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답사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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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서산 답사를 다녀와서
답사지의 결정
우리 조는 아쉽게도 가위바위보에서 꼴지를 했고, 수원성에 가고 싶어했던 우리는 목적지 중에 가장 먼 곳인 서산을 가게 되었다. 우리 조 모두는 다들 답사를 가는 사실에 대해 다 들떠있는 상태였다. 무척이나 들떠 있던 우리에게 서산이라는 “가장 먼 곳으로의 답사”는 그 들뜬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더 먼 곳에 간다는 것은 알 수 없는 재미있는 것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었고, 더 먼 곳으로 간다는 사실로 우리는 교수님과 함께 동행할 수 있는 엄청난 행운을 가지게 되었다. 교과서 속에서 보기만 했던 마애삼존불을 본다는 사실은 충분히 이번 답사가 기억 속에 남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했다.
답사 떠나기 준비
우리는 서산 시청 인터넷 사이트를 찾게 되었고, 그 사이트를 통해서 우편으로 서산에 관한 자료들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답사 코스를 짰고, 그 코스 중에 있던 관광지들을 각자 하나씩 맡아서 인터넷을 통한 자료조사를 하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개심사”를 맡게 되었다. 사전 조사에서나, 직접 가서 본 것이나, 모두 느낌이 좋은 절이었다. 특히 예전에 수강했던 ‘문화재해설’ 수업에서 배운 맛배지붕, 팔작지붕, 주심포, 다심포 양식,, 등등의 지식들을 다시 한번 들추어 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것들을 조원들에게도 가르쳐 줄 수 있다는 사실과 문서상으로만 만난 절을 직접 가서 본다는 사실은, 답사를 더욱더 설레이게 만들었다. 우리는 이렇게 자료 조사를 마치고 서산까지 가는 교통편에 대해 고민했다. 교수님께서 차를 가져가신다고 하셨고 우리들 중 한 명도 차를 가져가기로 했다. 우리는 서해대교를 통해 서산에 가리로 했다.
드디어 답사
서해대교를 처음으로 건너서 신기했다. 다리가 참으로 길다는 생각을 했고 또한 옆의 갯벌이 바로 보였던 까닭에 손을 뻗고 싶어지는 충동을 자꾸만 느꼈다. 인터넷 사진으로 본 서해대교는 정말 아름다웠다. 우리도 내려서 바다를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차를 이용한 답사는 생각보다 다양한 곳의 관광을 우리에게 허락하였다. 우리는 교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열심히 쫓아가곤 하였지만 번번이 처음 보는 문화재들에 마음들이 빼앗기어 속도가 늦추어지곤 하였다.
사실 서산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필자는 ‘내 친구의 고향’이라는 느낌 밖에 가지지 못하였다. 서산이 고향인 친구의 집에 놀러갔을 때 나는 그렇게 드넓게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논이 펼쳐져 있는 광경을 난생 처음 보았다. 그 광경은 바다를 보는 것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논이 많은 시골로만 알고 있던 서산을 답사하게 된 것이었다. 다시 방문하게 된 서산은 저수지가 풍부한 물을 가지고 있었고 차를 세워 몇 발짝만 가면 손에 물이 닿을 거리에 있는 물가가 너무도 부럽게 존재하고 있었다. 또한 서산에는 드넓은 초원이 많았는데 제주도를 온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또 인상적 이였던 것은 꽃의 색깔이었다. 공해가 심한 서울의 꽃들은 떼가 탄 듯한 색깔들을 가지고 있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를 늘 고민했었는데, 서산에서 본 꽃들은 제대로 된 꽃색을 가지고 있었다. 돼지에 옮겨질 균 때문에 소독을 한다며 차에 소독약을 뿌리던 길가의 소독기. 우리는 일명 그것을 ‘찍찍이’라고 불렀고, 그 ‘찍찍이’를 지날 때마다 창문을 급하게 올리는, 소동 아닌 소동을 치렀다. 햇살도 깨끗했던 것만 같았던 서산에 대한 인상들은 좋은 기억으로 필자에게 남겨졌다.
