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기관차에서 KTX까지 시간체험과 공간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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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기관차에서 KTX까지 시간체험과 공간이동
1. KTX와 속도의 혁명
우리가 KTX에 열광하는 까닭은 그것이 현재까지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상대적으로 값싸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대중교통 수단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을 더 빨리 목적지로 실어 나르는 상용 교통수단으로서 KTX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가속의 현대 문화를 실감 나게 경험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라 하겠다.
여기서 속도의 혁명이라는 표현을 쓰는 까닭은 그러한 이동 수단들이 단순히 ‘탈것’에 그치지 않고 경제·문화 등 당대의 생활세계 전반에 걸쳐, 나아가 시간·공간을 의식하는 당대인의 사고와 감각 체계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KTX는 적어도 오늘날 우리의 사회문화적 조건에서 생활세계에 속도의 혁명을 가져온 하나의 모범적인 사례라 하겠다.
가속의 문제는 결국 시간과 공간의 문제로 환원된다. 속도의 증가, 즉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더 빨리 이동하는 것은 시간의 수축이자 축지법과도 같은 공간의 수축이기도 하다. 가속을 다른 말로 정의하면 그것은 곧 시·공간의 압축률의 증대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KTX는 상대적으로 가공할 만한 시·공간 압축률을 자랑하는 기계인 셈이다.
2. 철학적 범주로서의 시간과 공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그 변화와 움직임이 우리에게 포착된다. 예로부터 철학자들은 이런 의미에서 시간과 공간을 철학의 기본 범주로 삼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변화 내지 운동이 순간적으로 멈추는 경우란 없다. 이처럼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하고 움직인다면,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내린 최초의 시·공간적 규정인 ‘지금 여기’는 더 이상 같은 시간, 같은 공간으로 항상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즉 불변, 부동의 사물은 적어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절대시간·절대공간은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보고 만지며 느낄 수 있는 감각적인 것이 아니라 순전히 사유를 통해 고안해낸 관념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이고 이질적인 사물에서 시간과 공간을 독립시킨 것은 근대 과학과 철학의 성과였다. 근대 물리학자 뉴턴은 사물과 사건이 배제된, 즉 아무런 내용물이 없는 일종의 컨테이너와 같은 절대적인 시·공간을 가정한 뒤 ‘그 안’에 이루어지는 만물의 운동 법칙을 규명했고, 철학자 칸트는 그러한 절대시간·절대공간을 인간이 사물을 파악하는 주관적인 형식으로 간주함으로써 뉴턴 물리학을 인식론적으로 정당화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공간 개념은 사물의 객관적인 변화와 운동의 흐름으로부터 추상된 것이다. 사물로부터 추상된 이러한 시간과 공간은 순수 관념을 다루는 학문인 수학의 대상이 된다.
타임머신 또는 스페이스머신이라는 상상의 기계가 시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계산·측정·조작·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의 산물이라면, 여기서 말하는 시간과 공간은 사물로부터 추상된 관념적인 것이다. 그 상상의 기계는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시간 그 자체, 이 사물 저 사물이 놓여 있는 공간 그 자체가 존재한다고 가정하기에 시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옮겨 다닐 수 있는 것이다. 즉, 우리의 몸은 ‘지금 여기’에 묶여 움직이지 못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지금 여기’에서 오히려 ‘지금 아닌 때’와 ‘여기 아닌 곳’으로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3. 주관적 체험으로서의 시간과 공간
사물 세계의 변화와 움직임이 우리에게 포착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순수 사유가 아니라 눈·코·귀 등 감각기관에 의해서다. 사물의 객관적인 변화 내지 운동의 흐름은 사실상 우리의 지각을 바탕으로 성립되는 의식 작용, 곧 체험이라 하겠다. 즉, 시간과 공간은 시간 자체, 공간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몸으로 경험하는 시간 체험, 공간 체험에 불과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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