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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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어느 날과 다르지 않은 날, 유선은(소설의 화자) 간호사에게 흡사 기계적인 목소리로 남편의 사망소식을 듣고는 혼란스러워한다. 그 비현실감에 젖어 유리 속에 비치는 자신을 보면서도, 자신이 아닌 착각에 빠지게 된다. 아니 자신이 아니길 믿고 싶은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상황이 꿈이었으면 하고 바랄 것이다. 전화가 잘못 걸려왔길 바라진 않았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게다가 혼자서 남편의 장례식에서 정신을 거의 놓다시피 할 때도, 장례식장 운영하는 사람들은 유선에게 다가와 ‘어떤 관을 하시겠습니까?’ ‘어떤 음식을 하겠습니까?’ 라는 현실적인 물음을 할 뿐, 위로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 유선은 단지 고객만 끄덕일 뿐, 화낼 힘도 없이 지쳐버린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들이 복 받쳐 오르는 것을 느끼며 유선은 더욱 힘들어 한다. 유선은 비현실감을 느끼고 있는데 세상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유선을 대하니, 유선은 일종의 괴리감을 느꼈을 것 같다. 자신은 가만있는데, 세상은 잘 흘러가는 느낌이랄까? 아무 문제도 없이 말이다. 혼자라는 고독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주 철저히…….
하지만 당황해하는 유선에게 돌아오는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사람들은 자신에 관한 일만 기억하고 남의 일은 금방 잊어버린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여중생 장갑차 사건이니, 대구지하철 참사 등을 기억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어쨌든 어느덧 시간이 흘러, 유선이 일상에 익숙해지려 하는데, 출판사 직원의 전화가 그 일상을 방해한다. 미망인이 된지 3개월도 되지 않았는데, 걸려오는 낯선 남자의 전화는 남들로 이상한 상상을 하게하고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선의 소심한 면이 나온다. 그 오해를 빨리 풀어버렸으면 더 좋았을 텐데 미루고 미루다 이제 만나니 말이다. 어쨌든 그녀는 그를 만나게 되고, 돈봉투와 함께 ‘남편의 내밀한 기록으로 책을 내고 싶다’ 고 말한다. 그 돈봉투를 뿌리치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그 출판사직원의 말대로, 남편의 컴퓨터 파일을 보던 중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와 동시에 극심한 가려움증에 시달리게 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이름으로 말이다. 그리고 죽기 바로 전날도 그녀와 함께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혼란스러워한다. 비밀을 숨길 것인지, 공개를 할 것인지, 로 고민을 하는 중, 출판사직원은 ‘글 쓰는 사람들의 운명’ 을 이야기하며, ‘3개월이 지나면 모두 그를 잊을 것이다’라고 재촉하며 유선을 설득하려하지만, 유선은 끝내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고민이 늘어나는 것만큼, 가려움증도 더해간다. 그녀는 또 다시 현실의 괴리를 느끼며 아파했을 것 같다. 마음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또 다시 남편의 외도라는 믿을 수 없이 현실이 그녀를 감싸오는 가운데, 출판사직원의 재촉은 그녀를 더욱 더 초조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거기다 본래 조심성이 많으니 자신도 답답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긍정이면 긍정, 부정이면 부정, 확실하게 말을 못하는 부분에선 답답했다. 결국 그녀는 자주 그 출판사직원에게 흔들리고 마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려움증이 심해져 병원에 까지 다니게 된 유선. 병원에선 “정신적인 충격이 없었느냐?” 고 묻지만, 유선은 단호하게 잘라 말한다. “아니요” 의사가 공부한 책으로는 사람의 몸과 영혼을 이해 할 수 없다는 말을 맘속으로 되뇌면서 아마 이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을까. “부끄럽다”고 말이다. 그리고 유선은 남편의 암호가 걸린 문서로부터, 남편이 사랑한 여자가M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유선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자신만을 사랑한 줄 알고 있었던 남편이 바로 죽기 직전까지도 자기 아닌 다른 여자와 함께 있었다는 그 사실을. 남편이 남겼던 글에서 더 확신했던 것 같다.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또 그 글이 자신의 남편이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자신을 위로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제 몸을 긁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남편과는 침묵도 알 수 있을 만큼, 투명하다고 생각했지만, 인생이 일깨워준 잔인한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이 글은 픽션이 아닐까하고 생각하는 그녀를 보며 안타까움과 동시에 그 남자(화자의 남편)에게 분노를 느꼈다. 배우자의 외도, 이혼 같은 것은 봤으면서도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믿고 싶지 않은 나의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유선도 남편을 끝까지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머릿속엔 두 문장이 지워지지 않는다. ‘모든 게 좋아, 너의 모든 것’ , ‘그렇게 많이?’ .계속 그녀의 머릿속을 맴도는 두 문장처럼 가려움증도 그녀를 더욱 파고든 것 같다. 이제 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마치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온 사람’의 지칭하면서, ‘세상과 자신 사이에 유리 칸막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있지도 않은데, 지금 슬픈 감정이 자신과 세상을 나눴다고 느낀 것 같다. 사람이 ‘자기의 기분이 가라앉으면 남과는 자신이 다르다’ 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자신은 이렇게 슬픈데, 남들은 행복해 보이니까 그런 것 같다.
