9,818명으로 이는 전국적인 재해가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들 기민들은 생존을 위하여 전국 각지를 방랑하게 되고 이들 중 일부는 국도인 한성부로 모이게 된다. 세종24년(1442) 정월에 한성부의 각 진제장에 수용된 기민 수는 275명이었다.
진제장이란 한성부에서 설치 운영하는 빈민을 위한 응급 구제기관으로 그 업무 내용은 기류민(寄留民)에 대한 구급 시식을 주로 하였다.
그러나 해를 거듭함에 따라 걸식하는 빈민 및 유기아가 점차 증가되므로 이들에 대해 무제한한 보호와 조치를 하기가 곤란하게 되자 정조 7년(1783)에 "자휼전칙(字愧典則)"을 제정하였다. 이에 따르면 중앙에 있어서는 진휼청이 직접 이들을 수용 보호하고 지방에 있어서는 지방 관부가 중앙을 모방하게 하였다. 그 수용시설로서는 관부청사 외부에 토막을 지어 사용하게 하였다. 그러나 수용 보호가 곤란한 유약자에 대하여서는 민간수용을 허용하였다. 특기할 만한 것은 담당관리가 보호직책을 태만히 할 경우는 엄중 문책하고 처벌하는 규정도 있었다. 이러한 규정은 이전부터 내려오던 문책 처벌 관행을 법제화하였다는 의의를 갖는 것이었다.
"자휼전칙" 이전에 태만한 관리에 대한 문책 처벌의 한 예로는 태종 15년(1415) 11월 어느 날 한 걸인이 구호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충녕대군이 구제하였다는 기록을 들 수 있다. 이 사실을 후일 알게 된 왕은 철저한 빈민구제사업을 하도록 명령하고, 또 이를 게을리 한 담당관리를 처벌하였다. 또 세종 19년(1437) 2월 왕은 한성판사 이숙민, 부윤 최사의, 경참군조원복, 참군 윤취 등을 의금부에 하옥시키고 낭청 3인을 장(枕) 30에 처하였다. 그 이유는 이들이 굶주리고 방랑하는 걸인들을 구제하지 않아 죽게 하였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에 있어서는 사원 승려들이 고아 또는 유기아들을 수양하여 법부와 법자의 관계를 맺어 율법(律法) 교육을 시켜 자기 후계자로 삼기도 하고 사원의 사역으로 고용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인신매매. 유아유괴 등의 병폐가 사회에 발생하게 되자 조선시대에 있어서는 명률을 인용하여 아동 수양을 전적으로 관의 사업으로 하여 관의 허가 없는 민간 수양은 일절 금지하였다. 그러나 오랜 관습으로 지속된 민간 수양은 단시일 내에 중단되지 않았으며 또 관부 수용 대상자가 증가되어 감에 따라 유한한 국가 비용만으로써는 부담하기가 용이치 아니하여 현종 2년(1661)에 한성부의 유기아에 한하여 일시 보호의 한 방안으로 민간 수양을 허가한 일도 있고, 영조 22년(1746)에는 "경국속전"에 민간 수양에 관해 규정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규정에 의한 민간 수양의 내용은 오늘날의 수양사업에 비하여 그다지 손색이 없을 만큼 규정상으로는 잘 되어 있었다.
이러한 여러 규정들을 하나로 정리한 것이 정조 7년(1783)에 공포된 "자휼전칙(字液典則)"이다. 이는 걸식 아동의 구제에 관한 진휼청의 구호사업의 준칙이다.
1/ 흉년에 걸식하는 아이는 10세를 한하고 노상에 유기된 아(兒)는 3세를 한하여 5부에서 문견하는 대로 진휼청에서 유양(乳養)토록 하되 행걸아(行毒兒)는 춘추까지 유양하고 유기아는 풍흉에 불구하고 절목에 의하여 시행한다.
2/ 행걸아는 반드시 부모, 친족 또는 주인이 없이 무의무탁한 것을 기준으로 하고 허위 신고하는 일이 있을 경우에는 엄하게 다스리며 유양(乳養) 후에 부모, 친족 또는 주인이 와서 추심하는 경우에는 인근 사람에게 내력을 조사하여 의심이 없게 명백히 밝힌 후에 해부에서 월일을 기록하고 내어주어도 좋으나 그 인수자가 빈곤하여, 또다시 구걸을 시키는 경우에는 다시 찾아다가 유양하고 재차 유산하는 폐가 없도록 한다. 행걸아는 진청(脈廳) 창문 밖 공한지에 토막을 짓고 이를 유접소라 하고 이에 유양하되 급량은 진청식례를 참조하여 7세 이상 10세 미만은 1일 매인에 미 7홉, 장 2홉, 미역 2잎을 주고, 4세 이상 9세 미만은 1일 매인에 미 5홉, 장 1홉. 미역 1잎을 계산하여 지급하고 그 지배사무는 해청 고직으로 하여금 주관케 한다.
3/ 유기의 보고가 궁벽진 곳이나 교외 먼 곳에서 부에 도할했을 때에는 부의 관리가 아직 직접 보지 않았더라도 곧 심혈수취(心血受取)하여 진청(脈廳)으로 이송한다. 단, 포대기에 싼 갓난아이를 거리에 버린 것은 급을 요하므로 먼저 진휼청으로 보내고 나중에 해부에 통고토록 한다.
4/ 유기아를 유양함에는 유걸여인 중 젖 있는 자를 택하되 매 1인에 두 아이씩 나누어 주고 유녀 매인에 1일 미 1되 4홉. 장 3홉, 미역 3잎씩을 급한다. 단, 유걸(流定)치 않은 여인으로서 유양할 것을 자원하나 가난하여 먹을 것이 부족하여 젖을 먹일 수 없는 사람에게는 한 아이를 유양케 하고 매인에 1일 미 1되, 장 2홉, 미역 2잎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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