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춤 한국의 굿과 엑스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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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춤
한국의 굿과 엑스터시
가장 처음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보여주셨던 동영상의 내용은 정말 신선하고 충격적이어서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세계 여러 부족들은 그들이 가진 고유의 문화적, 사회적 차이만큼이나 다양한 의식을 치르고 있다. 의식 가운데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집단적인 현상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엑스터시, 즉 무아경 혹은 황홀경이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동영상은 아프리카의 부족, 이슬람의 수피, 우리나라의 굿판 등을 차례로 예를 들어 엑스터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춤의 형식이나 그 목적, 엑스터시에 다다르는 과정은 차이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같은 점은 그 춤들이 제의 중에 신과 접하기 위해 행해진다는 점이었다. 필기수업의 후반부에 배웠던 한국 진도의 씻김굿 또한 나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다는 점에서 나는 한국의 무속문화와 엑스터시에 대해 연구해보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제의의식은 굿이다. 우리의 여러 가지 전통예술 갈래들은 고대의 제천의식과 굿으로부터 발생했다. 굿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무당이 자신이 모시는 몸주신과 접신상태에 이르는 현상이다. 이것이 바로 엑스터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굿판에 참여한 관객들도 무당을 따라 드물지 않게 접신체험에 빠지는데 이러한 현상은 ‘무감서기’라고 한다. 무감서기에서 제의 참가자는 무당과 더불어 거대한 집단 엑스터시 상태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무당은 제의를 이끄는 제사장임과 동시에 빼어난 예술적 재능을 지닌 퍼포머(performer)이다. 그는 엑스터시 상태에서 신과 접속하며 인간과 신 사이의 경계에 존재하는 제3의 존재자, 곧 영매가 된다. 다른 차원의 존재자와 접속할 수 있는 역능을 가진 무당은 이 능력을 바탕으로 그만이 공동체의 이익과 안녕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다. 무당은 그가 속한 공동체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역할을 한다. 첫째, 공동체 구성원에게 깃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인 병을 고치거나 한이나 살 또는 액을 푼다. 둘째, 앞날을 예언하는 예언자 역할을 한다. 셋째, 죽은 자의 영혼을 다른 세계로 안내한다. 무당이 한을 푸는 살풀이의 극점에서 연출되는 신명의 극한도 엑스터시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강신무는 북방계의 샤머니즘 계통에 속하는 것으로 보며, 세습무는 남방의 주술사와 비슷한 계통에 속하는 것으로 본다. 강신무는 신적인 영력을 강하게 소유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엑스터시의 기술자로 불리는 반면, 세습무는 빼어난 예술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세습무는 혈연집단을 배경으로 대물림하는 무당을 지칭한다. 강신무와 다르게 무속제의인 굿에서 공수를 하지 않고 개인적인 굿당을 가지지 않으며 신을 섬기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어려서부터 기능을 익히고 굿에 참여하기 때문에 무가, 춤, 놀이를 통한 예술성과 연희성이 강조된다. 조상 대대로 이어진 세습무의 뛰어난 기예는 한국의 전통음악과 춤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진도의 씻김굿이 대표적인 세습무라고 할 수 있다. 세습무는 남녀무들의 역할분담이 충실하다. 여성들은 제의를 주관하는 사제자 역할을 하고, 남성들은 사제자를 보좌하는 악사 역할을 담당한다. 즉 ‘화랭이’, ‘양중’, ‘고인’이라 일컬어지는 세습가계의 남무는 무(巫)의식 중 무악을 연주하면서 여무가 노래, 춤, 발림 등의 연행을 주도하면 여무가 엑스터시에 이르도록 도와준다. 무의식 중의 무악은 장단이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장단은 무의식 전반에 걸쳐 무악을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굿 음악에서 장단은 그 규칙성(반복구조)이 뚜렷이 인식되는 요소로서 선율 악기들의 즉흥적인 가락에 시간적인 개념(한배)을 주어 질서를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반복적이고 단순한 가락의 장단이 제의 중 엑스터시에 더 쉽게 이르게 한다는 것은 아프리카 부족이나 이슬람의 수피댄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이었다.
무당이 망아(忘我) 상태에 들어가면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신과 접속하여 ‘신인합일체’가 된다. 무당이 망아상태에서 자신을 잃는다고 해서 그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망아상태는 다른 존재로 거듭나는 ‘탈-아’로서의 생성이다. 왜냐면 무당은 엑스터시 상태에서 신이 ‘되기’를 감행하며 그것을 통해 다른 무수한 ‘되기’를 실행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자신의 정체성이 소멸될 때 솟아나는 생성의 힘으로 잠재적인 차원의 비유기적 생명이 현실화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조직화된 기관들이 해체했을 때 솟아나는 잉여로서의 넘쳐흐름과 연관된 생성의 힘이다.
