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 성왕으로 기억될 수 있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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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세종대왕의 국가경영
-세종이 성왕으로 기억될 수 있었던 이유-
Ⅰ서론.
대부분의 대학들은 “사학과”란 이름을 가지고 세계의 역사를 가르친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역사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때 배우던 세계사 수업의 심화된 것을 가르친다. 그러나 나의 대학은 “사학과”가 아닌 “국사학과”라는 이름을 내걸고 우리들의 역사를 심화시켜 가르친다. 다른 나라의 역사를 배우지 않기에 좁은 시야를 가질 수 있다고 평가받을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선조들의 지혜와 지식을 배우고 그들의 발자취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거울삼아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해 나갈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시대마다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상이 있다. 조선시대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사상은 유교사상인데, 이것은 조선시대의 왕들의 정치나 사상, 혹은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주었기에 조선시대의 사회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고려해야할 요소이다. 공자를 시조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 사상인 유교는 조선의 왕가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적장자에게 왕위를 계승하는 종법이 조선 왕실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점이다. 유교는 “종법”을 통해 적장자가 왕위를 잇는 것을 당연시하게 만들었으며 그 때문에 적장자가 왕이 되지 않을 경우 많은 분란이 일어났다.
예를 들자면 조선이 2대왕이었던 정종. 그는 왕자의 난 때에 권력을 잡은 이방원에 의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비록 태조의 적장자였던 방우가 죽었기에 왕위를 잇지 못해 두 번째 아들인 정종이 왕위를 이었으나 그 자리마저 후에 태종 이방원에게 빼앗기고 만다. 이방원과의 권력싸움에서 정종이 밀려난 것으로 보여지고 있긴 하지만 나는 이것이 종법에 따른 적장자인 방우가 왕위를 잇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적장자가 왕위를 이었다면 유교를 숭상하던 신하들이 그의 왕권을 이방원의 권력에서부터 보호해 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더 든다면 세조. 세조는 적장자로써 왕위를 계승한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그는 당시 조선을 지배하고 있던 유교의 종법을 거스르고, 자신의 왕위찬탈을 비판하던 성리학자들은 제거하는 등의 피바람을 몰고 왔다. 그로 인해 그는 지금까지도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악당(?)의 이미지로 후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세종 역시 종법에 어긋난 왕위계승을 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당시의 질서에 어긋난 왕위계승을 하였음에도 부정적인 평가가 아닌 한글을 창제하고 만 백성의 고통을 덜어주고 그들을 위해 산 성왕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물론 세종 개인이 정치를 잘했기에 그런 모습으로 그가 기억 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이유를 그의 즉위과정. 즉 세종의 아버지였던 태종의 즉위, 그리고 그가 세종을 위해 만들었던 정치적 여건에서 찾겠다.
Ⅱ 본론
1)태종의 즉위
태종은 여말에 태조 이성계가 신흥세력으로 부상하면서 성리학자의 핵심세력인 민제의 사위가 된다. 과거에 급제한 이방원은 조선건국을 주도하는 핵심세력이 된다. 조선이 건국되자 정도전이 신덕왕후의 세력을 등에 입고 태종을 지지하는 성리학자들과 대립하자 태종은 정도전의 난을 진압하며 권력을 잡고, 종법에 입각하여 죽은 적장자 방우를 대신하여 방과(정종)을 왕으로 추대한다.(사실 방우에게는 복근이란 장자가 있었기에 차 적장자인 복근을 왕으로 세워야 했다.) 방원은 정종의 양자가 되어 왕위를 종법에 입각하여 계승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제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한 이방원은 정종의 왕위 유지의 필요성이 없게 되었다. 정종은 방원이 책봉된지 10개월 만에 방원에게 선위하고, 그 2일 뒤에 즉위하게 된다.
태조는 정종의 방원에게 선위할 때 이르기를 “방원에게 선위해도 어쩔 수 없고, 선위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고 하며 불만스러움을 표하고 있으며, 이미 선위를 하고서 보고하는 정종의 처사에 대하여 소외감과 실망을 느꼈던 듯 하다.
방원의 세자책봉, 정종의 선위는 부왕 태조와는 의논 없이 이루어졌으며, 국가의 가장 중요한 왕위계승문제를 태조를 철저히 소외시킨 가운데 행한 것은 정종의 뜻이라기보다는 방원과 친 방원 세력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적장자가 아닌 다섯째 아들로써 왕위에 오른 태종. 게다가 그는 정종을 왕으로 내세운 후 그의 양자가 되어 왕위를 계승한다. 그런 그의 왕위 계승은 세종대왕이 적장자가 아님에도 왕위에 올린 상황과 연관이 있다 생각한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세종대왕의 국가경영 김영수 2007
조선전기정치사 지두환 역사문화 1993
조선시대 문화와 사상 지두환 역사문화 1995
참고 사이트
http://cafe.naver.com/sam10/159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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