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嘉藍이병기의 이해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6.04.16 / 2016.04.16
  • 5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8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본문내용
가람(嘉藍) 이병기
Ⅰ. 약전 및 작품 경향
이병기(1891~1968)는 전북 익산군 여산면 원수리 출생으로 1898년부터 1908년까지 고향에서 한학을 배웠으며 1910년에야 관립 한성 사범학교에 입학했다. 이 때 주시경 선생이 가르치던 조선어 강습원을 수료한다. 1913년 졸업하고 남양, 전주 등지의 공립 보통학교 훈도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국어 국문학, 국사학 관계의 문헌을 광범하게 수집하기 시작, 시가 문학에 대한 연구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1921년 조선어 연구회를 조직, 간사가 되며 1922년부터 시조창작과 연구에 박차를 가한다. 1926년 ‘시조란 무엇인가’, 1928년 ‘율격과 시조’를 동아일보에 발표하며 시조 연구를 중심과제로 한 가요 연구회도 조직한다. 한편 삼남 각지를 돌면서 우리말과 문학에 대해 강연하고 고문헌을 수집하는 일도 계속한다. 1930년 한글 맞춤법 제정위원이 되고, 1932년 논문〈시조는 혁신하자〉를 동아일보에 발표, 1939년부터는 동아일보 학예면의 시조난을 담당한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피검, 1943년 기소 유예로 풀려나 낙향하여 농업에 종사하던 가람은 해방 후 상경하여 미군정청편수관으로 취직하여 국어 교과서의 편찬에 노력한다. 1947년 서울대 문리과대학 국어 국문학과 교수로 피임된 이후부터 그는 평생을 대학에서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바친다.
Ⅱ. 시조부흥운동과 현대시조의 시작
시조는 대체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형성되었다고 본다. 개화기 이후 나타난 자유시에 밀려 점차 쇠퇴, 이에 시조부흥운동 카프의 계급문학에 대항하여 주로 민족문학의 입장에 있는 최남선, 이광수 등이 중심이 되어 활동한 국민문학운동의 핵심운동.
이 일어나게 되었다. 1920년대에 들어 계급주의 문학에 대항한 최남선, 이광수, 정인보, 이은상, 이병기 등에 의해 본격적인 현대 시조가 창작되었고, 이후 김상옥, 이호우, 정훈 등의 현대 작가에 이르기까지 계승되어 오고 있다.
현대시조에서는 전통적 시조의 제한된 소재와 상투적 주제의 지나친 과장 등의 측면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새롭게 대두되었다. 현실적 정감 표현, 취재 범위 확장 및 연작 시도 등으로 나타난 시조개혁운동은 현대의 자유시와 대결하여 생존권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자유시에 맞서기 위해 시조 자체의 구태의연한 모습을 일신하려는 시도는 형식적 측면에서 자유시와 가까워진다는 모순을 내포하지만 시조의 정형성과 거기에서 오는 정련된 아름다움은 어떤 현대시보다도 더 밀도 있는 표현으로 살아남고 있다.
현대시조는 1907년「대한 유학생 회보」에 발표된 육당 최남선의 ‘국풍 4수’가 중요한 계기가 된다. 전통적 시조 형식은 시조창과 밀접히 결부되어 있었는데 육당에 와서는 창과의 분리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으로 변모했다. 노래 부르는 시조에서 읽는 시조로의 전환, 즉 음악적 시조에서 문학적 시조로의 탈바꿈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시조가 창의 제약성을 벗어나면서부터 현대시조는 3장 6구의 형식 내에서 일층 자유로워지게 되었다.
그러나 육당의 시조는 상당한 부분에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성격을 탈피하지 못했다. 현대시조가 서정시로서 개인의 주관적 감정을 노래하게 되는 것은 가람 이병기에 의해서이다. 가람의 시조는 육당처럼 생각을 설교하거나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개인의 느낌이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어 있으면서도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지닌다.
Ⅲ. 문학적 특성
1. 탈조선주의와 개성의 추구
육당과 춘원을 지배한 것은 시조가 유일절대의 민족양식이라는 것으로 이는 시조의 문체와 형태구조를 고정된 실체로 받아들여 그 위에 민족적인 생각을 넣고자 하였다. 그러나 가람의 시조선택론 1926년 ‘시조란 무엇인가’에서 언급.
에 따르면 시조만이 민족을 위하는 길은 아니며 신시이든 시조이든 작자의 자유에 맡겨야 한다. 이렇게 되면 시조는 그 나름의 존재 의의를 주장, 독자적인 가치체계를 수립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시조를 조선주의에서 분리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현대문학사] 1920년대 문학, 1930년대 문학, 1940년대 문학
  • 이병기李秉岐, 1891.3.5~1968.11.29 시조 시인국문학자. 호는 가람(嘉藍). 시조 부흥 운동에 앞장서서 시조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는 데 노력하는 한편, 창작에도 관여하여 시조의 현대화에 기여하였다. 저서에《가람 시조집》,《국문학 개론》 따위가 있다. 8. 김광균金光均, 1914.1.19~1993.11.23 시인(1914~1993). 신석초, 서정주 등과《자오선》,《시인 부락》 따위의 동인지에서 활약하였다. 온건하고 회화적인 시풍을 나타내 1930년대 모더니즘 계열의 대표적

