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인 관계와 중국 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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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천명’과 중국정치사상
천인관계와 중국정치사상
초기 천(天)의 개념은 인간에 대한 절대적 주재자로서 인간의 일에 간여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었지만(천인상분), 은주 교체기에 천(天)의 개념은 인간과 뗄 수 없는 관계로 달라지기 시작했다(천인상응). 이렇듯 보이지 않는 신의 세계보다 지금 살아가는 현실의 세계를 중시하는 인문주의적 사상풍토는 일찍부터 형성되었으며, 공자에 이르러 획기적인 관념의 전환을 이루게 된다. 공자 역시 천에 대해 신비주의적 정서를 다분히 갖고 있었지만 그의 언행은 항상 인간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였다. 공자가 제기한 인학은 인간관계의 원리원칙으로 유가사상의 핵심을 이루었고 나아가 중국인의 정치의식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현실을 중시하고 인간을 앞세우는 사고는 순자에 의해 잘 계승되었는데 『순자』 「천론」에서 “천인(天人)의 구분을 분명히 하면 지인(至人)이라 부를 수 있다.”라는 표현에서 천인관계에 대한 포괄적 통찰력을 지닌 사람이야말로 위대한 정치가라고 보았다.
그러나 순자 이외의 전국시대 제자백가의 대부분은 천인합일을 주장하였으며 인간은 천(天)의 제약 속에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즉 천과 정치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천인관계에 대한 순자의 생각은 육가(陸賈)를 거치면서 다분히 신비주의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으며 동중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존 제자백가의 천인관계론을 종합 집대성했다. 동중서는 군주전제를 기본 이념으로 삼아 국가의 흥망성쇠를 통치자의 작위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과거 역사를 분석하고 선대 군주의 공과를 분석했으며, 자신의 독특한 군권 관념의 기초 하에 천인관계를 재정리했다. 특히 군주에 대한 사고는 네 가지 측면, 즉 군권신수, 천을 본받는 정책, 천도에 어긋남으로써 발생한다는 천벌 관념, 유학의 여러 이념을 천으로 여기는 측면에서 과거와는 다른 천인관계론을 정립했다고 할 수 있다. 동중서는 『춘추』를 통해 모든 것을 인식하면서도 인간사회와 우주의 구조를 하나로 취급했으며 정치 문제를 천인관계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독특한 관념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동중서의 사상적 영향력은 한(漢)대 전체에 미쳤고 그의 천인관계론 때문에 한(漢)대 유학은 신비주의적 요소를 많이 띠게 되었다. 이러한 동중서의 천인관계에 대한 신비주의적 해석은 차침 민간 깊숙이 파고들어 시대의 추세로 자리 잡았고, 천명 관념을 혁명 관념으로 개조하여 삼통설(三通說)에 입각해 개제(改制)를 시도한 것은 왕망 등 후대 정치인들의 이론적 무기가 되었으며, 참위(讖緯)와 결합하여 왕조교체의 정당성을 만들어내는 도구로 이용되었다.
한나라 무제의 독존유술 정책은 공자의 신격화와 오경의 신성화를 불러일으켰고, 오경이 관학이 되면서 ‘경’의 뜻을 위반하는 것은 법을 위반하는 것과 같이 취급되었다. 그리하여 오경을 신성화하여 천명에 의한 예언을 담은 위서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위서는 도참설과 더불어 서한 후반부터 크게 유행하면서 천명 관념은 상상이 아니라 진실로 받아드려졌다. 이러한 천명은 새로운 왕조의 정당성을 살리거나 정권교체의 논리로 이용되었으며 왕망을 물리치고 새로운 정권을 창출한 광무제 유수 또한 ‘천인감응’에 의한 천명의 갱신을 논리로 활용했다.
위진남북조시대 천인관계에 대한 관념의 변천은 두 가지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하나는 동중서의 ‘천인감응론’이 발전한 형태로 왕조의 경질과 흥망성쇠를 천명으로 설명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천인관계의 발전으로 천과 인이 서로 다른 존재로써 작용한다는 설명 방식이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천명을 인간사회의 사유 속으로 끌어와 현실사회의 중대한 사건들을 설명하는 데 이용하곤 했으며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였다. 청나라까지도 천명의 교체를 정권의 정당성 논리로 이용했다는 점은 신비주의적 천인관계가 전통시대 내내 사회적으로 수용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수당시대는 유교, 도교, 불교를 겸하려는 사조가 유행하면서 기존 천인감응론에 대한 비판과 부정이 이루어졌다. 어느 것이 진짜 ‘도’인지 논쟁이 치열했고 천명보다는 천도에 관심이 많았다. 당나라 유학자 왕통 또한 천인감응론적 신비주의를 벗어나려고 애썼으며 다시 천인관계의 중심추를 인간에 놓고자 했다. 또한 유종원은 아예 『유하동집』 「정부」 편에서 통치자들은 천명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인간사를 중시하는 어진 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인간세상으로 내려온 현실적인 천인관념은 한유에 이르러 다시 천명론의 깃발을 꺼내들고 천인감응론에 기울게 된다. 한유는 천도자연설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인의로써 세상을 구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유가 전적으로 신비주의적 천명관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도’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천도를 끌어다 입론의 발판으로 삼았던 것이다.
