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사] 제4장 억압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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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보고서
II. 개인소감

III. 한글번역본
본문내용
억압을 향한 본능

매카시(Joseph Raymond McCarthy)는 미국의 정치가로서 위스콘신주의 연방 상원의원을 지냈다. 잘 알려져 있듯 ‘매카시즘’은 미국 정부 내의 사회주의자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매카시의 폭로로 불어 닥친 극단적 반공사상이었다. 그는 1950년 공화당 당원대회에서 “미국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나는 297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을 갖고 있다”라고 주장하여 미국 사회의 관심을 이끌어 내었다. 1950년대 매카시즘의 영향으로 수백명에 이르는 유명 정치, 예술, 과학 인사들이 소련 공작원이라는 혐의를 가지고 비미활동위원회(Committee on Un-American Activities)에서 심문을 받았다. 매카시는 과장되고 왜곡된 자료를 근거로 여론을 선동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라고 몰고 갔다. 매카시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고발당한 사람들 중에는 무고한 미국인들이 조사를 받은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로젠버그부부 사건을 들 수 있는데, 그들은 핵폭탄의 “비밀”을 몰래 훔쳐서 이를 구소련에게 건네줬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결국 사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후일에 로젠버그 부부에 대한 증언과 증거들이 모두 위조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매카시즘 반공사냥의 희생양이 되었다. 또한 처벌자 대부분의 평결은 나중에 번복되었고 매카시가 기소한 사람들 대부분이 무죄로 풀려나게 되었다.
매카시즘은 한국전쟁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었다. 매카시가 미 정부 내 공산주의자들이 있다고 선언한 직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매카시의 선언이 있기 전에는 소련 원폭 실험이 성공하고 중국이 공산화된 상황이었다. 따라서 한국전쟁은 미국인들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고 매카시의 선동이 더욱 쉽게 먹힐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었다.
처음에 매카시즘은 1949, 1950년대 초 자유진영과 미 국무부의 대중(中) 대한(韓) 정책에 밀려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은 남한의 전쟁에 연루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자유주의 학자들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오웬 라티모어(Owen Lattimore)는 1949년 8월 미 국무부로 보내는 메모에 “미국은 남한이라는 올가미에서 가능한 한 빨리 빠져나와야만 한다.” 라는 주장을 담았다. 더 나아가 라티모어는 1949년 여름과 가을의 공산주의의 봉쇄와 롤백 정책을 진행하고 있었던 관료 세력에 대해 암묵적으로 비판을 가했다.
1949년 가을 미 국무부는 새로운 아시아 정책에 관하여 전문가들과 토론을 하였고 이 자리에서 라티모어와 페어뱅크(John K. Fairbank)등 자유주의 학자들의 의견을 교환하였다. 당시 학계에서는 자유주의자들이 주류였고 이 모임에서 중화인민공화국과 외교관계를 확립하기를 기대한다는 합의가 도출되었다. 1950년 1월 애치슨 선언에서 미 국무부는 자유주의학자들의 견해를 상당 부분 수용하여 한반도를 미 극동 방위선에서 제외시키고 중국과 외교적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였다. 당시 반공주의의 명분으로 중국의 공산화를 중요한 정치적 논쟁점으로 삼으려고 했던 매카시에게 미국 자유진영은 눈엣가시처럼 보였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국 자유진영은 매카시즘의 공격대상이 되었다. 미국의 자유진영이 극동에서 고전하는 이유는 국무부를 중심으로 공산주의자들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매카시의 가설이 그럴듯하게 보였던 것이다. 결국 한국전쟁은 미국 내 매카시즘의 기폭제 역할을 했으며 매카시즘은 미 국무부와 자유주의 학계의 인사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반공주의의 광풍이 더욱 거세게 불자 미국 내에서는 이른바 ‘새로운’ 자유주의자들이 등장했다. 주요 매체들은 매카시의 과녁에서 벗어나기 위해 라티모어의 개인적 견해에 대한 권리를 지지하면서도 이런 견해들이 무책임하고 극단적이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외부의 압력에 의해 자유주의자들은 그들의 입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영국 작가 고드프리 호지슨(Godfrey Hodgson)은 이렇게 썼다. “자유주의는 항상 보수주의자들과 구별하는 것보다 좌파와 자신을 구별하는데 더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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