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이후 천안문사건까지의 미중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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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72년이후 천안문사건까지의
미중관계
당시 미국은 소련의 팽창주의 정책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음
월남전의 패배로 미국의 아시아지역에서의 영향력이 다소 약화된 상태
미국내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안 고조
’70년 초반에는 결국 국제분위기 상에서 소련이 우위를 차지하는 것처럼 느끼게 됨에 따라 미국은 중국의 필요성 느낌
중국은 소련세력의 확산을 봉쇄하는 연합전선 구축이 역시 필요
’68년 체코사태와 관련 소련이 주창했던 ‘브레즈네프 독트린’(제한주권론)은 중국의 안보상 위험부담을 가중
모택동과 주은래가 권력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친미노선을 확정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
’69년 3월 2일 모택동과 주은래의 의도적인 ‘거문도사건’을 일으켜 국내적으로 반소감정을 불러일으킴
1. 배경
중국이 반소친미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던 이유
둘째, 소련의 원조 중단, 3면 홍기운동 등의 계속적인 혁명의 실패로 인하여 자본주의 국가와의 적극적인 교류가 시급했다는것이다.
셋째, 문화대혁명 이후 권력을 잡은 문혁파와 임표중심의 군부는 반소반미노선을 주장했는데 당시 모택동과 주은래가 권력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친미노선을 확정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이는 앞의 내용과 관련된 것으로 서방국가로부터 선진 기술과 자본을 받아들임으로써 경제를 발전시켜 국력을 신장시킴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지지를 유발하여 권력을 획득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그래서 ’69년 3월 2일 모택동과 주은래의 의도적인 ‘거문도사건’을 일으켜 국내적으로 반소감정을 불러일으키며,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게 된다.
’70년대 초반 양국은 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입장을 보였다.
’69년 1월 20일 닉슨 대통령은 그의 취임식에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원한다고 노골적으로 표명했으며 같은 해 7월에는 합법적인 목적에서 중국을 방문하는 모든 미국인의 여행을 허락하였으며 12월에는 여행업자들의 휴대 제한조치를 폐지, 무역업자들의 비제한 품목의 대중국 수출을 허가하였다.
모택동 역시 ’70년 12월 18일 미국 기자 애드가 스노우와의 기자회견에서 닉슨의 중국 방문을 환영한다는 뜻을 표명 미국과의 관계 개선 의사를 표명하였다.
중국이 반소친미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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