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회사] 일제하 조선 천주교 신사참배의 역사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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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일제하 조선 천주교 신사참배의 역사의 과정
1. 서론
2. 일제의 신사정책과 신사강요
가. 일제의 신사정책
나. 조선의 신사건립과 강요
3. 조선 천주교회 신사참배의 역사적 과정
가. 조선 천주교회의 신사참배거부
나. 조선 천주교회의 신사참배 ‘허용과 반대’
다. 조선 천주교회의 신사참배 수용
4. 결론
1. 서론
일제하 신사참배 문제에 대해 천주교와 개신교측 학자들 모두가 다루었다. 천주교 측에서 신사참배를 다룬 학자는 최석우, 문규현, 정동훈, 윤선자이다. 최석우는 조선 천주교회의 신사참배 결정이 교황청과 주일교황사절에 의해 이루어진 타의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高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編.「韓國現代文化史大系」(서울: 高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出版部, 1975-1980),제4권: 최석우,「한국종교운동사」
문규현은 조선천주교회는 교황청의 신사참배 허용 훈령이 나오기 전부터 신사참배가 이뤄진 점을 지적하면서, 교황청의 훈령은 공식적인 정리수준임을 밝혔다. 문규현, 『민족과 함께 쓰는 한국천주교회사』Ⅰ, (빛두레, 1994), 171.
정동훈은 교황청의 ‘신사참배 허용’ 훈령이 일본 천주교회에만 해당되는 것인데 조선 천주교회에까지 확대되었던 점을 밝혔다. 鄭東勳, “일제 강점기하의 한국 천주교회와 신사 참배에 관한 고찰,”『敎會史硏究』11(1996) 한국교회사연구소
윤선자는 일제의 ‘신사정책’을 일제의 군국주의 지배이념으로 파악하고, 일제가 일제의 대륙침략의 정치적 배경 속에서 조선의 정신적 지배를 위해 강요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또한 조선 천주교회가 신사참배를 허용하는 배경에 일본 천주교회의 영향이 있었음을 밝혔다. 尹善子, 『日本 軍國主義 宗敎政策과 朝鮮 天主敎會의 神社參拜』(서울: 韓國史硏究), 1997.
이상의 천주교측 연구는 주로 교황청의 1936년 5월 16일자 훈령을 근거로 신사참배가 이뤄진 점에 관심을 두면서, 신사참배의 역사적 과정에서 신사참배를 공식적으로 반대했던 메리놀회 평양교구 선교사 및 신사참배 허용을 주도했던 주일교황사절과 포교성 장관의 역할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미비한 수준이다. 천주교측 연구들 가운데 아직 다뤄지지 않는 점들 몇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조선 천주교회의 신사참배결정이 일본 천주교회의 결정과 교황청의 훈령 때문이었다는 외적이고 결과적 요인만이 강조되고 있다. 둘째, 신사참배가 허용되는 과정에서, 일제와 조선의 정치적 관계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신사참배의 의미와 신사참배 반대가 갖는 의미를 설명해주는 문제이다. 또한 이는 교황청의 훈령의 적용범위와 관련된 문제가 된다. 즉 당시 교황청은 일본 천주교회의 범위를 일본의 식민지까지 포함된 것으로 간주했던 것이 고려되지 않았다. 셋째, 교황청 포교성의 신사참배 허용 훈령이 나오기까지 포교성 장관과 주일교황사절의 역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넷째, 일본 천주교회와 메리놀회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평양교구(대목구)를 담당한 메리놀회 선교사들의 신사참배 ‘반대-허용’이란 태도 변화가 설명되지 않았다.
한편, 개신교 측에서 신사문제를 다룬 이는 이만열, 김승태, 노치준, 이진구, 김성건등이다. 먼저 이만열은 신사참배 거부와 관련한 연구에서 기독교의 우상숭배 금지가 정치성을 띠고 민족문제와 결부되면서 항일투쟁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 주장하였다. 李萬烈, 『韓國基督敎와 歷史意識』(서울: 지식산업사, 1981), 349-353.
이후 김승태, 노치준이 그와 비슷한 관점의 논문들을 발표하였다. 한석희, 『식민지시대 한국의 사회와 저항』(백산서당1983) ; 노치준, 『일제하 한국기독교 민족운동 연구』(서울: 한국기독교 역사연구소, 1993); 김승태, 『한국기독교와 신사참배문제』(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1)
종교학 분야에서 이진구는 신사참배를 거부하였던 사람들 가운데 다수가 황민화정책에 순응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신사참배문제와 정치적 민족의식을 결부시켜 논의 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李進龜, “神社參拜에 대한 朝鮮基督敎界의 對應樣相硏究,” 362-363.
그리고 김성건은 종교사회학적면에서 신학적 강조, 선교정책, 교회구조의 차이가 신사참배 문제에 대한 장로교, 감리교, 천주교의 입장차이의 원인이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김성건, 『종교와 이데올로기』(민영사, 1991)
그동안 신사문제에 대한 연구는 주로 개신교의 학자들에 의해서 진행되었지만 몇 가지를 간과하였던 것으로 보여 진다. 첫째, 교황청의 ‘신사참배 허용’ 훈령 이전의 조선 천주교회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허용하는 과정이 잘 설명되지 않고 있다. 둘째, 평양교구를 관할하고 있던 메리놀회 선교사들의 신사참배 거부에 대한 과정설명이 간과되고 있고, 셋째, 1936년 교황청의 훈령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훈령을 공포한 이유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미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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