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위나라 인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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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위나라 인물에 대하여
<조조 맹덕>
삼국시대 위왕조를 세운 인물. 패국 초군 사람으로 자는 맹덕(孟德). 묘호는 태조(太祖). 시호는 무황제(武皇帝). 본시 하후씨였으나, 아비 조숭이 환관인 중상시 조등(曹騰)에게 양자 들어간 때문에 조씨로 일컬었다. 사태를 기민하게 살피고 권모술수에 능하고 이름이 나기를 좋아함. 무에 대해서 능하며 문학에도 재예가 비상함. 기도위로 황건적 토벌에 참여한 것을 시초로 등장하기 시작하여 동탁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돌아가 의병을 일으켜 산동 지방에 기반을 닦았다. 헌제가 궁지에 빠졌을 때는 시간을 지체 않고 그를 맞아 들여 호령 천하 하는 명분을 삼았다. 기회를 보는 데 빠르고 문무를 겸전하여, 육십 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줄곧 출장입상하여 천하를 주름잡았다. 수하에 많은 인재를 거느려 능소능대하게 그들을 구사하였으며, 적과 싸워 위험한 경지에 빠진 적이 무수히 있었으나 그때마다 천행으로 모면하였고, 또한 야심을 꺾지 않았다. 건안 13년 손권, 유비의 연합군과 적벽에서 싸워 대패, 이후로 그 세력이 강남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같은 해 승상(丞相), 동 18년 위공, 21년 위왕까지 되었던 때문에, 억강부약의 심리로 작용되었겠지만, 삼국지 연의란 본시 관우가 민간에서 신으로 숭배된 뒤, 그의 의기를 중심으로 엮어졌기 때문에 줄곧 미움의 대상으로 그려져 있으나, 전반부에서 단연 주인공의 위치를 차지해 있다. 그는 정치상의 실권을 잡았으나 스스로는 제위에 오르지 않았고, 220년 정월 낙양에서 죽었다(66세). 모든 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지만 사람을 너무 수단적으로 삼은 것이 그를 잔인하게 평가하게 한 이유가 됨. 그는 문학을 사랑하여 많은 문인들을 불러들였으며, 자신도 그 아들 조비, 조식과 함께 시부의 재능이 뛰어나, 이른바 건안문학의 흥륭을 가져오게 했다. 아들 조비는 대를 잇자, 이내 황제위를 일컫고 그에게 무제라 시호를 올렸다. 후세에 조조는 간신의 전형처럼 여겨져 왔는데, 근년에 이르러 중국 사학계에서는 그의 재평가를 둘러싼 논쟁이 일기도 하였다. 삼국이라고 하나 실력에서 월등하게 우세하였다 보겠고, 촉한이 한의 법통을 이은 것을 표방하나 정사인 진수의 삼국지에서는 그의 세력의 후계자인 위를 정통으로 처리하고 있다.
<하후돈 원양>
위의 상장. 초 사람으로 자는 원양(元讓). 조조와는 사촌뻘로 조조가 그 아버지 대에 조씨에게 양자 갔기 때문에 성만은 달라진 것이다. 하후연과 처음부터 조조를 따라 다니며 누차 전공을 많이 세움. 동탁을 찌르려다 실패하고 진류에 돌아와 의거할 때, 맨 먼저 천여 명 부하를 거느리고 참여하였다. 여포를 토벌할 때 맨 먼저 적장 고순을 만나 싸우던 중 조성이 쏜 화살을 눈에 맞고, 그냥 쑥 뽑아다가 묻어 나온 눈알을 질겅질겅 씹어 삼키며 부모님의 정혈을 어찌 땅에 버리랴 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제갈량의 첫 싸움 지인 박망파에 대장으로도 출전. 여러 차례 전장에 줄곧 용감하게 싸워 명성을 떨치고 조조가 죽은 뒤 조비가 위왕이 되어 대장군에 임명되었으나 몇 달 후에 병으로 죽었다.
<장료 문원>
위의 용장. 안문 마읍 사람으로, 원래 성은 섭(攝)이고 자는 문원(文遠). 본시 여포의 장수로서 정원, 하진, 동탁을 섬기며 동분서주하였으나, 관우와는 전장에서 대하여도 마음이 통하여 서로 아끼었다. 하비성 함락 때 붙잡혔으나 버티고 항복하지 않은 것을 유비와 관우가 충의지사라고 조조에게 간청하여 목숨을 건지고, 그리하여 조조의 막하에 들었다. 관우를 일시나마 조조에게 귀순시켰던 것도 그 은의에 대한 보답이었고, 전후 수십 차 출전에 무수한 공을 세웠으며, 동오와 대항하여 합비를 지켰을 때는, 합비를 에워싼 손권의 군대를 8백의 돌격대로 격퇴해, 그의 이름만 들어도 아이들이 울음을 그친다고 할만큼 용명을 날리었다. 후에도 자주 손권의 군대를 무찔러 오나라 군사를 두렵게 했다. 무력이 탁월하고 도략이 깊으며 식견이 넓어 어느 일이나 잘 처리 함. 나중에 조비가 대군을 출정할 때 싸움에서 전장군으로 임하던 중, 노장 정봉이 쏜 화살을 맞고 허도에 돌아가 치료하던 중에 금창이 터져서 죽었다. 시호는 강후(剛侯).
<곽가 봉효>
조조의 모사. 자는 봉효(奉孝). 순욱과는 동향인 영주 영음사람으로, 정욱의 천거로 그의 막하에 들었다. 여포와 복양에서 싸워 패했을 때는 조조가 화상으로 죽었다고 거짓 발상하여 여포의 추격군을 크게 파하였다. 원소를 멸한 후 잔당을 소탕하기 위하여 멀리 사막까지 침공하였을 대 종군하여 계책을 들였으나, 도중 풍토가 맞지 않아 병이 들어 역주에서 요양하다 진중에서 죽으니 때는 38세의 아까운 나이였다. 관직은 군제주이고 시호는 정후(貞侯).
<허저 중강>
조조 막하의 용장. 초국 초현사람. 자는 중강(仲康). 조조가 복양의 패전 후 황건잔당을 토벌할 때 자신의 마을을 지키다 그의 수하에 들었다. 용맹이 절륜하여 동관 싸움에서 조조가 위경에 빠졌을 때는, 그를 들쳐 없고 한 칸이나 멀리 떨어진 배 위로 뛰어들었고, 혼자 말안장으로 적의 화살을 막으며 노를 저어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조조의 신변을 지키는 군대를 호위군이라 하여 전위와 그가 거느렸는데 전위는 장수의 야습으로 죽고, 허저는 음이 비슷하게 호치(虎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동관의 싸움에서 마초가 면대해 호후라고 불렀으므로 이후론 또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 마초와 전후 이 백 합을 싸운 끝에는 갑옷을 벗어 던지고 발가벗고 나서서 창을 잡고 승강이하다가 부러진 창으로 서로 두드리는 희극도 벌이었다. 인간이 우직할 정도로 고지식하여, 조조가 취해서 자는 방을 지킬 때 조인이 찾아온 것도 통과시키지 않아 조조에게 참 충신이라고 칭찬 받기도 하였다. 조조가 죽었을 때는 울다 피를 다 토했다 한다. 무위장군의 칭호를 받았으며, 뒤에 병으로 죽었다.
<서황 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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