무당은 보통 인간과는 다르게 무당이 되는 초기 과정으로서 신병이라는 신비한 경험을 한다. 무당이 될 사람에게 신이 내리면 먼저 정신 이상 증후가 오고 신체에도 이상 질활 증세가 나타나 장기간 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상 증세는 약이나 의료 행위로는 고칠 수가 없고 오직 자신의 몸에 강신한 신을 받아 무당이 될 때에만 낫는다고 한다. 신병은 강신무에 한해서 무당이 되는 초기에 반드시 거치게 되는 과정이다. 곧, 강신무가 영력을 소지할 수 있는 영력의 계기가 됨과 동시에 무당이 망아상태에 빠져 영계로 몰입되어가는 엑스터시의 근원이 된다. 굿판에서의 엑스터시체험은 갈기갈기 찢긴 상태(찢김은 기존의 유기적 조직체의 해체를 통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생성의 모티브로 해석되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 위한 계기로 작용한다), 즉 무질서로의 회귀이며, 유기적 조직화의 원리가 파괴되며 모든 개체가 자신이 태어난 생명의 자리로 소환되는 체험이며, 이러한 망아의 황홀경 상태를 통과하며 제의 주체들은 새롭게 생성한다고 볼 수 있다.
굿에서 연출되는 망아상태나 엑스터시, 혹은 집단적 신명은 몽롱함이나 환각상태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런 엑스터시는 쾌활함, 황홀경, 춤으로 가득 차 있고 유기적 개체의 의식이 흐려진 상태와는 정반대로 비유기적 생명의 상승과 충만의 느낌이다. 개체화의 원리는 파괴하고 개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넘침의 생태로서 나를 규정하는 모든 형식이 잊히고 오직 나의 열정만이 남는 것이다. 황홀한 춤으로 망아상태에 이르는 무당의 엑스터시체험은 비유기적 생명으로 향하는 탈주의 운동이며 이러한 운동을 통해 무당은 예술가가 아니라 예술품이 되고 그와 그가 속한 삶, 세상을 바꾸어 나간다.
현실의 공간이지만, 굿판은 모방과 재현의 공간이기를 거부하고 거대한 생명의 무질서한 회오리, 비유기적 생명의 역동성이 펼쳐지는 장이다. 그러기에 굿판은 일상의 공간 안에 마련되는 어떤 제3의 공간이며 여기서 잠재적 차원의 비유기적 생명은 솟아오른다. 굿판은 일상의 공간에 금줄을 치면서 성립한다. 금줄을 치는 순간, 일상의 공간은 성스러운 종교적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그러나 초월적 차원의 신과 접속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이 공간을 현실과 분리된 초월적 공간으로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 공간은 현실과 작용하는 어떤 사이 공간이다. 현실 바깥의 공간이되, 현실내재적인 공간이 바로 굿판이다. 무당은 이 사이를 가로지르는 존재로 규정지을 수 있다.
굿에서 망아상태의 신들림은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는 보편적인 종교체험이며 이러한 신들림 현상은 억압, 긴장, 금기 등 절박함을 내포하고 있고 이를 다 같이 풀어냄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며 집단적 신명을 공유하는 황홀경 상태를 연출한다. 굿판에서 무당이 아닌 일반인이 굿이 진행되는 사이사이에 신이 들려 무복을 입고 춤을 추기도 한다. 굿을 보던 구경꾼이 이 ‘무감서기’를 통해 신의 춤을 추고 신의 말을 하면서 무당의 실체, 곧 신의 실체를 경험하게 되는 현상이다. 굿판이 신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신과 함께 노는 걸쭉한 놀이판이 되고 구경꾼은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굿판에 참여하여 자신이 무당이 되고 신인합일체가 된다. 여기서 흔하게 엑스터시가 일어난다. 구경꾼 혼자 춤을 추기도 하고 여럿이 함께 추기도 하면서 집단적인 황홀경을 연출한다. 수동적인 위치에 있던 구경꾼은 적극적으로 굿판을 이끌어가는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며 무복을 걸치고 장단에 맞춰 춤을 추고 속에 쌓아둔 말을 거리낌 없이 표현한다. 그런 행동과 말은 어떤 선행하는 개념이나 법칙에 맞출 필요 없이 굿의 중심적 연행행위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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