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개방적 성문화의 역사적 형성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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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본론
(1) 국토 생성 신화로 본 일본 성문화의 뿌리
(2) 성기 숭배 관습
(3) 혼인 형태의 변화로 본 일본 성문화
(4) 성 상품화의 역사
(5) 현대 일본의 성문화


3. 결론


4. 참고문헌
본문내용
첫 번째 상징은 하늘의 신들이 두 신에게 준 ‘아메노누보코’라는 창이다. 창의 이름을 일본어 그대로 해석하면 ‘구슬로 장식한 창’이라는 뜻이 된다. 창과 구슬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이미지로, 각각 남성 성기와 고환을 상징한다. 두 번째 상징은 기둥이다. 기둥은 남성 성기의 상징이다. 또한 기둥을 도는 관습은 성적인 결합에 앞서 이루어지는 행위로 다른 민족에게서도 볼 수 있는데, 성기 숭배와도 관련이 있는 풍습이다. 세 번째 상징은 거머리를 닮은 아이의 출산이다. 여신이 먼저 말을 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아이를 낳지 못했다는 천신의 점괘에는 남존여비 사상이 담겨져 있다. 네 번째 상징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남매지간이라는 것이다. 둘의 성적 결합은 근친상간에 해당한다. 때문에 일본은 신화시대를 지나서도 근친결혼에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마지막 상징은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이름이다. ‘이자’는 일본어로 ‘유혹하다’라는 뜻이고, ‘기’와 ‘미’는 각각 남자와 여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결국 둘의 이름은 각각 ‘유혹하는 남자’와 ‘유혹하는 여자’라는 뜻이 된다. 이 이름에는 둘의 결합이 필연적인 것임을 의미한다.
고대 일본인들에게 성은 신성한 것이었으며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 시대에 일본은 모계중심 사회로 이복형제간의 통혼이 용인되었다. 이러한 관습은 대륙에서 들어온 유교적 도덕관의 영향을 무시하며 전승되었다.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과 이혼이 자유로웠고, 처녀성과 순결에 대한 의식이 중시되지 않았다.

(2) 성기 숭배 관습3) 「성풍속으로 보는 일본문화」, 이경덕 편저 (가람기획, 1999) 295~326p


고대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신성(神性)은 남성 성기였다. 일본인들은 길 곳곳에 남성 성기를 상징하는 붉게 칠한 돌기둥이나 나무기둥을 세워 놓고 다산, 풍요, 희망을 기원했다. 이를 ‘오바시라’라고 부른다. 한편에서는 남성 성기적인 신성을 ‘사에노카미’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막아주는 신’이라는 뜻이다. 일본인들은 악령을 위협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숲으로 난 길에 이것을 세웠다. 성이 지닌 본질적인 생명력으로 악령, 즉 죽음을 막으려 했던 것이다. ‘사에노카미’를 ‘도소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나그네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남성 성기 석상이다.
여성 성기도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인들은 악령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집 북동쪽에 악령의 모습을 한 클로버 형태의 기와를 얹었다. 여기서 클로버는 여성 성기를 모형화한 것이다. 남성 성기와 달리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여성 성기는 클로버 모양의 기와를 빼놓고는 거의 볼 수 없다. 대신 여성 성기는 바위의 갈라진 틈, 멀리서 본 산의 계곡,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 등의 자연물로 형상화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연 동굴인데, 동굴은 여성 성기뿐만 아니라 자궁으로도 상징된다. 여신 이자나미가 죽어서 간 황천이나 아마테라스 오미가미가 동생과의 갈등으로 숨은 곳이 모두 동굴로 표현되는데, 여성 성기의 상징과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성 성기나 여성 성기에 나쁜 것으로부터 지켜주는 주술적 힘이 있다는 신앙은 태고로부터 지속되어 왔다. 성기 숭배의 관습은 오랜 세월 일본 전역에서 널리 행해졌는데, 특히 하층민들 사이에서 폭넓게 성기 숭배가 행해졌고, 현재도 하층민들 사이에서 몰래 행해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일본의 성기 숭배 관습은 공식적으로는 단절된 상태이다. 메이지 유신을 선포한 일본 정부가 외국과의 교류를 진행하면서, 외국인에 대한 체면 때문에 성기 숭배 관습을 추방했기 때문이다.

(3) 혼인 형태의 변화로 본 일본 성문화4) 「성풍속으로 보는 일본문화」, 이경덕 편저 (가람기획, 1999) 97, 113, 166~170p
「일본인과 에로스」, 서현섭 (고려원, 1995) 277~278p


(1)에서 기술했듯, 고대 일본은 성적으로 자유로운 편이었다. 축제가 벌어지는 밤이면 ‘우타가키’라 하여 남녀가 모여 가무를 즐겼다. 또한 ‘네야도’라는 장소가 있어서 남녀가 교제하는 장소로 쓰이기도 했고, 젊은 남자들이 모여 처녀의 값을 정하거나 ‘요바이’를 모의하기도 했다. 요바이는 쉽게 말해 처녀를 보쌈하는 풍속으로, 젊은 남성이 평소 눈여겨본 여성의 집에 몰래 들어가 밤을 보낸다. 이 과정에서 임신을 하면 그 사실을 밝히고 결혼을 한다. 요바이는 일종의 결혼 형식이기도 했으므로, 딸을 가진 많은 부모들은 요바이를 알아도 내색하지 않았다. 고대 일본에서 보이는, 비교적 오늘날과 비슷한 결혼 형태는 ‘처문혼’이다. 처문혼은 말 그대로 남자가 밤마다 여자의 집을 찾아가 밤을 같이 보내고 아침에 다시
참고문헌
(1)「일본문화의 이해」, 최관, 학문사, 1999
(2)「성풍속으로 보는 일본문화」, 이경덕 편저, 가람기획, 1999
(3)「일본인과 에로스」, 서현섭, 고려원, 1995
(4)「성과 문화」, 김영희 ․ 김군찬 공저, 다산서고, 2004
(5)「누구도 쓰지 못한 일본문화의 수수께끼」, 찐원쉐 ․ 찐밍쉐 편저, 우석,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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