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건국으로 살펴본 말갈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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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건국으로 살펴본 말갈의 의미
발해는 남북한과 중국뿐만아니라 일본 러시아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국가입니다. 이중 발해의 성립과 그 정체성을 두고 많은 이론들이 있습니다. 즉 발해가 말갈의 역사냐 고구려를 계승한 한민족의 역사냐 등이지요. 그 핵심키워드는 발해 건국에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말갈을 어떻게 보느냐도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본고에서는 말갈에 관한 기존의 연구에 몇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토대로 말갈이 고구려와 발해에게 어떠한 의미였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일단 구당서등에는 말갈은 7부로 나누고 각 말갈의 위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흑수말갈이 있는 흑룡강 일대부터 송화강의 속부말갈이나 백두산근처의 백산말갈이 보입니다. 그러나 부여에 영토에 관한 기록에서 보면 백두산이나 송화강등은 모두 부여의 영역에 속합니다. 후대의 고구려 역시도 이 지역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즉 중국사서가 이야기하는 말갈 위치가 부여 고구려와 겹치고 있다는 것이지요.
비록 유목민의 특성인 비정주성을 본다하더라도 많은 의문을 가집니다. 특히 말갈의 전신으로 보는 숙신과 물길 읍루는 부여와 고구려와 적대적 관계를 가지기도 하는데, 자신의 영토에 그 후신인 말갈을 가만 둔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고 따라서 말갈은 숙신 읍루와 다른 개체인데 중국에 사가들이 잘못 이해했을 수 있으면 혹은 고구려에게 말갈은 적대민족 후신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말갈에 관한 의문은 발해의 지배체제에 있습니다. 중국의 이민족 지배도 물론이거니와 요, 금, 원은 한족이라는 다른 민족을 통치하기 위해 이중지배구조를 가집니다. 대표적인 것이 요의 남북추밀원사와 금의 맹안모극제와 주현제 원의 차별정책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발해가 말갈과 고구려인이라는 이중 민족이 합쳐졌다면 다른 하나를 통치하는 제도적 장치나 통합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발해에는 이러한 것을 찾을 수 없으며 특히 말갈족이 만든 나라라 해도 7부로 나누어진 말갈을 통합하는 과정역시 없으며, 고구려인이 새운 나라라 해도 대 중국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말갈을 재편하는 기록도 없으며, 5경 15부 62주로 재편하는 가운데 발해의 통합의 흔적은 없습니다. 북한학계에서는 말갈인의 비율이 매우 적었다라고 하지만 이렇게 주장하려면 많은 사료들이 부정되어야 하므로 차라리 고구려와 말갈을 구분하고 통치할 필요가 없었다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고구려 멸망이후 말갈과 고구려 유민의 관계 역시도 의문이 듭니다. 첫 번째는 약 10만이상의 고구려민이 당으로 끌려갔다해도 많은 수의 유민이 있었을 텐데 나당전쟁 이후 대당투쟁의 주체는 말갈로 서술되기 시작합니다. 더불어 대조영을 비롯한 발해건국집단이 말갈인으로 서술된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보장왕의 경우도 대당투쟁을 위해 말갈과 내통했다고 했는데 이것으로 보아 말갈이 고구려 복권에 힘을 쏟습니다. 이는 결국 말갈이 고구려의 예속된 민족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고구려유민이 말갈과 함쳐졌던가 아니면 중국의 입장에서 말갈이나 고구려 유민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더불어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이 있었고 대조영의 출자지인 영주에서 이진충은 거란인들과 난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갈이나 대조영이 참여한 기록은 찾을 수 없습니다. 즉 말갈은 거란과는 다른 행보를 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이는 당나라를 역공할 수 있는 호기임에도 말갈은 새로운 나라를 새우는데 더 주력하고 있음을 시사하며 이로보아 말갈은 다른 유목부족과는 다른 특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갈로 돌아가서 말갈과 관련된 기록을 보면 말갈은 고구려 군대로 자주 이용됩니다. 그리고 강제징병군대라고 보기 힘들정도로 많은 전과를 올리기도 합니다.
더불어 정약용은 말갈이라는 명칭은 돼지와 개의 가죽을 입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바꾸어 말하면 말갈에는 낙후한 문명에 대한 의미가 내포하고 있음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또한 중국에서는 말갈의 선부족을 숙신, 읍루, 물길로 보고 있는데 활을 잘쏘나 매우 미개하다고 보고 있으며 물길의 경우 부여를 멸망시킬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비록 중국 사서가 숙신-읍루-물길-말갈의 선후구조를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앞서 밝혔듯 고구려 부여등을 공격한 적대민족의 후신이 어떻게 고구려와 함께하고 멸망후 발해주체세력이 됐는지는 이해가 안됩니다. 차라리 중국에서는 동북지역의 유목민들을 숙신-읍루-물길-말갈등으로 통칭했으며 이 부족들간의 혈연적 계승을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말갈의 무덤은 수혈식토광묘가 많은데 이는 고구려가 사용하던 적석봉토분에 비해 낙후하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문화적 차이의 반영보다는 계급적 차이로 해석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내용을 통합해 보면 말갈과 고구려는 결코 다른 민족성을 가졌다고 보기 힘들면 오히려 고구려가 있던 지역에서 피지배계급을 통칭 말갈이라 하였고 고구려는 지배계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특히 양자간에는 경제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여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게 된게 아닌가 한다 즉 고구려등은 농사에 주력하고 당의 문물을 받아들인 선진 지배계급이고 말갈은 수렵에 의존하는 하급 피지배계급으로 볼 수 있으며 둘간의 혈연적 차별성을 강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계급관은 후대의 농사가 보편화 된후의 계급관과는 차이가 있겠으나 고구려와 말갈의 강력한 연대와 발해 건국에서의 말갈의 역할을 본다면 말갈에 과한 정의는 고구려에 예속된 민족에서 넘어설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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