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7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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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그리스 칠현인-七賢人
고대그리스의 인물 중 뛰어난 업적의 인물로 후세 사람들이 선출한 7현인.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7현인 명부는 플라톤의 《플로타고라스》에서 찾아볼 수 있으나, 그 뒤 4세기 무렵까지 7현인으로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20명도 넘는다.
7현인의 명부가 작성된 것은 BC 6세기 무렵으로 추측되고, BC 1세기 말의 사가(史家) 디오도루스나 2세기의 여행가 파우자니아스 등에 의하면, 탈레스·비아스·피타코스·클레오브로스·솔론·히론·페리안드로스로서 거의 동시대(BC 7∼BC 6세기)의 사람들이다. 7이라는 숫자는 필시 7이라는 숫자의 숭배에 의존하고 있으며, 정치적 혼란 때문에 고심하던 후세사람들이 사회적·정치적 활동 및 업적에서 뛰어난 인물을 이상적 인물로서 선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명부작성자에 따라 7현인이 다르지만, 탈레스·비아스·피타코스·솔론 4명은 거의 언제나 들어 있다. 7현인의 일화(逸話)나 명구(名句)는 그리스인의 정신적 의지가 되는 근거로 전해지고 있다.
크산티페
어느 자료에 대하면 크산티페는 악처라기는 보단 좀 잔소리가 많고 화를 잘내는 아내였는데, 그녀의 행동으로 아마 악처로 유명해진것같다.
하나의 행동으로 크산티페가 하루는 화가 나서 남편에게 물벼락을 준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관점에서는 그녀가 악처처럼 보이겠지만, 그녀의 관점으로 본다면 그녀가 한 짓은 바로 그녀의 남편 소크라테스가 일도 않하고, 돈도 안벌어오고 보기에는 영판 쓸데없이 생각만 하는 구차한 남편으로 보아서였을 것입니다.
그는 아테네의 젊은 이들에게 많은 교훈을 남기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처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웃음을 전해주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처는 세계에서 내놓라하는 세계3대 악처로 손꼽힌다. 이러한 악처와 함께 살던 소크라테스의 인품은 다음 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 어느날 소크라테스의 집에 많은 제자들이 찾아 왔다. 항상 많은 가르침을 받기 위해 소크라테스의 집에서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늘 소크라테스의 처는 이 일이 불만이었다. 그래서 그의 남편에게 항상 투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제자들이 소크라테스의 집을 찾았다. 밤늦은 시간에 아내는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소크라테스에서 소리 지르며 이 늦은 시간에 손님을 데려오면 어떻게 하느냐며 소리를 버럭 버럭 질러댔다. 제자들과 소크라테스는 쥐죽은 듯이 듣기만 하였다.한참 시간이 지나서 그의 아내는 성이 들풀렸는지 소리 소리 지른뒤 그릇에 물을 담아 소크라테스의 얼굴에 부어 버렸다. 소크라테스의 얼굴에는 온통 물에 빠진 생쥐 모습이었다. 이 광경을 지켜 본 제자들이 기가막혀 너무한다는 뜻으로 그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에게 말을 건냈다. " 선생님! 그동안 선생님의 아내에 대한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정도는 너무 한 것 아닙니까? 이정도면 이혼할 사유가 될 것 같습니다. 왠만하면 이혼하시죠?"라고 이말을 듣고 있던 소크라테스가 답했다."이보게들! 천둥이 치면 비가 오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그리고 비가 오고 나면 화창한 날이 올거야"라고...
이것으로 보아서 소크라테스는 침착하고, 불만없고, 자신을 억제할 수 있고, 자신을 무엇보다 잘 아는 위대한 철학자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모르는 그의 아내는 우리가 볼때 아무것도 모르는 악처라고 볼 수 있겠지요.
소크라테스 ( Socrat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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