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기후와 역사 -고려 건국 924년부터 1200년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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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고려의 기후와 역사
1. 고려건국부터 1200년대까지 고려의 역사
2. 고려시대의 기후
1) 고려시대 기후관측 기관
2) 고려시대의 자연재해
3) 서구의 기후와 비교한 고려의 기후

Ⅲ. 고려-거란 전쟁과 기후
1. 전쟁 배경: 10~12세기 초 동아시아의 외교 관계
2. 고려-거란 전쟁
1) 거란의 1차 침입
2) 거란의 2차 침입
3. 역사를 만들어낸 기후 - 강감찬의 귀주대첩을 중심으로
1) 귀주대첩의 정의와 경과
2) 남풍 발생의 원인
4. 전쟁 결과
5. 전쟁 당시의 기후적 환경

Ⅳ. 고려의 대외무역과 기후
1. 고려의 대외무역
1) 개요
2. 주요 무역품과 그 생산에 관련한 기후
1) 고려인삼
2) 고려지
3) 화문석

Ⅴ. 결 론

Ⅵ.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 론

기후와 역사는 서로 떨어질 수 없다. 오늘날에 이루어 학문의 분화가 세밀하게 이루어지고 그럼에 따라 기후와 역사는 더욱 멀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기후는 역사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역사 속을 들여다보면 항상 기후에 대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E.Huntington은 이러한 관점에서 기후와 기상 조건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연구하는 기후결정론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역사적 사상 및 사건들은 광범위한 기후 변화에 일반적으로 일치하며, 문명의 흥망이 기후 변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설명한다. 본 보고서는 헌팅턴의 이러한 기후결정론에 입각하여 고려시대(건국~1200)의 여러 역사적 기록과 기후 현상에 대해서 살펴 보고자한다.


Ⅱ. 고려의 기후와 역사

1. 고려건국부터 1200년대까지 고려의 역사

고려는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하며 세운 나라로 918년부터 1392년까지 474년간 왕씨(王氏)가 34대에 걸쳐 집권했던 왕조이다. 건국 초기에는 나라의 기반을 다졌으며 6대 성종에 이르러서는 중앙집권적 국가기반을 확립하고 11대 문종에 이르러서는 귀족정치의 최 전성기를 이루었다. 18대 왕 의종이 쫓겨나고 1170년 19대 명종이 무신들에 의해 사실상 허수아비로 왕에 세워지면서 무신정권이 시작되고 이는 1270년 원종 때까지 지속된다.

2. 고려시대의 기후

1) 고려시대 기후관측 기관

- 태사국
정해일에 태사국에서 이날 있어야 할 일식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고하였다. ; 丁亥 太史局奏曰當食不食 [고려사 권제5, 3장 뒤쪽, 세가 5 현종 15.5]

우리나라 최초의 기상관측 기관은 어디일까? 바로 고려 초기의 기상과 천문을 관측하기 설치된 태사국(太史局)이락 한다. 태사국은 천문, 측후, 각루 등의 일을 관장하였던 관청으로 영(令:종5품), 승(丞:종7품), 영대랑(靈臺郞:정8품), 보장정(保章正:종8품), 설호정(挈壺正:종8품), 사진(司辰:정9품), 사력(司曆:종9품), 감후(監候:종9품) 등의 관직이 갖추어져 있었다. 이후 현종 14년(1023) 사천대 -> 예종 11년(1116) 사천감 -> 충렬왕 원년(1275) 관후서 -> 충렬왕 34년(1308) 서운관 -> 공민왕 5년(1356) 사천감 -> 동왕 21년(1372) 서운관으로 바뀌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여 1392년 서운관을 설치하였으며, 1466년 세조가 서운관의 이름을 관상감으로 바꾼 이후 조선 말기까지 존속하였다.

- 기후관측 기관의 존재 의의
고려이전 삼국시대에는 아직 농경이 자리 잡지 않아서 한반도의 국가들은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간 무역을 하거나, 전쟁을 통한 약탈, 노예제에 기반을 둔 농장운영 등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점차 농경이 정착하고 수확량이 늘어나면서 자급자족이 가능해졌고, 이에 따라 국가가 안정화되었다. 이러한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 해 농사가 큰 문제없이 잘 이루어지도록 관리를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날씨와 기후를 관측하여 어떤 변화가 올지를 예상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비가 얼마나 올 것이고, 가뭄이 든다면 어느 정도나 지속될 것이고, 서리가 내릴 것인지, 메뚜기 떼가 나타날 것인지 등을 알기 위해서 고려 왕조는 고려 개국 후 태사국이라는 기상관측 기관을 마련하여 정기적으로 기후를 관측하여 그에 대한 내용을 보고받았다.
또한 이렇게 기후가 농경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의 법칙과 질서, 기상과 기후의 변화, 천체의 이동과 그 주기 등과 같은 데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이러한 것들을 개인이나 집안의 중대사를 결정하는데 참고하였다. 이는 국가도 마찬가지로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데 있어서도 기상, 기후의 변화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왕이나 왕족의 결혼식, 국가 행사, 기우제, 군대의 출병 등과 같은 중대사를 결정할 때에는 반드시 그 당시의 기후를 관측하여 그것을 해석한 내용에 따랐다.

참고문헌
『고려사』
『고려사절요』

KBS 역사스페셜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들녘, 2004
반기성, 날씨가 바꾼 어메이징 세계사, 플래닛미디어, 2010
반기성, 전쟁과 기상 (상), 명진출판사, 2001
아틀라스 한국사 편찬 위원회, 아틀라스 한국사, 사계절, 2004
이준호, 기후와 역사 (교재용 피피티), 후마니타스칼리지, 2012
네이버 지식사전, http://terms.naver.com/ ,
(검색어: 감후, 태사관, 귀주대첩, 강동 6주, 거란의 침입, 왕골, 화문석)
네이버 백과사전 : 인삼, 닥나무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A%B3%A0%EB%A0%A4-%EC%9A%94_%EC%A0%84%EC%9F%81 (검색어: 고려-거란 전쟁)
네이버 검색,
http://www.cyworld.com/dodong04/6029392 ,(검색어: 고려 거란 기후)
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kdd/CultureTypeView.jsp?kindSeq=1&menuCd=2004&menuCnt=30917&menuSeq=46&writeDate=20100420&writeDateChk=2010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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