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피카소 - 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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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감상론
파블로 피카소
1881년 10월 25일 - 1973년 4월 8일
*학력사항
마드리드국립미술학교
*경력사항
1944 프랑스공산당 입당
1936 에스파냐내란 때 인민전선 지지
1925 제1회 쉬르레알리슴전 참가
1912 종합적 입체파 운동
1909 분석적 입체파 운동
1907 입체파 운동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피카소가 처음 그린 그림은 아니다. 이 작품은 인상주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가 1863년 《살롱전》에 출품했던 작품으로 당시에는 《목욕》이란 제목이 붙었다. 벌거벗은 여인과 정장 차림의 두 남성이 전면에, 그리고 목욕을 하는 듯 한 포즈의 여인이 숲 속을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이 처음 출품되었을 때 강한 외설 시비에 휘말려 결국 마네의 이 작품은 낙선하고 말았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마네는 《낙선전》에 다시 출품했다. 사실 이 작품은 조르조네의 1508년 작 《전원의 교향곡》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으로, 같은 제목을 가진 하나의 작품이 각기 다른 세 작가를 통해 다르게 표현되어 재미를 더하고 있다.
두 여인이 정신없이 달려가는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은 《해변을 달리는 두 여인》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그런데 이 두 여인의 모습은 일반적인 여인의 모습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마치 거인을 그려놓은 것처럼 풍만하다 못해 과장스러운 두 등장인물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원시시대의 여성상을 떠올리게 한다. 남성처럼 큰 발과 굵은 다리를 가진 두 여성은 둘 다 젖가슴을 노출한 채 달음박질에 몰두하고 있다.
한눈에도 피카소의 작품임을 알 수 있을 이 작품은 주된 주제인 딸 마야의 얼굴 정면과 옆면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그런데 마야가 들고 있는 인형은 정면을 향하고 있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피카소를 비롯한 입체주의 화가들이 이런 형태의 작업을 하는 이유는 캔버스가 평면이기 때문이다. 입체주의자들은 평면에 입체를 그리는 방법을 고민했는데 이는 평면에 구축하는 입체의 환영이다. 피카소가 선택한 방법은 정면 성을 지키면서 형태를 분해하는 것이었다. 마야의 얼굴 표현이 바로 그 좋은 예다. 눈을 보면 정면에서 바라본 형태를 띠지만 코는 약간 측면에서 본 형태다. 다리도 마찬가지다. 왼쪽 발과 오른쪽 발은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런 형태로 표현된 얼굴은 왠지 온화하고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피카소 작품세계
피카소를 한마디로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는 끊임없는 열정과 샘솟는 실험 정신으로 미적 영역의 새로운 개념을 발굴하여 19세기 미술의 마침표를 찍은 장본인이었다. 또한 그는 세기의 심장을 꿰뚫은 천재이자 망나니요 미치광이이자 현대판 돈환이었고 동시에 20세기 최고의 예술가였다. 8세에 이미 돈 걱정 안하는 예술가가 되었고, 40세 대단한 부자였으며, 65세 이후 자수성가한 억만장자였다. 그를 거쳐 간 아름다운 여인들과의 불꽃같은 사랑은 100년의 사랑을 1년 사이에, 다 불태워 버릴 정도로 뜨겁고 격정적인 것이었다. 피카소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다. 그는 1차·2차 대전, 스페인 내란 등 엄청난 격동과 전쟁과 변혁과 혁명기였던 20세기에 새로운 메시지를 던진 예언가요 선각자였다. 그는 美야말로 인간의 최고의 철학이요 경제요 정치이며 문화임을 보여 준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의 예술은 난센스 즉 기존의 모든 고정 관념을 깨는 예술이었다. 그로 하여 그는 진정한 모더니티를 획득했고 그런 정신을 다각적으로 시도하며 평생을 살았다. 예술가가 꿈꿀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도전하는 그의 예술 세계는 별난 해프닝과 예술적 실험으로 이어졌다.
그는 잠시도 동반자 없이 살 수 없는 인간 지상 주의자였다. 그의 예술 세계에는 정신적 유대감과 함께 육체적 친밀성도 요구했다. 그에겐 어쩌면 자신의 예술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보내는 동반자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쏟다 분 사랑이나 우정의 강도가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격정적이고 강력한 것이었다. 이런 소나기성 세례를 받는 사람은 그에게 매혹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를 열렬한 지지했다. 피카소는 죽마고우인 카사게마스을 비롯하여 폭넓은 교류를 가졌으며 특히 그 당시 전위적 시인들 막스 자콥, 아폴리네르, 엘뤼아르, 프레베르 등과 가까이 지냈다. 그 밖에도 독일 화상인 스타인 남매, 화가 앙리 마티스 그와 견해를 같이 했던 조르주 브라크 등과 끊어지지 않는 토론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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