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의 구인회 활동과 이상李箱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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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박태원의 <구인회> 활동과 이상(李箱)과의 관계
목차
Ⅰ.서론
Ⅱ.시대적 배경과<구인회>가입 및 활동
Ⅲ.이상과의 관계 및 작품으로의 발현
Ⅳ.「염천」에 나타난 이상의 애정행각
Ⅴ.「애욕」을 통해 본 박태원의 이상 관찰
Ⅵ.결론
Ⅰ.서론
박태원은 1930년 가을,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하는 동안 당시 일본 문단에 유행하던 심리주의 소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서구의 아방가르드 운동이나 모더니즘, 다다이즘에 호기심을 보이기도 했다.
박태원은 호세이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한 후에 <구인회>가입과 더불어 다시금 문학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구인회>에서의 활동은 박태원의 삶과 문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지위에 있다.
이 글에서는 박태원의 <구인회>시절 문학 활동에 대해 그 시발과 경과 과정을 살펴보고 같은 <구인회>의 구성원이자 개인적으로 특별히 친밀한 사이였던 이상과의 관계에 대해 고찰해 보려 한다.
Ⅱ.시대적 배경과 <구인회> 가입 및 활동
1930년대 한민족은 식민지 상태에 있었고 사회 경제적으로 또는 사상과 문예적으로 궁핍하고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3.1운동 후 20여년에 걸친 총독정치 아래 거의 완벽하게 식민지 체제로 고착되어 있었던 것이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사이의 문학의 성격은 프로문학과 순수문학, 그리고 모더니즘문학의 대결상황이 말해주듯이 여러 사조가 혼재했었다. 1930년대의 모더니즘 문학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시문학파와 해외문학파에 의해 탐색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기운은 1933년 <구인회>가 결성되면서 점차 확대, 발전되어 나갔다. 모더니즘 문학은 <구인회>에 의해 비로소 장착되고 잡게 되었다고 보아야 하며 <구인회>의 문학적 특성도 모더니즘적인 문학의 일단으로 규정해야 할 것이다.
박태원은 1933년 <구인회>에 가입하면서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정립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소설의 기법은 <구인회>의 이념에 합치되는 모더니즘적인 것이며 그 문학적 성과 또한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이들의 여러 가지 활발한 문학 활동 즉 개인 활동은 물론이고 강연회 개최, 기성문인 비판, 기관지 발간 등을 통해 <구인회>의 가입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이태준, 박태원, 이상 등은 끝까지 회원으로 남으면서 이들이 이 단체의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 가운데 박태원은 여러 가지 표현 형식을 시도하였고, 심리소설이라는 독특한 소설형식을 창출하였다. 묘사와 표현을 강조함으로써 이를 소설 기법의 하나로까지 인식하고 있던 이태준 못지 않게 박태원 또한 이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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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0년대의 소설문학
  • 박태원(朴泰遠/1909.12.7~1987)1926년 《조선문단(朝鮮文壇)》에 시 《누님》이 당선되었으나, 소설로서의 등단은 30년 《신생(新生)》에 단편 《수염》을 발표하면서 이루어졌다. 33년 구인회(九人會)에 가담한 이후 반계몽, 반계급주의문학의 입장에 서서 세태풍속을 착실하게 묘사한 《소설가 구보(仇甫)씨의 1일》 《천변풍경(川邊風景)》 등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그의 소설에 있어 특기할 사항은, 문체와 표현기교에 있어서의 과감

  • 이상 시 연구(거울/오감도)
  • 박태원․이상․박팔양이 가입하였으며, 다시 유치진․조용만 대신에 김유정․김환태로 교체되어, 항상 9명의 회원을 유지하였다. 1930년대 경향문학이 쇠퇴하고 문단의 주류가 된 이들은 계급주의 및 공리주의 문학을 배격하고 순수문학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하여 당시 순수문학의 가장 유력한 단체로 활동하였으나 3~4년 만에 해체하였다. 이상과 박태원이 중심이 되어 《시와 소설》이라는 기관지를 펴냈다. 이상, 「조선중앙일보」(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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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소설론] 김유정소설연구
  • 활동하였으나 3~4년 만에 해체하였다. 이상과 박태원이 중심이 되어 《시와 소설》이라는 기관지를 펴냈다.에 가입하게 되면서 이상과 알게된다. 이상과의 친분관계는 꽤 깊이 발전하게 되는데 그것은 함께 폐결핵을 앓는 그야말로 동병상련 같은 것이요. 서로의 천재성을 인정하는 그런 문우로서의 교제였을 것이다. 유정이 병석에 누워 있던 어느 날 이상이 찾아와 둘이 함께 죽자고 제의한 것을 거절했었던 일은 지금도 잘 알려진 일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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