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적 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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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풍수지리적 관념
1. 풍수(風水)의 개념
일반적으로 부르는 풍수(風水)라는 말은 ‘풍수지리학’의 줄인 말이다. 감여(堪輿), 지리(地理) 또는 지술(地術)이라고도 하는데 국제적 학술용어로는 중국 북경어의 풍수(風水:Feng Shui)를 그대로 사용한다. 감여란 한자 훈으로 하늘의 수레를 의미하는데 이는 우주만상을 잘 지탱하여 싣고 있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천지(天地)와 동일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조화라는 관점에서 관찰할 때는 하늘보다는 오히려 땅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지리나 지술과 마찬가지로 감여에 통한다고 하면 지리의 길흉을 판단함에 능한 것을 말한다.
지리(地理)란 산수(山水)의 지세, 지형이라는 의미이며 땅이 살아있고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하고 땅과 인간과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관찰하는 것으로 동양의 지리학이 현대의 지리학과 다른 점이 바로 이 것이다. 즉 현대의 지리학에서는 땅을 무생물로 취급하여 인간의 거주 지역이자 인간생활을 돕는 재화(財貨)의 생산 또는 기후와 풍경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땅은 인간의 이용에 맡겨지는 피동적(被動的) 위치에 있다. 그러나 지리는 땅을 능동적인 것으로 보아 만물을 키워내는 생활력을 가지며 이 활력의 정도에 따라 인간에게 길흉화복을 준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땅에 있는 생기(生氣)는 바로 인간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보아 만물의 탄생, 성장하는 힘의 원천, 더 나아가 지모(地母)의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한편 지술(地術)이란 지리의 술(術)을 의미하는데 지리는 지상(地相)에 의해 관찰되고 이 지상을 관찰하는 법이 바로 지술이 된다. 결국 감여, 지리, 지술이란 천지, 지모, 지상의 관찰로 파악할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을 망라한 것이 풍수라고 할 수 있다.
풍수라는 말을 처음 쓴 이는 중국 동진(東晋)의 곽박(郭璞: 276~324년)이라고 한다. 그는 「장서(葬書)」에서 “죽은 이는 정기를 타야 한다. 이것은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고 물을 만나면 머문다. 따라서 바람과 물을 이용해서 정기를 얻는 방법이 풍수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물을 얻어야 하고(得水) 둘째, 바람을 가두어야 한다(藏風).”고 적었다. “죽은 이가 정기를 탄다”는 말은 땅속에 묻힌 사람은 정기를 더 많이 그리고 확실히 받으며 나아가 그 정기는 자손 대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풍수에서 물과 바람을 첫손에 꼽는 까닭을 알아보자. 물은 인간에게 가장 귀중한 물질이고 생존 그 자체이기도 하다. 자연계에 있어서도 물은 필수적이다. 모든 초목은 물을 받아 자라고 모든 동물은 물로써 목을 축이며 목숨을 이어간다. 또 바람은 주거지 선정의 기본 요건이 된다. 우리나라는 대륙성 기후대에 자리한 까닭에 특히 겨울철 북극에서 휘몰아치는 얼음처럼 차갑고 매서운 서북풍이 사람은 물론 산천초목조차도 오그라들게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예부터 산을 등지고 물을 앞에 낀 이른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을 가장 이상적인 터전으로 여겨 왔다. 산을 등지면 병풍을 둘러친 것처럼 아늑하고, 물을 앞에 끼면 사람에게 좋은 것은 물론이고 들판의 곡식도 무럭무럭 자라기 때문이다.
2. 풍수의 기원
한국풍수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학설이 있는데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자체적으로 풍수가 발생하였다는 설과 또 하나는 중국에서 풍수가 유입되었다는 설이다.
먼저 한국 자체 기원설로서 박용숙(朴容淑)은 『삼국유사』의 「단군신화」부분을 재해석하여 우리나라 자체에서 풍수가 발생하였다는 설을 주장하였다. 즉 『삼국유사』에서 "옛날 환인(桓因)이 있었는데 그 서자 환웅(桓雄)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욕심내었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는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라 부르니 이 분이 환웅대왕이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명(命) 질병 형벌 선악 등 인간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을 다스리도록 명하였다. 박용숙은 여기서 환웅이 삼위태백을 보았다는 것을 한울을 건설하기 위해 풍수지리를 보았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태백산 또는 주산 즉 건산(乾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박용숙, 『신화체계로 본 한국미술론』, 일지사, 1975, 13쪽.
그리고 김득황(金得榥)은 『삼국사기』를 인용하여 고구려 유리왕이 위례성으로 천도하고, 또 백제 시조 온조왕이 한산(漢山)에 도읍을 정할 때의 땅을 살핀 기록을 근거로 상고시대에 우리민족도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생활상의 요구에서 필요한 토지의 선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주택을 선택함에 있어서 산수가 놓인 모양을 고려해야 했고, 도읍을 정함에 있어서도 방위와 공격의 지세를 고려하였는데 이러한 토지선택의 방법이 점점 추상적으로 그리고 보다 전문적으로 진보되어 땅을 살피는 하나의 기술(相地術)로 발달하여 갔다는 것이다. 김득황, 『한국사상사』, 대지문화사, 1978, 196~201쪽.
이에 반해 중국풍수의 유입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역사적 사실을 실증적으로 제시하여 이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들 간의 차이점은 도입시기가 삼국시대인가, 통일신라시대인가의 시대간격의 차이뿐이다. 먼저 이병도(李丙燾)는 현존하는 문헌 중 풍수지리설의 존재를 입증하는 최초의 기록인 숭복사(崇福寺)의 비문을 토대로 통일신라 이후 당(唐)과의 문화적 교류가 빈번하였던 때 전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원래 산악국으로 도처에 명당이 널려 있으며 이러한 자연적 환경이 풍수설을 유치한 이유가 되었지만, 통일신라시대 이전 삼국시대에는 아직 이러한 법술과 사상을 받아들인 흔적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병도, 『고려시대의 연구』, 아세아문화사, 1980, 21~30쪽.
그리고 최병헌(催柄憲)은 우리민족에게 풍수가 제대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 불교가 전래된 다음부터였는데 삼국시대에 풍수지리설이 전래되고 있었던 흔적들을 들면 먼저 고구려나 백제 고분의 사신벽화를 보면 당시 삼국의 지배세력에게는 음양오행설이 이해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으며 사신벽화가 그려져 있는 평남 용강군 매산리, 신덕리 및 진지동 소재의 고구려 고분과 충남 부여군 능산리 고분은 그 주위산세가 확실히 풍수지리설상의 조건을 구비하고 있어서 풍수에 의해 선정된 것으로 보았다. 또한 당시 국가간의 문화교류에 있어서 승려의 역할은 순수한 불교의 전교만이 아니라 선진중국이나 서역문화의 수입담당자라는 2중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이어서 고구려나 백제에 풍수를 전해준 사람은 역시 중국을 왕래하는 승려들이었던 것이 틀림없다고 보아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풍수설이 유입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참고문헌
<참고 문헌>
김득황, 『한국사상사』, 대지문화사, 1978.
박용숙, 『신화체계로 본 한국미술론』, 일지사, 1975.
유종근 최영주, 『한국풍수의 원리1』, 동학사, 1997.
이병도, 『고려시대의 연구』, 아세아문화사, 1980.
차용준,『전통문화의 이해 7권 (한국인의 전통사상 편)』, 전주대학교 출판부, 2000.
천인호,『풍수사상의 이해』, 세종출판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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