한유의 절대적인 영향력 하에 정립된 송명이학은 기본적으로 천명보다 천도에 관심을 둔다. 성리학자들에겐 천명보다 도통이 중요했다. 이로써 천명 관념을 중심으로 한 천인관계론은 도덕법칙을 강조하는 천도와 천리가 중심 관념으로 다루어진다.
혁명과 방벌
중국의 천명 관념과 관련된 가장 뜨거운 이슈는 그것을 바꾸는 일 즉 혁명일 것이다. “하늘과 땅이 혁(革)하니 사계절이 이루어졌다. 탕왕과 무왕은 혁하여 하늘에 따르고 사람에 응했다.” 라는 『주역』 「혁괘」의 <단전>에는 혁명의 정당화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맹자는 왕위를 교체한다는 ‘역위’, 포악한 군주는 죽여도 된다는 ‘주일부’ 등을 제기하며 탕무혁명론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순천응인(順天應人)은 역사상 수많은 혁명의 근거이자 새로 탄생한 왕조에게 합법성과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논리였다.
‘벌(伐)’이란 정의의 이름을 내세운 공개적인 공격행위를 일컫고, ‘정(征)’은 천자의 명령을 받들어 다른 민족 또는 아랫사람을 공격하는 행위를 말한다. ‘정벌’은 정치적 정당성을 가진 왕이 부당하게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을 공격하여 없애는 행위를 말하는데 신하였던 탕이 주군이었던 걸을 벌한 것은 이와 모순된 논리임에도 불구하고 『서경』에서 ‘정의’를 앞에서 ‘벌’했다고 평가한 것은 신하였던 무가 왕인 주를 벌함이 정당하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함이었다. 이렇듯 ‘천명의 변혁’은 이를 설명하려는 무기이다.
천인관계에서 천이 인간보다 높으니 인간이 아닌 천의 이름으로 정벌을 했으며 그것이 혁명이다. 혁명과 방벌은 춘추전국시대 유가사상가들에게 정당화되었지만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논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군주에 대한 시해냐 천명의 집행이냐를 둘러싼 논쟁이고, 다른 하나는 혁명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냐 피할 수 있는 것이냐를 둘러싼 논쟁이다. 이러한 격렬한 논쟁이 한나라 정권성립의 정당성 문제로 비화되면서 ‘탕무혁명’ 관련 논의는 금지되었다. 권력자 측면에서는 혁명을 둘러싼 논쟁은 이익보다는 손해가 더 크기 때문이다.
동중서는 더욱 정교하게 천인합일론을 제기하면서 천명론으로 혁명론을 대신했다. 천명과 왕권은 동일시하고 ‘신왕개제’론을 제기하여 영명(永命), 즉 현 왕조의 영원한 생명을 이론적으로 받쳐주었다. 이런 간접적인 혁명론은 한 제국의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서 하나의 사조로 다시 부활했다. 황제들 스스로 유덕한 사람이 되어 천명을 다시 받고 싶어 하는 경명(更命)논의는 폭력에 의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현명한 사람에게 양위하는 ‘선양론’과 연결되어 평화적 정권교체는 정권 말기 왕들에게도 한 가닥 살 길을 열어주었다.
혁명은 언제 일어나는가? 위서는 현재 천자가 포악하여 천지가 돌아서면 천지운행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신성한 암시를 받아 혁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혁명은 왕조가 바뀐다는 점에서 커다란 사회변동임에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왕-신하-백성의 구조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군주전제체제는 불변하고 왕이 바뀌는 것에 불과했다. 따라서 남북조시대 왕조가 무시로 바뀌는 상황에서 무수한 혁명론이 등장하지만 체제의 변화를 기획한 진정한 의미의 혁명논의는 거의 없었다.
혁명론을 정권창출의 정당화논리로 구현한 가장 성공적인 사람이 당 태종이다. 당나라 이씨 왕조의 합법성을 논증하기 위하여 당 태종은 ‘하늘에 순응하여 혁명을 했다’고 주장한다. 혁명은 하늘이 정해준 일이고, 그렇게 왕이 된 사람은 유덕한 행동을 해서 민심을 얻으면 된다. 민은 혁명의 주체가 아니라 혁명의 완성을 위한 수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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