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 사단칠정 논쟁 - 이황, 기대승, 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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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성리학, 사단칠정 논쟁 - 이황, 기대승, 이이
1.성리학의 수용
고려 충선왕 대의 이제현(李齊賢)은 원나라에서 만권당(萬卷堂)을 중심으로 주자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학문을 교류한 인물이다. 그는 고려 말의 성리학 수용에 있어서 분수령이 되는 인물로서, 이후 고려 말의 성리학 발전은 그가 닦은 학풍에 기초한다고 평가된다. 그 이후 원나라의 수도인 연경에 다녀온 안향(安珦)·백이정(白正)·이색(李穡)등의 활동에 의해 성리학 연구는 깊이를 더하였고, 권보(權溥)는 주희의 『사서집주』를 최초로 출간·배포하여 성리학의 확산에 기여하였으며, 우탁은 정이의 『역전』을 해독하는 학문적 역량을 보여 주었다. 한국사상연구소『자료와 해설 한국의 철학사상』, 예문서원, 2001 p402
한편 이색의 문하에서 배출된 정몽주(鄭夢周), 정도전(鄭道傳), 권근(權近)등은 이러한 학문적 축적을 기반으로 하여 각각 성리학 이해의 심화와 발전에 기여하였다. 정몽주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로 이후 도학과 사림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고, 정도전은 혁명과 개국의 주역으로서 조선의 정치적·문화적 체계를 건립하였으며, 권근은 『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을 통해 성리학의 철학·경학 이론을 체계화하는 한편 『입학도설(入學圖說)』을 저술하여 성리학 이론을 이해하기 쉽도록 해명하였다. 한국사상연구소『자료와 해설 한국의 철학사상』, 예문서원, 2001 p402
i)성리학의 개념 및 특성
일반적으로 성리학은 주자학과 양명학을 아울러 가리킨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성리학이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정이-주희 계열의 성리학, 즉 주자학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주자학은 조선 철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그 특성에 대해 상세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이 주자학의 특성은 과연 무엇인가?
첫째, 주자학은 “성품이 곧 이치이다”는 명제를 바탕으로 하여 전개되는 송명 유학의 한 유형이다. “성품이 곧 이치이다”라는 명제는 “세계는 이치와 기질의 오묘한 조화로 이루어졌다”는 명제, 그리고 “마음은 이치와 기질의 오묘한 조합이다”라는 명제와 서로 상관되어 있다.
둘째, 주자학이란 정이와 주희 계열의 사상적 입장을 바탕으로 하여 전개된 사상적 유형을 말한다. 이미 말햇듯이 신유학의 역사는 여러 가지 사상적 실험을 복합적으로 내재하면서 전개되었다. 북송 초기 송학은 세계와 인성(人性)을 존재론적으로 설명하는 데 기론적 바탕을 상속으로 받아 이루어진 것이었다. 북송 초기 신유학의 역사에 나타나는 주돈이·소옹·장재·정호 등은 세계와 인성이 기질로 이루어졌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이에 반해 세계와 인성을 이루는 존재론적 개념으로서 기질 이외에 이치가 있다는 주장을 펴기 시작한 사람은 정이였다. 주희는 이러한 정이의 입장을 상속받아 송하그이 완성된 형태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자학이란 정이로부터 시작된 신유학적 실험이 주희에 의해 완성된 것으로, 이 후 조선 주자학이나 일본 주자학에까지 이어져 나가는 사상적 흐름이라 하겠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강좌 한국철학(사상,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예문서원, 1995 p56
셋째, 주자학은 송명 유학 또는 신유학의 사상적 중심에 놓이는 사상의 한 형태이다. 송명 유학은 새로운 사상적 화두를 갖는데, 그것은 바로 유학을 혁신시켜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원래 유학은 일상적 삶 속에서의 바른 행동과 실천을 추구하였던 학문이었다. 그런데 일상적 삶이란 구체적이고 상황적인 것이지, 논리적 문맥을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유학은 세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해 낸다거나 형이상학적인 구조를 갖추는 데에는 그다지 적극적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송대에 들어서 유학이 놓인 환경은 다른 사상들과의 경쟁 속에서 살아나야 한다는 치열한 것이었다. 유학자들은 그것을 시대적 소명으로 여겼고, 불교나 도교와 같은 사상적 적들을 이겨 낼 수 있는 무기로서 자신들만의 특징을 단련해 낼 필요가 있었다. 유학의 특징은 바로 그것이 일상적 삶 속에 뿌리를 두고 바른 행동과 삶을 추구한다는 점이었지만, 이러한 특징들을 원형 그대로 원용해서는 이미 웅대한 형이상학적 구조와 정밀한 논리적 체계를 갖춘 불교나 도교의 사상을 이겨 낼 수는 없었다. 따라서 새로운 유학은 이들 도교 사상이나 불교 사상의 어느 부분을 상속받아서라도 스스로를 논리적 체계 속에 세우고 자신 안에 형이상학적 문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노력은 필연적으로 세계의 존재 방식을 해명하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초기 신유학사에서 나타나는 『주역』에 대한 열정적인 관심은 바로 이러한 노력의 구체적 발현이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강좌 한국철학(사상,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예문서원, 1995 p57
