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에 생선가시가 박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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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에 생선가시가 박혀
<서론>
가끔은 미치도록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언젠가 한 번 정수기에 물을 뜨러 갔을 때 들은,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너무나 서글프게 들려, 방에 들어온 즉시 장렬하게 나의 문장을 펼쳐놓은 적이 있었다. 또 도무지 청소라고는 모르는 작년 나의 기숙사 룸메이트가 그 긴 머리칼을 쓸어 넘길 때 마다 내 온 몸의 신경이 소스라치기를 여러 번 반복한 후 이력이 났을 즈음 이 이야기를 언젠가 글로 써 만 천하에 공개하고 말리라 마음먹었던 적이 있었고, 밤이 깊어지고 새벽에 가까워지도록 잠이 못 드는 어느 날이면 뭔가 멋들어지게 글을 한 편 적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역시 난 글이 좋아.’라며 국어국문과를 복수전공으로 선택했던 것이 엊그제 같다. 배운 것에 비해 나의 글을 읽고 쓰는 실력은 여전히 썩어빠진 강 하류 어딘가를 맴돌고 있지만 나의 마음만은 어쩌면 나에게도 글쟁이의 씨앗이 꿈틀대고 있는지도 모르리라 감히 추측도 해보는 바이다.
하지만 소설평이라는 과제 앞에 한 번 절망하고 과제를 쓰기 위해 읽은 책에 또 한 번 절망하고 과제를 쓰려고 앉아 있는 지금의 나는 진정 마음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도대체 어찌 쓰라는 것인가. 책은 다 읽었지만 나의 머릿속은 갈피를 잡지 못한 형체 없는 것들만 부유하고 있을 뿐 아무런 대책이 서지 않는다.
더군다나 나는 책의 목차에 똑똑히 박혀 있는 글자들을 보고야 말았다. ‘작품해설/양진오(문학평론가)’ 라는 글자이다. 반가움과 동시에 한 움큼의 부담감이 나의 어깨에 우지끈 내려앉았다. 사실 현재의 내 능력으로 이 과제를 무탈하게 해내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 지금 내가 내린 결론이다. 그렇다 한들 어쩔 것인가. 학점을 받고 싶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써내야 하는 것이고 이왕 써내는 것이라면 좀 더 잘 쓰도록 노력해볼 밖에 별 도리가 없지 않은가. 내가 이제껏 읽은 것이 협소하고 지식의 소화력도 불량이라 그럴듯하게 번지르르한 글을 쓰지는 못하겠고, 내가 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배운 것을 기본’으로 하여 글을 써보도록 하겠다.
<본론>
뽕타운에 거주하는 서 통이라는 자는 삼십이 되지 않은 나이의 한 남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영혼에 생선가시가 박혀 괴로워 하다가 그것이 자신이 소설가가 되어야 하는 운명임을 알고 소설가가 되기 위해 온갖 노력과 정성을 기울인다. 엄청난 분량의 책을 읽어내고 엄청난 양의 글을 써대고 문장관들을 염탐하거나 학원 강의를 들어보기도 하고 어느 유명한 원로 작가의 문하생으로 들어 가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늘 좌절뿐이다. 문장관들은 하나같이 그 비법들을 알려주기 꺼려하고 경계하면서 자신들만의 권력을 키운다. 서 통에게 문장관이라는 높은 직책은 그저 쳐다보기만 해도 황송한 자리인 것이다. 서 통이 어느 칠십 원로 문장관의 문하생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문학에 대한 심오함과 감명을 얻기는커녕 협잡을 목격하고야 만다. 하지만 그것을 알고도 그는 소설가로서의 운명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마침내 서 통의 소설이 당선이 된다.
* 이 소설의 특이점은 해학이 들어있는 우화적 소설이라는 것이다. 우선 이름부터가 남다르다. 서 통의 조부는 서 똥이고 선친은 서 동이다. 서두의 한 부분에서는 ‘칠 리터짜리 다랑어 국물과 상추 네 소쿠리와 기름간장 두 주전자를 다 비우다시피 하며’ 궁중숯불갈비를 먹었지만 맛이 없자 ‘잉걸불 든 탁자 여덟 개를 통풍관이 매달린 공중으로 집어 던져 스물일곱 평짜리 갈비집 반을 불지’르는 대목이 나온다. 마치 전래동화에서 어느 힘 센 사내아이가 태어나 벌어지는 일들을 보는듯한 느낌이다. 왜 이 소설은 이런 방식을 택했을까? 다른 것들을 알아보면서 답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 시공간을 살펴보자. 현대소설로 오면서 시공간적 배경은 주제형성에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고 배웠다). 이 소설의 공간은 전래동화에 나오는 ‘어느 마을’이 아닌 뽕타운이다. 뽕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한국적이다. 이 뽕이라는 단어가 환기하는 한국적 정서와 타운이라는 단어가 환기하는 서구적 정서의 결합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촌스러운 것과 세련된 것의 공존은 이질적이면서 현실세계와는 뭔가 다른 제 3세계 같은 느낌을 준다. 배경이 주는 느낌 때문이 아닌 뽕타운이라는 어조에서 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소설 전체적으로 뽕타운을 벗어난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모든 사건은 뽕 타운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며 다른 외부세계와의 소통은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작가가 이런 공간을 선택한 이유는 짐작컨대 이 소설이 우화소설인 것을 감안 해 볼 때 우리가 아는 어느 지명 보다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조작적 공간이 더 어울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등장인물을 살펴보자. 주인공 이전에 내 관심거리는 뽕타운 네거리의 지팡이든 노파이다. 그녀는 ‘들고 다니는 지팡이로 뽕타운 러브호텔 어린 창녀들의 종아리를 후려치고, 오 분에 한 번씩 정확지 않은 발음으로 허공을 향해 괴상한 외침을 지르는’ 정신이상자이다.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왼손에는 알 수 없는 동물의 오래된 내장을 들고 다녀서 그녀에게서는 늘 단백질이 부식할 때 발생하는 가스냄새가 진동’해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이 노파를 피해다닌다. 서 통은 이 이빨이 하나도 없는 노파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말하려 한다고 판단하고는 그 노파의 독특한 음운변화와 발화원칙을 분석하여 마침내 노파가 가르쳐 준 작가가 되는 방법이 매장돼 있다는 장소를 알아낸다.