첫 번째로 들른 마애삼존불은 교과서에서 보는 것만큼이나 신비로운 빛을 간직하고 있었다. 필자는 솔직하게는 사진의 예술성으로 인해 신비롭게 보이는 것이려니 하고 교과서 안의 사진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뢰성을 가지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직접 와서 본 마애삼존불상의 미소는 부드럽고 신비로웠으며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것 같은 느낌도 주는 것 같았다. 주변의 형광주황색으로 칠해진 지붕들은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였다. 우리도 독일처럼 지붕 색깔도 신중을 기해서 칠해야 하는 철저한 건축법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하였다. 무분별하게 세워진 큰 간판의 가게들도 건축법에 적용시켜 우리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그 아름다움을 마음껏 뽑낼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개심사는 조사했을 때 느꼈던 것보다 훨씬 예쁘고 작았으며, 그 작은 느낌은 초라한 것이 아닌,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특히 교수님께서 사주신 아이스크림 쭈쭈바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공사 중으로 다 보지 못한 문화재들도 잊을 수 없는 답사지였다. 우리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짜여진 사진을 보고 온 터라 조금은 기대를 가졌던 것 같았다. 그러나, 언젠가 안동에서 본 논 밭 한 가운데의 문화재가 생각이 날 정도로 우리나라의 문화재 관리 실태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답사지였다.
해미읍성은 그 잔인하고 슬픈 역사와는 다르게 평화로운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바람이 많이 분 날이었으므로 드넓게 깔린 잔디는 더 예뻤고 고고한 자태를 가지고 그늘을 만들어주었던 아름드리 큰 나무들과 소나무는 잎이 무성한 가지들로 시원한 바람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팔을 벌리고 있으면 마치 ‘여기는 우리의 성이야!’ 하는 자유로움마저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이 곳에 정말 그런 잔인한 박해가 이루어졌을까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여숫골은 조금은 인공적인 느낌을 잔뜩 주었다. 암매장 당한 사람들을 기리는 곳은 정작 조금한 곳이였고, 여숫골 전체의 느낌은 마치 아파트 공사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대리석으로 세워지는 높은 건물들은 유적지라기보다는 무분별한 개발현장 같은 느낌을 주었다. 주변의 마구 파해쳐져 있던 넓은 지역의 흙들은 그 숙연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둘러본 수덕사는 생각보다 매우 큰절이었다. 물론 산꼭대기까지 가지는 못하였지만, “스님이 공부해요”라고 쓰여진 작은 나무 팻말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이미 관광지화 된 절이었다. 수덕사를 가서 관광개발에 대해 가장 많은 고민을 했다. 다시 세워진 탑의 윗부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금색으로 재현되었고, 수덕사 입구는 수덕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우리나라 어느 관광지를 가더라도 살 수 있는 것들을 모아서 파는 지저분한 상가밀집 지역이었다. 수덕사만의 기념품을 만들 수는 없었던 것이었을까, 수덕사 입구는 여느 관광지처럼 이렇게 획일적인 모습이어야만 했을까, 주차장은 소박하게 환경훼손 없는 방법으로는 만들 수 없었던 것이였나. 나는 관광개발업자들에게 양심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무계획적인 개발이 아닌 지속가능한 관광개발에 대해 왜 생각을 못하는지 많이 화가 났다. 그래도 수덕사 우체국과 화장실은 전통적인 분위기와 어울리게 되어있어서 조금이나마 뿌듯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표지판으로만 보았던 ‘고건축 박물관’은 정말 가고 싶었지만 다음 기회에 가야만 했다. 퇴근시간 다가오고 있었고 우리는 모두 차가 막히는 것을 걱정해야했다. 잘 알지 못하는 조원들과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고, 좋은 것을 많이 보고 온 답사가 되었다. 피곤하셨을 텐데, 우리와 동행해 주신 교수님께 너무 감사한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다. 답사도 교수님 덕에 잘 다녀왔지만 더더욱 감사드리고 싶은 일은 바로 나가 속하게 된 ‘우리조’를 만나게 해주신 일이다. 이렇게 행복하게 조모임을 해 본 일이 없는 것 같다. 정말 모두다 멋진 조원들과 앞으로도 행복한 만남을 계속 가지고 싶다.
수업 “문화관광산업론”
답사를 통해 우리나라 관광개발에 관한 고민을 해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지만, 그 뿐만이 아니라 수업 내용을 통해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더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비디오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우리가 관광을 공부하는 사람들로서 무엇에 대해 고민을 해야하는지를 더 확실하게 전해준 것이 비디오 시청 수업이었던 것 같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부분 중에 선진국에 비해 관광문화유적을 보호하는 수준에 대한 안타까움은 많이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이었고, 그 안타까움은 교수님의 경험담을 통해 더욱 잘 전달되었다. 교수님께서는 천주교라고 하셨는데 불교문화에 대해서 잘 알아야 우리나라의 문화를 잘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하신 부분은 정말 인상에 많이 남았다.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더 알려주시려고 하셨던 교수님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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