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누가복음 16장 1-13 _ 당신의 등에 누군가 올라타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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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당신의 등에 누군가 올라타 있지는 않습니까?
설교본문, 눅 16:1-13
2011년에 몽골로 단기선교를 가기 전에 몽골에 대해 좀 알고자 그곳에 관한 책들을 시립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습니다. 에스키모인 하면 눈과 얼음이 먼저 떠오르고, 몽골 사람들이라고 하면 기마민족이라는 생각과 인상이 먼저 떠오르듯이, 제가 읽었던 책 내용 중에는 말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말이 사람의 탈 것이 된 사연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말이 아직 사람의 손에 길들여지지 않았던 시절에 말은 초원을 다니며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슴 떼가 말이 먹을 풀을 뜯어 먹었습니다. 말은 화가 나서 사슴을 쫓았지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사슴을 놓친 말은 어떻게 하면 복수를 할 수 있을지 사람에게 방법을 물었습니다. 사람은 ‘네가 재갈을 감당할 수 있다면 내가 너를 타고 가서 원수를 갚아 주겠다’라고 하였습니다. 복수를 할 수만 있다면 어떤 것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말은 앞뒤를 가리지 않고 안장과 굴레를 메었습니다. 말은 자기가 사람의 탈 것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사람은 말에게 약속한 대로 사슴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사슴 사냥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본래 자유를 누리고 있던 말이, 자신이 먹을 풀을 먹는 사슴에 대한 복수를 위해 스스로 사람의 탈 것이 되면서 자유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 위에 앉은 사람이 말의 원수인 사슴을 잡는 역할을 해 주며 말의 소원을 이루어 주지만, 어떻게 표현하더라도 말이 재갈을 물고 안장과 굴레를 메면서 자유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만 대신 말은 자신의 등에 탄 사람의 요구를 들어줘야 합니다. 말에게는 사람이라는 주인이 생긴 것입니다.
여러분 중 누군가는 벌써 이 말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과 같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의 모습은 타락한 인간의 모습에 대한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는 주인이 있습니다. 정확히 이야기해서 모든 사람에게 주인이 있습니다. 주인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주인은 우선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 특별히 종교가 없는 사람 중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이냐, 나는 자유인이고 나에게는 주인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체제 등의 특별한 상황 속에 살고 있지 않고 그가 아무런 종교가 없더라도, 이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그가 섬기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돈입니다. 이 황금만능시대에 여러분은 예수님 대신에 돈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과학화되고 이성화된 현대에 있어 샤머니즘과 미신들은 많이 물러갔습니다. 그러나 돈이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우상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등에 돈이라는 우상이 타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12:16이하에 소출이 많은 한 부자가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합니다. 그는 곡식 쌓아둘 곳이 없어 곳간을 새로 지을 생각을 하는데, 이는 모두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부자에 대하여 그날 밤에 그 부자의 영혼을 도로 찾아간다면 그 예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물으십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돈의 노예가 되어 있지는 않으십니까? 오늘밤 여러분을 하나님이 부르신다면 여러분의 돈이 누구를 위해 모아놓은 것이었는지 확실해질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자시을 위해 돈을 쌓고 있었다면 지금 이 시간 회개와 함께, 하나님을 자신의 진정한 주인으로 맞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본문의 16:13에서 ‘재물’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단어는 영어성경의 NIV나 NASB 등에서는 money나 wealth 등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이것의 분명한 표현은 mammon, 본문에 사용된 헬라어로는 μαμων입니다. KJV나 NKJV, 그리고 YLT 등의 영어 성경 버전에서는 money나 wealth 등의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바로 mamm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셈어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이는 이 맘몬이라는 단어는 부(富), 돈, 재물, 이익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그리고 재물의 신(Mammon)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욕망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 욕망이란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욕망이란 것이 없으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문명의 이기들을 우리는 지금 누리고 있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또한, 많은 아름다운 그림들, 음악, 문학 작품 등을 더 이상 감상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것들의 누군가의 욕망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욕망은 그것이 무언가를 창조하고 추구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쁜 생각이나 이기적인 동기와 결합된 욕망은 정욕이나 야망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것은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파괴하며, 범죄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욕망은 중립적인 면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욕망을 품은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욕망은 좋게도 나쁘게도 쓰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재물도 이 욕망과 같이 중립적인 것일까요? 재물은 좋은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긍정적으로 쓰이고, 나쁜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부정적으로 쓰이기에 중립적인 것일까요? 예수님이 사용하신 맘몬의 의미에 대해 [소명]이라는 유명한 책의 저자인 오스 기니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맘몬(Mammon)의 의미는 매우 독특하다. 그분은 그 단어에 이전에는 없었던 힘과 정확성을 부여하셨다. 돈은 영적 능력을 지닌 능동적인 동인으로서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의미에서 능력이다. 돈은 우리가 선하게 혹은 나쁘게 사용할 때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기 이전에 하나의 능력으로서 존재한다.”
오스 기니스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사용하신 맘몬의 의미는 단순한 재물이 아닙니다. 앞서 살핀 그 언어적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맘몬은 단순한 재물이 아니라, 그것은 세상적인 힘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 맘몬이란 단어가 4번 사용되었습니다. 그 중 세 번이 이 누가복음 16장의 9, 11, 13절에 집중적으로 사용되었고, 13절의 구절이 마태복음 6장에서 똑같이 사용됨으로 맘몬이란 단어가 한 번 더 사용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맘몬이란 단어에 정확한 수식어를 사용하셨습니다. 9절과 11절에는 그냥 재물이 아닌 불의의 재물이라는 표현을 하신 것입니다. 8절에는 예수님께서 본문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청지기를 ‘옳지 않은 청지기’라 표현하신 구절이 나옵니다. 재물에 붙은 ‘불의’나 청지기를 수식하는 ‘옳지 않은’에는 모두 같은 헬라어 단어인 δικα가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모두 ‘불의한’, ‘부당한’ 등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NIV가 표현한 것처럼 이것은 모두 세상적인(worldly) 것들인 것입니다. 결국 재물과 함께 여기에 등장하는 청지기는 모두 본질적으로 세상에 속한 것들이요, 사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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