넷째, 주자학이란 인간을 이원적 구조를 통해 바라보는 태도를 가진 사상의 유형이다. 주자학에서 세계는 ‘이치’와 ‘기질’이라는 두 요소를 바탕으로 구성되며, 인간의 마음도 이치와 기질이라는 두 요소의 복합으로 이루어진다. 즉 기질이 주자학적 구조 속에서 세계와 인간을 구성하는 존재론적 원소임에 틀림없다 하더라도, 도덕적인 문맥에서는 오히려 부도덕 따위를 야기하는 부정적인 원인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기질을 통해서 드러나는 현실적 인간이나 현실적 인간의 마음도 부정적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강좌 한국철학(사상,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예문서원, 1995 p57
다섯째, 주자학이란 유학의 역사에서 전개된 지식론적 흐름 속에서 하나의 새로운 입장을 제출한 사상 형식이다. 이 점은 말할 것도 없이 주희의 공적이다. 유학사에서 지식론이 독립되어 적극적으로 탐구되기 시작한 것은 주희부터였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강좌 한국철학(사상,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예문서원, 1995 p58
주희가 지식론을 독립시켜 보았던 것은‘이치’를 실재하는 것으로 보았던 그의 입장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이치란 인간의 마음을 떠나서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객관 사물을 궁구함으로써 이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물론 주희는 이치에 이르는 통로를 이것만으로 한정한 것은 아니다. 그의 체계에서 이치는 이미 내 마음의 성품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주희는 ‘존덕성’과 ‘도문학’ 이라는 두 가지 통로를 다 승인하고 있다. 이 점은 주희뿐만 아니라 왕수인 등 여타의 유학자들도 다 승인하는 바이므로 결코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주희의 경우 이치가 객관 사물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측면은 한결 실제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처럼 주자학에서는 객관 사물에 대한 탐구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다고 해서 주자학이 객관 사물 그 자체에 탐구의 묵표를 둔다는 말은 아니다. 주자학 역시 유학적 도덕주의의 반경 안에 있는 만큼, 이 때의 객관 사물에 대한 탐구라는 것은 결국 객관 사물 속에서 드러나는 ‘이치’를 포착하고자 하는 것임을 알야야 한다. 이런 점에서 주희가 제출한 지식론은 유학적 한계를 가질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섯째, 주자학은 이념성이 강조되는 유학의 역사 속에서도 더욱 강력한 이념성으로 무장되어 있는 전투적인 유학이다. 유학은 원래 스스로가 인간과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절대적인 이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념성 때문에 주희 이후의 주자학도 그 철학적 순결성을 크게 주장하게 되었던 것이며, 이 점은 조선의 주자학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한국사상연구소 『자료와 해설 한국의 철학사상』, 예문서원, 2001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강좌 한국철학(사상,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예문서원, 1995
김교빈 外 5명 『함께 읽는 동양 철학』, 지식의 날개 ,2006
한국철학사연구회 『한국철학사상사』, 심산 , 2003
장승구 外 14명 『동양사상의이해』, 경인문화사 , 2003
<<토론주제>>
1. 이황은 리기호발설(理氣互發說)로 칠정은 기발(氣發)로 해석하였고 사단은 리발(理發)로 해석하여서 리와 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기대승은 ‘사단이 칠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하여 서로 나눌 필요가 없다고 하며 리기호발설을 부정하였다. 이 사단칠정론에서 이황을 지지하는가? 기대승을 지지하는가?
2.성리학은 우주의 이치와 인간은 심성을 탐구하는 학문이었다. 하지만 후에 지나갈수록 훨씬 형이상학적으로 빠져들게 되면서 실용성이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리학은 학자들만의 학문인 것일까 아니면 백성들에게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정신으로 널리 퍼뜨려야하는 학문인 것일까?
3.이황과 이이는 당시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서 뒷받침했던 근거로 각각 ‘이기이원론’과 ‘이기일원론’을 제시하였다. 어느 것이 자신의 생각과 더 맞는지 토론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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