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문화유산의 `근대적`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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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1. 왕실문화유산의 ‘근대적’ 활용

1.1. 왕실문화유산의 의미
1.2. ‘근대적’ 활용이란

본론
2. 왕실문화유산의 ‘근대적’ 활용이 필요한 이유

2.1. 전통문화유산의 ‘근대적’ 활용의 인문학적 당위성
2.2. 전통문화유산의 ‘근대적’ 활용의 경제적 당위성
2.3. 왕실문화유산의 ‘근대적’ 활용의 당위성

3. 왕실문화유산 활용의 현주소

3.1 관광
3.2 학술
3.3 교육

4. 한국의 왕실 문화유산 활용과 개선방안

4.1 한국 왕실 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리
4.2 개선 방안

결론
5. 전통문화의 의미와 왕실 문화유산의 활용에 대한 정리

6. 참고 논문
본문내용
1.2 ‘근대적’ 활용이란

그렇다면 이러한 왕실문화유산의 ‘근대적’ 활용방안은 무엇일까. 활용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일단 ‘근대적’ 활용방안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근대라는 말은 '얼마 지나가지 않은 가까운 시대'로서 역사상의 시대구분으로 근세 다음이며, 우리가 사는 지금의 시대인 현대보다는 한 단계 전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근대의 시작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견해가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17세기, 18세기부터라고 본다. 근대는 봉건이 끝나고 전개되는 시대인 만큼 개인의식, 자본주의, 및 시민사회의 성립이 특징이다. 즉 봉건사회를 극복한 근대사회는 개인을 존중하며,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의 모습을 가진다.
이와 같은 ‘근대’의 의미와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왕실문화유산의 ‘근대적’ 활용이란 근대에 이르러 문화유산을 활용을 한다는 협의의 개념이 아니라, 조선후기가 끝나고 난 뒤, 즉 근세 이후의 시대상에 맞게 왕실문화유산을 활용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근대적 활용이란 조선이후 시작된 근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왕실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알맞게 사용한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겠다.


2. 왕실문화유산의 ‘근대적’ 활용이 필요한 이유

비교적 조선의 왕실문화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보존이 잘 되고 있는데 이러한 왕실문화유산을 보존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왕실문화유산을 보존해야하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 먼저 왕실문화유산을 포괄하는 우리의 전통문화유산을 계승하고 근대화해야하는 이유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싶다. 우리는 왜 전통문화, 전통문화유산을 계승하고 근대화해야하는 걸까.

2.1. 전통문화유산의 ‘근대적’ 활용의 인문학적 당위성

첫 번째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과거이기 때문이다.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공자의 말 중에 “옛 것을 알고 새 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可以爲師矣).”라는 구절이 있다. 역사를 배우고 옛 것을 배움에 있어, 옛 것이나 새 것 어느 한 쪽에만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즉 전통적인 것이나 새로운 것을 고루 알아야 스승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모든 것이 미래에 영향을 주듯이 우리의 현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과거를 재료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과거를 안다는 것은 현재를 앎과 동시에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문화는 물질적 소산인 문명과 구별되는 “지식ㆍ신앙ㆍ·예술ㆍ도덕ㆍ법률ㆍ관습 등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 E.B.타일러, 《원시문화 Primitive Culture》, 1871
로서 우리의 정신적인 면을 구성하는 재료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문화와 전통문화유산은 다른 나라와 차별되는 우리나라만의 것이다. 최근에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나라와 외국과의 경제적ㆍ문화적 교류가 잦아졌고 그 과정에서 우리 눈으로 외국 문화를 보고 개인과 민족의 주체ㆍ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 필요해졌다. 세계 유수한 선진국들 중에 그들의 발전된 문화가 자국의 역사와 전통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곳은 없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들은 경제력뿐만이 아니라 고유한 국가적 정체성을 획득하고 자문화를 세계화시키는 힘이 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그들의 경제적, 정치적 지배력이 더 클 수가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김문식. <조선시대 왕실자료의 현황과 활용 방안> 2003
한상우. <대중교육을 위한 문화유적의 해석에 관한 기본 연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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