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아랑은 왜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6.07.15 / 2016.07.15
- 4페이지 /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800원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1
2
3
4
추천 연관자료
- 본문내용
-
아랑은 왜
1. 머리말
이야기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또 그 이야기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성되기도 하며 없어지기도 한다. 청자 혹은 독자에게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계속 명을 이어가지만 재미없고 진부한 이야기는 사라져버린다. 철저한 양육강식에 의해 살아남고 없어지는 것이다. 장화홍련의 기반이 된 아랑의 전설은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과제 혹은 다른 사람에게 듣지 않으면 기억 속에서 잊혀지기 마련이다. 김영하의 『아랑은 왜』는 이렇게 잊혀질 수 있는 평범한 아랑의 전설에 새로운 옷을 입혀 특별함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쉽게 지나칠 수 있는 한 전설을 끌어당겨 새로운 구조를 탄생시킨 『아랑은 왜』가 어떤 의미를 지니며 어떤 이유로 매력적인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2. ‘평범함’을 ‘특별함’으로 만들어 내다
2.1. 독자를 가지고 놀 줄 아는 ‘화자’
‘김영하’라는 작가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 소설학회에서 독서토론을 할 때다. 그의 소설들을 가지고 독서토론을 처음 했을 때의 그 충격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껏 내가 읽고 접해 왔던 소설들과는 다른 점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능을 체에 거르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는 것, 열려 있는 시각, 직설적으로 토해내는 그의 문체들과 글을 쓰는 방법들은 내가 놀라기에 충분한 요건들을 갖추고 있었다. 놀라기도 했고 작가 ‘김영하’에게 매력을 느낀 나는 그의 소설들인 『호출』,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오빠가 돌아왔다』를 찾아서 읽게 되었다. 그의 소설은 탄력 있는 속도감이라는 자석S를 가지고 있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S극에 당겨지는 N극처럼 강하게, 깊숙하게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소설이라는 서사적 구조를 빌려 그가 말하고 싶은 것들을 신랄하게 표현하였다. 특히 많이 개방되어 있지만 아직은 숨기려는 경향이 짙은 성(性)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숨기지 않고 거침없이 소설 속으로 던져 넣었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라고 할까? 내가 그렇게 적을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소설을 통해서 통쾌함을 느끼는 것 같다.
이와 같은 그의 소설에서의 매력들은 『아랑은 왜』라는 그의 장편소설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또 내가 그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어색함과 신선함이 이 소설에서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읽었던 김영하의 소설들과도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새로운 느낌의 것이었다. 이 소설을 선택하게 된 이유도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에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또 이 소설을 다 읽었을 때 들었던 생각이 ‘김영하는 독자를 가지고 놀 줄 아는 작가이다.’라는 것이었다. 내가 글을 읽어 내려갔을 때 긴장하고 그 긴장이 풀리고를 반복하게 해서, 글을 읽는 내내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그의 능력이었다. 소설 속에서 그는 한번 씩 불쑥 튀어나와 소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한다.
쉽게 말해 재판 절차도 갖추지 않고 죄인을 함부로 죽였으니 경관을 파견하여 사건을 다시 조사하고 부사 이상사에게는 징계를 내려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어 며칠 후 경상도와 함경도 지역으로 각각 한 명씩 어사를 파견한다는 임금의 전교로 보인다. 이 인물이 어사를 수행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김억균이라는 자를 어사와 함께 밀양으로 내려보내보자. 김영하, 『아랑은 왜』, 문학과 지성사, 2001. p48~49.
이처럼 김영하는 글 중간 중간에 나타나서 친절하게 소설을 설명한다. 소설에서 등장하게 되는 인물들이 어디서 어떤 근거를 두고 만들어졌는지를 독자에게 밥을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듯 설명한다. 이러한 작가의 예기치 못한 등장은 소설을 읽어나감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독자들의 상상력에 제한을 두기도 한다. 나 또한 목에 이물질이 걸려서 잘 넘어가지 않는 것 같은 찝찝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등장들은 이야기를 풀어감에 있어서 한 면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즉, 이리저리 많은 길들을 만들어 놓는다는 것이다. 한 길로만 가지 않고 왼쪽 길, 오른쪽 길, 오솔길, 바닷길 등 여러 길의 가능성을 독자들에게 내 보인다. 그럼으로써 생각하지 못한 전개 방법을 보여주고 독자들이 이야기의 진행과정을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벌써 결말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고 이제야 끝나느냐고 안도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이 부분은 진짜 결말이 아니라 결말에 관해서 생각해보는 장이다. 아무래도 현대와 과거의 이야기의 연결 관계를 암시하는 게 꼭 필요할 것 같군요.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린다. 오히려 아무 관계 없이 끝내는 것도 괜찮은 방식 같은데요. 어쨌든 김억균과 이상사가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줘야 할 거요. 물론 박이라는 놈의 행적도 궁금합니다. 김영하, 『아랑은 왜』, 문학과 지성사, 2001. p271.
자료평가
-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