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우의 작품 경향과 변모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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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호우론
Ⅰ. 작가의 생애 및 작품소개
1912년 음력 3월 2일 경북 청도군 대성면에서 구한말 군수를 지냈던 아버지 이종수와 어머니 구봉래 사이에서 2남 2녀 중 2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고 필명으로 이호우가 있는데, 이는 작품 발표시에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는 그 고을에서 만석군 재력과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은 부유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 누이동생 이영도도 그에 못지않게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여 명성을 크게 떨친 여류 시조시인이다. 그의 조부 혜강 이규현은 밀양 영남루의 거두로서 한학과 시문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민족의식이 투철했다고 한다. 이들 남매의 이런 시적 재능과 불의를 보고 못 참는 비판정시는 그 조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닐까 한다.
1921년 10세 때, 그는 어려서 조부 이규현이 고향 마을에 세운 의명학당에서 한문을 배우면서 유년기를 보냈다. 4월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경남 밀양읍으로 가서 밀양공립소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그리고 이호우는 특진졸업을 했다. 1930년 19세 그가 일본으로 유학한지 1년, 신경쇠약 증세의 재발과 위장병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게 된다. 이것이 이호우의 최종 학력이고 전부인 셈이다. 1934년 23세 때 경상북도 칠곡군에 사는 김보희의 영애 순남과 결혼했다. 36년 25세에 1월 5일,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영춘송(迎春頌)>을 응모하여 가작으로 입선되었다. 이 때에 시조부문은 당선작이 없었다. 이 무렵에 동아일보의 독자투고란에 가람 이병기 추천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39년 이 무렵 선자인 가람 이병기가 이호우에게 엽서를 보내서 문장지 추천제의 안내를 받았다 한다. 40년 동아일보 2월 29일자 2면에 시조 <새벽>이 이병기고선당선시조로 게재되어 있다. 또한 시조 <달밤>이 《문장》6·7월 합병호에 이병기의 추천을 받아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하게 된다. 당시 문장지에서 시나 시조 부문은 3회 추천으로 완료되는 것인데, 이호우의 경우는 이미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가작으로 입선된 경력 등을 참작하여 1회로 완료케 한 것으로 보인다.
41년부터 45년 8·15해방 이후까지는 고향에서 정미소와 만물상, 제재소를 경영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다고 한다. 46년 고향의 가산을 모두 정리하여 대구시 대봉동으로 이사했다. 이사한 후 한때 대구고등법원 재무과장과 문화극장의 사무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 무렵 그에게 가장 영향을 미친 것은 대구에서 발행된 동인지 《죽순(竹筍)》이다. 한동안 발표지가 마땅치 않아 못했던 작품활동을 죽순동인이 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하면서 동인지에 많은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47년 <무덤>·<연기>·<귀로> 등의 많은 작품을 동인지와 아동지 등에 발표했다.
49년 남로당 도간부의 혐의를 받아 군법회의에서 사형언도를 받게 된다. 이때 이에 연루된 8명 중 4명은 처형되었다고 한다. <공일(空日)>·<바다>·<너의 천국> 등의 시조를《죽순(竹筍)》지에 발표했다. 특히 동 11집에는 ‘이호우시조초’라는 제목으로 11편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50년 봄에, 구상·조지훈 등의 구명운동으로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있던 시인 김광섭이 대통령에게 진언하여 혐의를 벗고 무죄로 방면되었다. 6·25동란이 일어나자 그는 종군기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52년 4월 <기(旗)발>을 《전선문학》에 발표했다. 이 무렵에 대구 대륜중·고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54년 12월 대학입시를 위한 시조해설집『고금명시조정해』를 윤계현과의 공저로 서울 문성당에서 펴냈다. 이 책의 말미에 자작시 지연(紙鳶)을 수록하고 있다. 55년 첫 시조집『이호우시조집』이 영웅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이 책에는 약 70여편의 작품이 수록되고 있다. 3월 1일에는 동아일보에 <뜨거운 기빨 앞에서>라는 논설을 발표한 데 이어, 시조 <바람벌>이 《현대문학》과《대구대학보》에 발표되었는데, 이 작품이 반공법에 저촉된다고 하여 검찰이 기소하는 등 그의 필화사건에 휘말려 들기도 한다. 56년 3월 1일 청마 유치환과 함께 제1회 경북문화상을 수상한다. <발자국>·<묘비명>을 월간 문학지에 발표했다.
63년 11월 <별>과<진주>는 원로시조시인 노산 이은상 선생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현대사에서 간행된『현대시조작가대표전집』에 실려있는데, 이들은 그의 전집기록에도 수록되어 있지 않았던 사항이다. 64년 3월 국토분단의 민족적 비극을 노래한 <비원>·<단층에서> 등을 월간 문학지에 발표한다. 65년 이우출·정재익·김상훈 등과 함께 ‘경북 시조문학 동우회’를 결성했다. 그는 이 때부터 향토문화와 후배양성에 힘을 기울이게 된다. 66년 <또 다시 새해는 오는가>·<곰>·<비키니섬>·<그네> 등의 많은 작품을 월간 문학지·시지·시조지 등에 발표한다. 68년 2월 제2시조집『휴화산(休火山)』을 중앙출판공사에서 간행했다. 이는 동생 이영도와 함께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라는 대표제목으로 냈다. 동인지 ‘낙강’의 발간에도 관여하게 되는데, 이는 영남시조문학회에서 주관했다고 한다. 70년 1월 6일 밤, 이화진이 경영하던 대구동문다방에서 문학소녀들과 만나고 지하계단을 올라와 조금 앞서가다가 뒤를 돌아다보며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면서 거리에 쓰러졌다. 이를 목격한 보초군인들의 도움으로 경북대학교 부속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사망했다. 72년 대구 앞산공원 계곡에 <開花(개화)>가 새겨진 시비가 세워졌다.
Ⅱ. 작품 경향과 변모 과정
이호우는 1940년 등단해서 70년 작고하기까지 두 권의 시조집 이외에 각종 시지 및 문예지에서 발표하였던 시조는 40여 편으로, 작품활동으로 남겨진 그의 시조 작품은 대략 180여 편 1992년 1월 이호우의 시조전집『차라리 절망을 배워』(대구 :도서출판 그루)가 문무학,민병도에 의해 발간되었는데, 여기에는 이호우 시인의 시작노트<여백록>에 쓰여진 미발표 시조 12편을 포함하여 총 185편이 실려 있다.
에 이른다.
전기시- 자연시와 생명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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