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로서의 한국사 대종교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5.06.27 / 2015.06.27
  • 3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8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본문내용
대종교는 단군왕검이 환융천왕의 신도를 받아 설교한 종교이다. 현재 존재하며 제도와 교단을 형성하고 있는 종교로서의 ‘대종교’는 구한말 나철 홍암이 창시한 것이다. 그래서 대종교의 역사는 중광 전사와 중광 후사로 나뉘어진다. 중광이란 빛을 다시 들어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 나철 홍암의 생애와 대종교
나철 홍암은 전라남도 벌교에서 1863년 12월 2일에 태어났다. 홍암은 29세에 과거에 정원하여 기거주에 오르고, 31세에는 권지부정자가 되었다. 그 날이 10월 7일 이었다. 그러나 10월 24일에 그 자리를 내놓고 낙항하엿다. 33세 때에는 고종황제로부터 징세서장을 제수받았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홍암이 31세 되던 1893년부터 갑오·을미년 간은 동학혁명·청일전쟁·민비시해등 국내외가 심히 혼란하던 때였다. 청국·일본·러시아가 한반도를 가운데 놓고 서로 집어삼키려고 각축을 벌리던 때였다. 외우내란이란 표현 그대로였고 구한말 조선왕조는 외세에 대처할 아무런 힘도 없었다. 그는 33세부터 42세까지 10여년간 나라의 기운을 갱생시키기 위한 입산을 한다. 나철 홍암이 1904년 42세 십사수도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현실은 10년전보다 사태가 더 험학했고 일본은 노골적으로 조선을 침략하고 있었다. 43세 되던 1905년에는 일본이 러시아에 승리하면서 일본은 한국 침략의 독무대가 되었다. 홍암은 울면서 참을길 없어 포츠마스회의에 참석하고자 1차 밀항을 하였으나 실패하고 2차3차4차에 걸쳐 도일하여 조선이 주권국가임을 선언하고 일본의 침략행위를 규탄하였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는데 그것은 을사보호조약에 관한 불길한 소식이었다. 나철은 나라를 팔아넘긴 매국정부를 전복하고 구국 정부를 수립해야겠다는 결심을 세우고 권총 50여 정으로 오기호 등 50여 동지들과 매국노의 가슴에 총구를 겨누었다. 그러나 실패로 일이 끝나고 1906년 전부 전복 대신암살기도사건의 죄목으로 지도에 유배당한다. 그러나 고종황제의 내명이 있어서 같은해 10월에 사면된다.
어느 날 서대문에서 내려 여관으로 가는데 한 노인이 “그대가 나인영(나철)이 아닌가?” 묻고는 백지에 싼 책을 건네주었다. 홍암이 여관에 돌아와 보니 그 책명이 삼일신과와 신사기였다. 1908년 12월 5일 미도 두일백이란 69세의 노인이 이른 아침에 홍암의 방에 들어왔다. 그는 단군교포명서, 고본신가집, 입교의절 같은 서적을 전해주고는 며칠 후 미도웅이 다시 나타나 “국운은 이미 다했는데 어찌 바쁜 시기에 쓸데없는 일로 다니시는가? 곧 귀국하여 단군대황로의 교화를 펴시오. 미도의 말을 들은 나철을 무언가 모를 감동에 사로잡혀 온 몸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홍암의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나라는 망했으나 겨레는 살아야겠다. 이 단군교화 운동이야말로 참된 구국운동이다. 민족의 정신이 독립된다면 조국이 독립될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홍암의 생각이 이에 미치자 외교활동은 단념하고, 단군교를 천하야 표명한다는 뜻을 품는다. 홍암은 이듬해 1909년 정월 보름날 밤 11시를 기하여 한성부 북부 재중 8통 10호 육간 초가집 북쪽 벽에 ‘단군대황신위’를 봉인하고 오기호, 강석화, 초종식, 정훈모, 이석, 김인식, 김춘식, 김윤식등 수십명의 동지들과 모여서 단군교포명서를 선포하였다. 이것이 나철 홍암의 단군교 중광 후사의 시작인 것이다. 단군교는 그 맥이 단군으로부터 계승되어 왔었다. 그러다가 고려가 몽고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그 도맥이 끊어지고 말았었다. 즉 고려 원종(1247~1260) 때부터 그 맥이 단절되었다. 무려 700년간 끊어진 이 도맥을 홍암이 백봉대신사로부터 전수받아서 다시 이어졌기 때문에 이를 기유중광이라고 하는 것이다. 