  • 고시조의 이해와 감상
  • 이해와 접근이 용이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뿐만 아니라, 끝맺는 말을 청유형이나 명령형으로 하여 백성들을 설득하는 힘이 강함도 주목할 만한 표현이다. 1 이 시조는 훈민가의 첫 작품으로, 부의모자(父義母慈)라는 제목으로 된 것이다, 부모는 어린애에 대해서 신(神)과 같은 존재요, 태양과 같은 위치에 있다. 인간의 2대 비극은 부모 없는 고아가 되는 것과 나라 잃은 망국인(亡國人)이 되는 것이라 한다. 어린애는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사실

  • 민요시론과 현대 시조론 민요시 형성 민요시론 전개 민요시론 외래사조 영향 민요
  • 이병기, 김억, 심훈, 정인섭, 염상섭 등은 시조를 계승하되 고풍을 버리고 혁신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시조 혁신의 구체적 대책이 요구된다고 하였다. 그것이 ‘시조는 혁신하자’(동아일보, 1937. 1. 23~2.4)는 가람의 시조혁신론이었다. 이를 전후하여 단편적인 개혁론이 전개되었다.시가 언어의 예술임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순수시파와 주지주의 시인들로부터 비롯된다. 한국시사에 있어서 주지주의적 시가 얼마만큼 성공했는가 하는

  • [시가교육론] 한국현대시 52편부터 100편까지
  • 이해되고 그래서 많은 독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생각거리①이 시에서 이름을 불러 준다는 의미는 무엇인가?②1연의 ‘몸짓’과 4연의 ‘눈짓’은 어떠한 차이를 지니고 있는가?66. 꽃을 위한 서시序詩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눈시울에 젖어 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나는 한밤

  • [시조][시조집][전문가객][도가][개화기시조]시조와 시조집, 시조와 전문가객, 시조와 도가, 시조와 변신모티브, 시조와 개화기시조, 시조와 사설시조, 시조와 현대시조, 시조와 여류시조, 시조와 기녀시조 분석
  • 가람(嘉藍) 이병기(李秉岐),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 이후의 작품을 현대 시조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시조를 본격적으로 현대화시키는 데 이바지한 사람은 이병기․이은상 등이며, 31년에는 《노산시조집》이, 47년에 《가람시조집》, 48년에 《담원(園) 시조집》(정인보 저) 등이 발간되어 허술한 시조 시단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주요한(朱耀翰)․양주동(梁柱東)을 비롯하여 기타 많은 문사들이 시조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일석(一石) 이희승(李熙昇)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