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김홍도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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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에 대해서
김홍도
본관 김해. 자 사능. 호 단원·단구·서호·고면거사·첩취옹. 강세황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이 된 뒤 1771년(영조 47)에 왕세손의 초상을 그렸고, 1781년(정조 5)에 어진화사로 정조를 그렸다. 1788년 스승 김응환이 왕명을 받고 몰래 일본의 지도를 그릴 임무를 띠고 떠날 때 그를 수행, 부산까지 갔으나 김응환이 거기서 병으로 죽자 홀로 쓰시마섬에 가서 일본 지도를 모사해 가지고 돌아왔다.
1790년 수원 용주사 대웅전에 삼세여래후불탱화를 그렸고, 1795년(정조19) 연풍현감)이 되었다가 곧 사임하였다. 이듬해 왕명으로 용주사의 부모은중경 삽화를 그렸으며, 1797년 정부에서 간행한 오륜행실도의 삽화를 그렸다. 산수화·인물화·신선화·불화·풍속화에 모두 능하였고, 특히 산수화와 풍속화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산수화는 사실묘사와 조국애가 어울려서 조국 강산의 아름다움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으로 당시의 신윤복·이인문·김석신·김득신 같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또, 풍속화는 서민사회의 생활정서와 농·상·공 등의 생활정서를 주제로 하여 그들의 생활모습을 익살스럽고 구수한 필치로 그린, 일종의 사회풍자를 곁들인 작품들이다.
기법도 서양에서 들어온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여 과감히 시도하였는데, 용주사의 삼세여래후불탱화에서 볼 수 있듯이 색채의 농담과 명암으로써 깊고 얕음과 원근감을 나타낸, 이른바 훈염기법이 그것이다. 작품에 소림명월도, 신선도병풍, 쌍치도, 무이귀도도, 낭구도, 군선도병, 선동취적도, 풍속화첩, 마상청앵도 등이 있다.
씨름
단원의 화재는 정형산수나 인물화에서보다도 사경산수화와 풍속화의 세계에서 독창적인 필선과 구도, 색채와 조형감을 뛰어나게 표현하고 있다.
18세기 후반인 영· 정조 연간은 시대의 영향에 따라 문물이 한국화로 진행되고 서민의 사회적 지위가 복종만에서 새로운 면으로 발전했으며
그러한 사조의 영향을 받아 회화에 있어서도 서민사회에 안목을 두게 되어 그 소산물로 세속의 주제들을 화폭에 담은 풍속화가 회화의 한 장르로 등장하게 되었다.
단원은 서민들의 생업에서 오는 즐거움을 힘차고 해학적으로 다루는 데 명수이다.
이 씨름은 상하 2단으로 관객을 배치한 중심부에 맞붙은 씨름꾼을 배치한 원형구도이다.
좌우의 공간을 고조된 경기 분위기와는 아랑곳없는 엿장수와 벗어 놓은 신발짝으로 허전한 공간을 메운 것은 여운의 조화와 화면의 안정감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이며 흥분과 조바심 속에 서민의 해학이 밀려드는 역동감이나 생활풍정은 단원의 서민적 감흥의 깊이를 단적으로 표현한 솜씨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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