대종교의 원래 이름은 단군교였다. 중광 이듬해인 1910년 경술년에 단군교가 대종교로 바뀌었다. 1910년은 한일합방이 되던 해이다. 정치적 이유로는 한일합방으로 법적으로 조선을 집어삼킨 일본은 단군 말살의 본격적인 작업을 어용 사학자들로 내세워 진행시키는 바람에 단군교란 실체가 버젓이 존재한다는 것도 그 때 상황으로는 용납되기가 어려웠다. 만주로 교당 본부를 옮긴 대종교는 1910년 10월 25일 만주 북간도 상도구에 지사를 설치하였다. 나철도 만주땅 청파호에 총본사를 두고 포교 활동에 전념하였다. 수천 년 동안 찌들여 온 민족 정기를 고취시키면서 사대주의에 시들고 잠든 민족의 가슴 속에 새 눈을 뜨게 하였던 것이다. 수 많은 민중들이 나철의 강연을 듣고 대종교에 몰려들었다. 5년 간에 걸쳐 만주, 러시아, 중국 등지에 30만 대신도를 거느리게 되었다. 이 숫자는 망명 동포의 80퍼센트에 해당한다. 1915년 10월 1일 일제는 대종교를 말살할 목적으로 조선총독부령 제83호에 의거하여 종교통제령을 공포하였다. 총독부는 종교통제령으로 “대종교는 종교 유사 단체”라 규정지어 놓고 “대종교인은 자유가 없다”하면서 집회는 물론 교구 이하 전 간부들의 사생활과 동태를 철저히 감시하였다. 대종교의 창시자 나철 홍암은 제 명을 다한 한명도 아니고, 타에 의한 사형을 당한 것도 아니다. 그는 자기 민족과 자기 종교와 자기 진리를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바쳤다. 그는 크고 높은 진리를 위해 제 목숨ㅇ르 바쳤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봉명이라 할 수 있고, 진리의 길을 따랐다고 하여 순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대종교의 기본사상
(1)천부경사상: 천부경은 “일시무시일”의 다섯 글자로 시작되고, “일종무종일”의 다섯 글자로 끝난다. 일(一)이 천부경의 처음 글자인 동시에 마지막 글자이다. 여기서 말하는 일(一)은 일자의 형이상학에서 다루는 그러한 일(一) 즉 전체(totality)를 의마한 것이라고 보아도 좋다. 천부경의 첫 구절의 글자들과 마지막 구절의 글자들은 하나의 원 속에 연결시키면 일에서 시작되어 일로 끝난다. 만물은 일(一)에서 비롯되고 일(一)로 끝남을 천부경은 보여주고 있다. 천부경은 질서와 무질서가 뒤섞여 프락탈적으로 전개되는 우주관을 가지고 있다. 천일일,지일이,인일삼은 바로 천일,지일,인일은 우주에도 변화가 없음을 의미하고 천일, 지이,인삼은 질서가 있음을 의미한다. 전자는 ‘비순’의 세계를 후자는 ‘순’의 세계를 의미한다. 그런즉 천일일,지일이,인일삼은 순과 비순이 무작위적으로 작용함을 의미한다. 우주는 결코 그 속에 규칙적인 질서가 있는 것은 아니고 순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질서와 무질서가 혼동 상태에서 되어가는 됨됨이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최수운은 가연불연이라고 한 것이다.
(2)삼일신고의 사상: 천부경이 3분의2가 숫자로 되어 있고 그 이해가 난해한 반면 심일신고는 모두 360자로 되어 있어 그 이해가 비교적 쉽다. 천부경에 우주론이고 철학적이라면 삼일신고는 인간론과 신론 중심이며 종교적이다. 신훈 51자는 삼일신고 안의 신관을 말하는 부분이다. 3·1(三·一)신론이 최초로 언급되어지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한 존재가 덕,혜,역의 세 존재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말한다. 삼일신고의 하나님은 하늘안에 있는 분이다. 천훈에서 하늘은 아래,위,상하 사상이 없다고 했다. ‘신훈’에서는 하나님이 그 위에 더 없는 으뜸자리에 계신다고 했다. 신훈과 천훈은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하나님이 더 없는 으뜸 자리에 있다. 신훈은 “하늘”즉 창조성 안의 아래,위이다. 그리고 하늘에서 상하사방, 아래위가 없다. 천궁훈은 천훈이나 신훈보다 훨씬 구체적인 표현이다. 하늘 천궁과 땅위의 천궁과 사람 속의 천궁이 합하여 셋이며 하나인 천궁이라 했다. 이는 삼위일체의 논리를 하늘나라에 적용한 것이다. 유정기 교수는 천부경의 “천일일,지일이,인일삼”에 견주어 “천궁은 일(一)인데 천의 천궁에 신은 제일(一)로 계시고, 지의 천궁에 신은 제이(二)로 내리시고, 인의 천궁에 신은 제삼(三)으로 되어진다고 풀이하고 있다.