나는 작가가 왜 이 여자를 등장시킨 것인지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작가가 되는 방법을 이 노파를 통해서 알아내야 하는 특별한 이유도 보이지 않고 이 노파가 주는 강렬한 메시지도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사실 지금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작가가 할 일이 없어서 별 의미 없이 별 이유 없이 설정한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일까?
갑자기 오늘 배운 <소설과 일상성>이 생각난다. 근대 이후의 소설들은 보통 사람들의 시시한 일상에 각별한 관심을 갖는다. 위대한 영웅의 삶보다 이름 없이 살다간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더 주목한다. 교재에서처럼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사물이나 존재의 개별성에 대한 탐구가 작가들의 주된 작업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노파는 어떤 인물인가? 지팡이로 어린 창녀들의 종아리를 후려치는 것하며 알 수 없는 동물의 오래된 내장을 들고 다니는 것들은 다소 평범하게 보이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이 들어 이가 다 빠지고 그 어느 누구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것은 이 시대의 노인들의 모습과 한 치 다르지 않다.
이런 평범한 노인에게서 서 통은 그동안 찾아다니던 소설가가 되는 방법을 알아낸다. 이것을 나는 ‘일상 속에서의 진리’라고 말하고 싶다. 삶에 대한 소소한 답들이 꼭 특별한 곳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 일상적인 것, 또는 보잘 것 없는 것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그런 당연하지만 쉽게 느끼지 못하는 그런 진리 말이다.
이제 주인공을 살펴보자. 소설에서는 서 통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는 나오지 않는다. 정확한 나이도 나오지 않으며 차림새가 어떻고(흰 빛깔이 나는 구두를 신었다는 것을 제외하고) 생김새가 어떻고 집안은 어떻고 주거하는 집은 어떻고 성격이 어떻다는 것도 나오지 않는다. 주로 서술되고 있는 것은 서 통의 행동과 서 통이 겪는 사건들이다. 나는 이 행동들로 서통이 어떠한 사람인지 알았으며 그 사실은 당연하고도 당연한 진리임을 깨달았다.
서 통은 타고난 소설가가 아닌 노력으로 이루어진 소설가다. 서 통은 어찌나 ‘글 쓰는 일과 글 쓰고자 하는 일에 골몰했던지, 그는 주소도 쓰지 않은 편지를 우체통에 넣기 일쑤였고, 밥이 얹혀져 있지 않은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 빨았으며, 정반대편으로 가는 전철에 올라타는가 하면, 뽕타운 러브호텔에 들어가서는 자기가 뭘 하러 왔는지 잊어버리고 어린 창녀에게 돈만 쥐어주고’ 나온다. 그리고 ‘일단 얘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하면 그는 거의 식음을 전폐하고 알몸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그가 발산하는 열기는 온 방안의 공기를 뜨겁게 데우고’ ‘그가 하루에 소비하는 원고지는 오백 장 정도였고, 석수장이 비문 새기듯 조아 읽는 독서량은 삼백사십 페이지 정도였으며, 묘사력을 기르기 위해 자신의 엄지발가락 하나에 대해 쓴 것만도 일천이백 매가 넘었다.’ ‘책이 때맞추어 나오면 사흘을 굶을 작정으로 책을 사들였고, 책을 다 읽고 나면 처음서부터 다시 읽은 뒤 정성들여 한 글자 한 글자 한 줄 한 줄 베껴 내려가, 그렇게 마지막 페이지까지 베낀 책이 무려 서른한 권이나 되었다.’ 이 외에도 <경험의 육화>를 위해 어느 곳 어느 경험이든 마다하지 않았고 문장관들의 이야기를 염탐하기 위해 숯불갈비집의 통풍구에 귀를 처박고 인내의 시간을 견디기도 하고, 들어도 들어도 잊어버리는 강의를 듣기 위해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이 부분은 우리에게 소설가가 되는 길이 얼마나 험난하고 고달픈 것인가를 알게 해준다.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소설가가 되는 일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다. 어떤 일이든 그러할 것이다. 서 통은 소설가가 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듯 나 또한 내가 되고자 하는 것이 되기 위해 서 통 못지않게 열심히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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