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익의 좌익 학살 자료 민간인 학살의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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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우익의 좌익학살 자료
1. 민간인 학살의 개념
한국전쟁 전후에 발생한 대부분의 학살 사건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한국 전쟁은 그 어떤 전쟁보다도 민간인 희생비율이 높은 전쟁이었다.
2.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한국전쟁의 성격
625전쟁은 대한민국과 인민공화국이라는 두 분단국가가 민족통일을 위해 시작한 내전, 즉 시민전쟁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이 전쟁의 성격을 해방 후 국가형성기에 좌우익 갈등으로 파생된 민족내부의 문제가 시민전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전쟁은 고도의 정치적인 행위가 물리적으로 폭발하면서 시작되었지만 갈등의 양상은 폭력의 형태로 나타났다. ‘625’라는 시민전쟁이 국제전쟁 또는 체재전쟁의 차원으로 확대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와 무관하게 시민의 일상생활은 생존이란 측면에서 강하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적으로 시민전쟁은 수많은 인적물적 피해를 동반해 왔는데, 625전쟁에서는 민중에 대한 폭력행위가 의식적으로 행해졌다는 점에서 생존전쟁이라는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
생존전쟁이란 시민전쟁 속에서 전쟁의 비주체인 민중들이 전쟁의 주체인 쌍방으로부터 적대적인 적으로 간주되어 학살되고 폭력을 당하며, 한편으로는 약탈과 동원의 대상이 됨으로써 그들 사이에 야기된 생존적인 양상을 말한다. 다시 말해, 전쟁을 한 주체와 다른 주체와의 전투행위라고 본다면 전쟁지역에서 살고 있던 대다수의 일반 사람들은 어느쪽의 주체에도 서지 못하는 불완전성을 갖는다.
민중은 인민군이나 국군이라는 전쟁의 주체가 벌이는 전투행위의 추이도 중요하게 보겠지만 본능적으로 생존문제에 더 매달리는 경향이 클 수 밖에 없다.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느쪽이 이길 것인지, 또는 어느쪽에 서야 옳은 것인지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민중들은 전쟁 주체 쌍방 간의 인력으로 동원되면서 다시 폭력을 당하는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와 같이 625 전쟁은 시민전쟁이면서 민중이 겪은 생존전쟁이다.
3. 학살의 배경
* 구조적 배경 : 국가 건설, 혁명, 내전의 삼중주
집단학살은 분명 전쟁의 산물이다. 한국전쟁은 남한 지역에서 유격대 활동이 퇴조기에 접어들 때 시작되었는데, 이는 좌익의 입장에서 보면 정치 갈등과 정치폭력, 봉기 등을 통한 노선이 모두 실패로 끝난 뒤, 그러한 적대와 갈등을 무력에 의해 완수하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치폭력이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으로 일단락되고, 결국 북한의 전면전 개시로 인해 내전으로 비화되었다는 점에 있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는 게릴라전과 정규전이 병행되었으며 남북한 군대의 후퇴와 진격이 반복되었고 미군과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 국토가 전쟁터로 변했기 때문에, 민간인 피해나 학살이 더욱 전면화대량화되었다. 전쟁 발발 후 남한 군대가 저지른 학살의 규모가 가장 컸던 것도 전쟁이 그 이전 정치폭력의 연장선 속에서 내전과 유격전쟁의 양상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쟁 당시와 한국전쟁 당시의 학살이 대단이 유사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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