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문학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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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문학비평
한국 현대정신사에 있어서, 1970년대는 아마도 가장 중대한 뜻을 지닌 시기의 하나로 기록 될 것이다. 대규모의 경제성장과 극악적 정치적 억압이 한꺼번에 행해졌던 이 시기에, 우리의 지식인과 민중들은 역사상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급격한 인식의 확대와 심화를 경험 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1970년대를 돌아보면서 특별히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같은 확대와 심화의 드라마가 다른곳 아닌 문학의 영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문학의 영광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씁쓸한 뒷 맛을 남기기도 하는 데 이처럼 문학이 당당히 중심의 위치를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이 문학 자신이 원래부터 지녀온 가능성의 현실화라는 측면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문학을 제외한 다른 분야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권력에 의한 억압을 좀더 쉽게 피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힘입은 측면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190년대의 문학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 같은 영광과 씁쓸함의 양면성은, 당연히 그 시대의 비평에도 내재해 있다. 이 시기의 비평은 우선 양적인 측면에서만 따지더라도 그 전과 비교할 때 거의 폭발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대단한 팽창을 보여주었거니와, 질적인 면에서도 역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하여, 1970년대의 정신 전체를 대표할 만한 자리의 일부를 당당하게 차지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분명 1970년대 비평의 영광이지만 문학비평이라는 존재가 다른 여러 지적 작업의 영역과 비교할 때 거의 독보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면모를 과시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 시대가 저 악명 높은 유신독재의 계절이었다는점과 관련지어 살펴볼 때, 어쩔 수 없이 우울한 감회를 던져주는 것도 사실인 것이다.
이러한 1970년대에 산출된 비평적 업적에 대해 그 시기의 비평가들을 중심으로 알아보도록 하겠다.
먼저 일찍부터 문필활동을 시작하여 1970년대 초쯤에는 이미 대가의 반열에 속해 있었던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물론 1970년대의 주역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1970년대의 비평과 그 이전 시대의 비평을 연결하는 고리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맨 먼저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부류에 속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정명환 , 송욱, 천이두, 유종호 등을 지목할 수 있는데 이 들 중 앞에 두 사람은 비슷한 연배에 다 같이 서양문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일선 비평가라기 보다는 서양문학의 뛰어난 소개자겸 학자라는 풍모를 더 짙게 내보여 왔었고 서양문학에서 배운 근대성과 합리성의 자를 가지고 한국문학을 비판적으로 재단하는 태도를 오랫동안 견지해왔다는 점에서 쉽게 하나로 묶어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로 생각 되어왔지만 1970년대에 들어와서 내놓은 그들의 저서를 보면, 그들이 더 이상 동행자의 관계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 대조를 보이는 자리에 서게 디었음을 알 수 있다. 정명환이 [한국작가의 지성](1978)에 수록딘 글들에서 서구주의자의 면모를 완강하게 견지하고 있는 반면에 송욱은 [님의 침묵 전편해설](1978)이라든가 [문물의 타작](1978)과 같은 저서를 통하여, 자신이 이제는 서양의 근대 정신이 아닌 동양의 전통정신에 열광하는 사람으로 돌아섰음을 분명한 어조로 선언한 것이다.
한편 천이두는 평론집[종합에의 의지](1974)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분량을 서정주와 황순원 두 사람에 대한 글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입증되듯 이른바 한국적인 아름다움의 탐구를 기조로 한 보수적 문학에 깊은 애정을 표시 하였다.
또한 1950년대에 20대의 나이로 이미 자신의 위치를 확립하였던 유종호는 언어의 문제에 주로 관심을 쏟던 입장에서 문학사회학적인 측면에 역점을 두고 입장으로 방향을 전환해가는 과정에서 많은 내적 갈등을 경험한 듯하며, 그것과 관련이 되는 일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1960년대에는 비평활동이 뜸해지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1975년에 [문학과 현실]을 출간하고 이듬해 계간지 [세계의 문학] 창간에 참여하는 것을 계기로하여 그는 다시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또한 1970년대의 비평계에서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던 부류는 [창작과 비평] 및 [문학과 지성]의 두 계간지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있는데 이 중에 [창작과 비평]의 경우를 살펴보면, 주지하다시피 이 잡지는 민족문학론-민중 문학론- 제 3세계문학론 등 그 빛깔도 선명한 이념의 깃발을 내걸면서 우리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새롭게 개척한 점에서 1970년대 문학계의 한 장관을 이루고 있지만 이 잡지가 창간 초기의 얼마동안을 제외하고는 지나치게 배타적이며 독선적인 태도로 일관해온 것이 사실이고 때때로 형편없는 작품들을 단지 정치적인 이념에 있어서 사줄 만한 점이 있다는 이유로 옹호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우리 문학 전체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같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 잡지가 한국문학사에 남긴 거대한 발자취는 지울 수 없는 것이다.우리의 문학인들에게 작가의 역사적, 사회적 책임이라는 문제를 전에 없이 강렬한 목소리로 제기하였으며, 더 나아가 ‘민중’ 의 개념을 문학마당의 한복판으로 끌어옴으로써 기왕의 인습적인 문학관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열어보였고, 분단의 문제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진지한 자세로 대결해나가는 용기와 예지를 과시하였다. 이 같은 업적을 말할 때 백낙청이라는 이름을 그 머리에 올려놓아야 하는 데 로렌스의 문학과 하이데거의 철학을 깊이 연구한 한 사람의 아카데미션으로 자신의 기초를 확실히 다진 후 [창작과 비평]의 창간을 계기로 평단에 진입해온 그는 지금까지 2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번도 우리 문단의 이념적 전위라는 지위를 남에게 양보한 일이 없다. 이전에 말했던 [창작과 비평]의 업적으로 거론한 민족문학론, 민중문학론, 제3세계문학론 등등도 좀더 엄밀히 따지고 보면 모두 백낙청 개인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창작과 비평]의 긍정적 기여가 그대로 백낙청이라는 개인의 공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라면, 앞서 말했던 이 잡지의 부정적인 문제점으로 지적했던 사항 역시 백낙청이라는 개인의 한계와 직결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창작과 비평]이 보여준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자세의 문제점은 백낙청의 문학관 자체에 그러한 요소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한 것일 수 없으며, 구체적인 작가와 작품의 평가에 있어 때때로 납득하기 어려운 면을 보여준 것은 백낙청이 어디까지나 이념적 탐구를 위주로 하는 이론비평가이지 실제비평의 대가는 아니라는 사실에 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1970년대의 비평가들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많은 거인들을 낳은 1970년대의 비평계는 확실히 위대한 존재였다. 이것은 1980년대에 이르러 새로 등장한 비평가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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