문제제기: 대종교는 구한말 시대적 요청으로 자생적으로 발생한 종교로, 독립운동에 아주 적극적으로 가담하였고 김좌진장군의 청산리 대첩등 대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중광 후사의 대종교의 모습은 굉장히 현실참여적이고 현실을 바꾸어 보고자 하는 것 같았고 위기적 상황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역사속으로 사라진 느낌을 받았다. 결국 대종교는 보편적 진리성을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대활약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세월속으로 사라진 것인지?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여성사]한국사회에서의 종교와 여성에 관하여(유교,불교,개신교,신유교,무속)
  • 한국사회에서의 신유교와 여성1. 천도교1.1 일반적 교리와 특징1.2 긍정적 여성관1.3 부인론2. 대종교2.1 일반적 교리와 특징2.2 긍정적 여성관2.3 부인론3. 원불교3.1 일반적 교리와 특징3.2 긍정적 여성관3.3 부인론4. 소결5. 한국사회에서의 무속와 여성1. 무속(巫俗)의 정의와 역사1.1 정의 1.2 역사2. 한국에서의 무속 2.1 무의 유형2.2 무속의 지역적 특징3. 무속과 타종교와의 관계3.1 불교3.2 기독교4. 무속과 여성5. 소결Ⅲ. 참고문헌Ⅰ. 서론

  • 고등학교 국사 레포트
  • 종교인 동학은 제`3`대 교주인 손병희 때 천도교로 개칭하여 새로운 발전을 이룩하였다. 불교에서도 한용운이 중심이 되어 불교의 혁신과 자주성 회복을 위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또 단군 신앙을 기반으로 대종교가 창시되어 민족적 입장을 강조하고 항일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2.1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과 한국사 왜곡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후 우리 민족은 일제의 가혹한 식민 통치하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난을 겪었으며, 민족의 생존까지도

  • [근현대사] 문화운동
  • 종교조직체중 가장 굳건한 모습을 보였다 말할 수 있다.③ 대종교종교단체이면서 무장 항일운동에 직접 참가한 유일한 단체인 대종교의 활동을 보면, 조국광복을 위하여 만주지역에서 학교를 설립하기도 하고 중광단을 조직하여 독립전쟁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기도 하였다. 그 후 중광단을 중심으로 정의단을 조직하고 다시 군정회, 군정부로 명칭을 바꾸었다. 1919년 10월에는 상해 임시정부의 권고에 의하여 군정부를 북로군정서로 명칭을 바꾸고 군

  • [한국근현대사] 문화운동
  • 종교적인 이유에서 시작되었지만 일제의 국교인 신도에 대해 맹렬히 항거하였다는 데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3) 대종교종교이면서 민족 고유성을 보존하게 하고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대종교였다. 단군을 신앙하여 처음부터 일제의 경계와 감시 대상이 되었던 대종교 신자들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망명하여, 북간도 삼도구와 남만주 환인현에 대종교 시교 당을 설립하고 환인현에 동창학교를 설립하였다. 대종교는 포교활

  • 9급공무원시험대비 국사핵심요약정리
  • 종교 활동① 개신교 : 국권피탈 후 경제․사회 등 각 방면에서 민족운동 전개, 신사참배운동 거부② 천주교 :『경향』이란 잡지를 통해 민중 계몽, 무력 항일 투쟁(의민단)③ 천도교 : 제2의 3․1운동 추진(자주 독립 선언문), 언론․출판․계몽 운동 전개④ 대종교 : 무장 항일 투쟁 전개, 중광단 조직(→ 북로 군정서로 개편, 청산리 대첩)⑤ 불 교 : 한용운의 불교 혁신운동 조선 불교 유신회⑥ 원불교 : 박중빈이 창시, 개간․저축 운동, 남녀평등 등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