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한국인 징용 문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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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일제의 한국인 징용문제’ 보고서
5월27일 오후1시 인문대학에서 조선인 강제 징용을 주제로 한 <한국인 징용 문제를 다시 생각하다> 세미나가 열렸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일제의 한국인 징용문제에 대해서 교수님이 올려주신 자료를 참고하고 개인적으로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글을 써보려 한다.
나는 그 동안 징용문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대충 일제가 전쟁 때 강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을 징용해갔다. 이 정도 수준으로만 알고 있었고 자세한 내용은 잘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해남도사건, 사할린 강제동원, 위안부, 마루타사건 등 이번에 조사하면서 자세하게 알게 된 내용들이다.
‘해남도 사건’이란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이 한국인들을 중국 해남도로 끌고 가 강제노역을 시키고 그 가운데 1000여명을 무자비하게 살해 해 산기슭에 암매장한 끔찍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실은 중국 하이난성 정협의 발간자료의 의해 처음 밝혀졌으며 이 자료에 따르면 일본군은 총알을 아끼려고 칼로 난도질하고 기름을 부어 불에 태우는 등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살해해 파묻었다고 한다.
일본의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행동에 정말 화가 치밀어 올랐고 피해자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이러한 자료 외에도 여러 가지 증언과 자료들이 이 사실을 뒷받침 해주고 있지만 일본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에 또 다시 화가 났다.
‘일본 사람들은 대만, 중국 사람은 감시를 안했는데 유독 한국 사람에 대해서는 감시를 심하게 하고 일을 못하거나 하면 곡괭이 자루로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굶어죽고 맞아죽고 찢겨져 죽었고 탈출하다 잡힌 동료 2명은 매질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했다’ 생존자 ‘고복남’님의 증언이다.
이처럼 일본의 비인간적인 학살행위는 명백한 사실이며 일본은 하루 빨리 이점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와 보상을 해줬으면 한다.
다음은 위안부문제이다. 아마 위안부문제는 대부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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