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노해 본명 박기평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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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시인 - 박노해(본명 : 박기평)에 대하여...
이상을 잃은 삶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혁명 시인.
20세기에는 사회주의혁명을 꿈꿨으나, 21세기에는 `사람만이 희망`인 사회가 오기를 꿈꾸고 있다. 그의 본명은 박기평, 세례명은 가스발. `박노해`란 이름은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을 뜻한다.
15세에 상경해 야간 상고를 졸업하고, 섬유·금속·정비 노동자로 일했으며, 경기도 안양에서 서울 개포동까지 운행하는 98번 버스를 몰기도 했다. 1983년 그는 황지우, 김정환, 김사인 등이 꾸리고 있던 동인지 <시와 경제>2집에 「시다의 꿈」,「하늘」, 「얼마짜리지」,「바겐세일」,「그리움」,「봄」 등 여섯편의 시를 발표하며 얼굴없는 시인으로 문단에 나온다. 시인의 신원은 오랫동안 철저하게 베일에 가린 채 그에 대한 갖가지 유언 비어성 풍문만 떠돈다. 박노해는 1984년 『노동의 새벽』을 풀빛출판사를 통해 내놓으며 1980년대를 관통하는 뜨거운 상징이 된다. 『노동의 새벽』이 나오기까지 시인은 군자동 섬유 공장, 청량리 공사판, 성수동 영세 공장, 안양의 버스회사 등에서 노동자로 전전하며 노동자 시인이기에 앞서 철저한 조직 운동가가 되기 위한 단련의 시기를 거친다. 이렇게 7년의 세월을 보낸 뒤 비로소 내놓은 것이 『노동의 새벽』이다. 시인 자신은 『노동의 새벽』의 출간 의미를 "뼈저린 자기 부정과 해체이자 불철저한 나 자신과의 투쟁"으로 규정짓는다. 유신 말기인 1978년부터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해고·수배·지하조직 등 산전수전 다 겪은 후, 1991년 안기부에 구속되어 무기징역 형을 선고 받았다.
특사로 출옥할 때까지 8년간을 0.75평 독방에서 지낸 박노해는 자기 방에 `은총의 암자`라는 뜻의 감은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는 매일 20km씩 달리고 12시간씩 정좌하여 책을 읽을 만큼, 독하게 징역을 살았다.
1998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뒤 그가 쏟아낸 말과 행동, 이를테면 서태지와 아이들의 여렬한 팬임을 자처하거나 록 콘서트 현장에 나타난 것 등은 헉명가 박노해와 하나로 잘 겹쳐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것이 달라진 박노해의 참모습이다. 그가 감옥에서 나올 때 담당 교도관은 "반입 도서 리스트가 1만 권"이라고 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박노해는 자신의 실제 독서량은 그것을 넘어설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10여개의 일간지와 각종 주간지며 원간지 등을 형광펜으로 주요 부분을 그어가며 읽어가는 동안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변화의 빅뱅"을 실감하고, 21세기의 패러다임은 제도 개혁이 아니라 사람 자체의 변화 속에서 나올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얼굴 없는 시인은 지난 1980년대의 신화 속에 묻어버리고, 이제 박노해는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박노해 시인의 시와 감상...
그의 시에는 화려한 기교라던지, 리듬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투박하고, 거침 없으며, 사실적이다. 보통의 시가 가지고 있는 무엇인가 감추고 있고, 우회하는 식의 시어나 내용이 아닌 거침 없이 다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의 새벽, 하늘, 통박 등 그의 시에는 감춤이 없다. 그래서 솔직하고, 진솔한 노동자를 볼 수 있다. 하루 이틀을 겪어 보고 알 수 없는 그런 세계인 것이다.
이 때문에 채광석을 중심으로 한 일단의 민중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출신 성분을 저주하며 노동자 계급에의 복무를 선언하기도 했다. 노동자 출신의 박노해, 즉 노동자로써 민중 문학을 쓰는 그를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따라 가기란 다른 시인들에게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문학인들에게 그는 커다란 위축감을 주었음이 틀림없다. 이 때는 지식인 문학의 한계와 위선에 대한 반성이 시대의 유행과도 같았기 때문에 박노해의 등장은 ‘지식인 문학의 위기와 민중 문학의 구상’이라는 87년 김명인의 논문을 거치면서 민족,민중 문학의 급격한 이념 분화로 이어졌다.
박노해는 70년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말차고 죽은 노동자 계급 최초의 자기 선언을 하며 죽은 전태일과는 달리 제 몸을 불사라는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고발, 계급 해방에 대한 간절한 열망, 동료 노동자들을 향한 각성과 단결에의 외침이 전태일의 외침과 박노해의 시에는 공통적으로 들어있다. 전태일이 죽고 나서 14년이 지난 후에도 노동자의 삶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에 박노해 시인의 등장은 그 시대 일대 혁명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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