‘나쁜 일은 꼭 겹친다 ’ 고 누군가가 말했듯이 유선에게도 그랬다. 자신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딸을 보며, 딸에게 악을 쓰는 자신을 보며 유선도 많이 아팠을 것이다. 안 그래도 현실의 문제에 끌려 다니는데, 딸이 힘들게 하니 짜증낼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더욱이 소심한 자신을 느끼며 답답해하던 유선을 생각하며 더욱이……. 그러나 극심한 가려움으로 잠도 못자고, 칼로 자신의 피부를 자르려고까지 생각했던 그녀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당연히 저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리고 작문과외를 하던 소녀에게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자신을 보며 초라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나마 있던 그 과외 자리에서도 쫓겨나게 되고, 앞으로 나갈 돈은 많은데, 힘없는 자신을 보며 또 한번 초라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때 왜 그녀는 자신을 배신한 그 남자의 글을 팔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 나에겐 의문이었다. 자기를 버린 그 사람을 용서 한 것일까? 그렇다고 그 출판사 직원의 제안을 완전히 무시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성격이 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딱 잘라 말하지 못했던 그 자체도 문제가 있다. 물론 출판사 직원이 바람같이 돈봉투만 놔두고 사라지다시피 하긴 했지만, ‘약간의 미련이 남아서는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마땅한 돈벌이가 없는 지금, 돈이 너무나 시급했기 때문에 약간은 욕심이 났을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거나 하는 소식을 듣는 것은 스스로도 아플 것이다. 자기 딸에게도 아버지의 완벽했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출판사 직원과의 대화에서 마음속으로 그 말(남편의 외도사실)을 되뇌며 꾹꾹 참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끝내는 그 마음속의 말을 말하지 못했다. 아마 자신에게 답답함을 느꼈을 것 같다. 여기서도 유선은 소심한 모습을 보인다. ‘거절 합니다’라고 말하며, 돈봉투를 주며 돌아설 수는 없었을까? 물론 그 조심성이 나쁘단 건 아니지만, 자신의 의사조차 드러내놓지 못한 것은 자신에게나, 남에게나 옳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녀는 그와 함께 한 시간을 떠올려본다. 자기 글에 오만을 가졌던 그의 모습, 침울해져서 늘 유선의 위로가 필요했던 그의 모습, 그리고 전등사에 놀러 갔었던 때. 그때 유선은 ‘마이 블리디 발랜타인’을 장장 4시간이나 듣게 되었는데, 그때의 둘의 사랑의 깊이를 떠올린다. 서로의 피를 주고받을 만큼, 심장자체를 원했던 사랑했던 그 모습을 떠올린다. 사랑이란 그 가슴 뛰는 느낌은, 1년 넘기기가 힘들다고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환경에 익숙해지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사랑했던 그 느낌도, 죽을 것만 같던 힘든 삶들도, 사람의 기억에는 쉬이 잊혀 지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그때도 저런 사랑에 대한 열정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참 열정적인 남편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긴 그것이 문제의 발단이 아닐까 한다. 남편이 결혼의 윤리를 버리고, 열정의 윤리를 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은 마지막 날까지 두 가지의 윤리 중 어떤 것을 택해야할지 고민하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시기상으론 이땐 벌써 외도를 한지 100일이 가까워지던 날. 아마, 100일이나 부인 몰래 바람을 피다가 갑자기 죄책감이 들진 않았을까 한다. 아내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고 말했던 자신. 자신만을 바라보는 아내. 자식에게 완벽했던 아버지의 모습. 죽기 전날 밤에 그는 그가 썼던 글처럼, 확실한 선택을 하지 못했던 자신의 삶, 그리고 이미 선을 넘을 만큼 넘어버린 자신의 결혼의 윤리, 잘못을 알면서도 자신의 발이 향하던 열정의 윤리, 그런 고민 끝에 그는 결국 자살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바라보는 자신과 자신이 바라보는 자신간의 괴리가 생길 때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자신을 합리화해서 넘어가기도 하지만, 남편은 그러지는 못한 것 같다. 마지막 날까지 고민하던 그의 모습을 보면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는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었다는 것이고, 돌이키기는 꽤나 늦어버렸다는 것이다. 자신의 지난 과오를 덮긴 위해서는 그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던 것 같다. 사실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가 살아있었다면 유선은 그를 용서 못했을 것 같다. 사람은 죽은 사람에겐 끝없이 관대한 법이니까 말이다.
유선은 또 병원을 가고, 의사와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의사와의 농담에서 힘은 얻는 것 같다. “가려움 때문에 죽는 사람은 없지요” 란 말에 유선은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안심을 한다. 아마 죽을 것만 같았던 그 느낌이 두려웠나 보다. 그리고 ‘죽을 것만 같던 감정이 가려움으로 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발레를 하는 애들을 보면서, ‘살아가는 모든 것에는 빛이 있구나, 들리지 않는 탄성이 있었구나’ 라며 살아있음을 보고, 또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가려움증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또 남편이 자신보다 사랑했던 M에 대한 질투를 느끼지만, 없어진 남편을 생각하며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다신 못 볼 M을 생각하며 그녀는 부러움 또한 느꼈을 것 같다. 자신을 놔두고 남편이 사랑했던 그 누군가를 말이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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