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우주 503호의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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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우주 503호의 무늬
어린 왕자는 소행성 B-612호에서 살다 왔다지만, 나는 세 번째로 집도 아닌 ‘방’을 옮기면서 방이 나에게 하나의 ‘소우주’라는 생각을 했다.
‘소우주. 우주의 일부이면서도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우주처럼 여겨지는 것. 특히, 우주 그 자체에 대응하여, 그것을 대표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이르는 말.’
기숙사에 살았던 것까지 합하면 장장 여섯 번의 이사에서 살아남은 2001년도 판 국어사전은 소우주의 첫 번째 뜻을 이렇게 알려준다. 마지막에 ‘인간’을 ‘인간과 그의 공간’으로 고치면 신림동과 봉천동에는, 아니 서울에는 무수한 소우주 OOO호와 그 주인들이 건물마다 층층이 쌓여 있을 것이다. 집 한 채보다 클까말까 한 크기의 별에서 온 어린 왕자는 그 별에서 도도한 장미꽃 한 송이와 살았고, 쓸쓸할 때면 해 지는 모습을 바라봤다고 말했다. 어린 왕자의 별보다 훨씬 작은 내 소우주에도 시간과 공간이 빚어낸 소소한 무늬들이 새겨져 있다.
뽀송뽀송한 햇살을 받은 로만쉐이드가 갓 뽑아낸 가래떡 같은 빛깔을 자랑하면, 족히 8시가 다 됐거나 지났다는 뜻이다. 요즘 계속된 미세먼지의 공격과 부쩍 늘어난 새벽 기상으로 그 뽀샤시함을 볼 일이 도통 없기는 하지만, 얼마 전만해도 주말 아침의 농익은 햇살은 꿀통에 빠진 벌이나 느끼는 달콤함 못지않았다. 오늘도 뜨고 내일도 뜨는 해를 조금 유난하게 고마워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 지금 살고 있는 소우주 503호는 나의 세 번째 방인데, 1년 전 살았던 두 번째 방이 오후 한 시간 정도, 그것도 방 안이 살짝 환해지려다 말 정도로밖에 해가 들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방으로 이사 와서 자고 일어난 첫 아침을 나는 기억한다. 환한 방 안을 보며 밤이 될 때까지 전등을 안 켜도 된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실감했던 것이다!
내년에도 살아야 될 것 같은 소우주 503호는 내 책상 위에서 밤을 기다리는 소행성 B-612호 모양의 램프와 달리 직사각형처럼 생겼다. 한 쌍의 긴 변 중 한쪽 끄트머리에 있는 현관문으로 들어오면, 2분을 가리키는 분침처럼 갸우뚱하게 서 있는 육중한 신발장이 비좁은 현관을 거의 반이나 차지하고 있다. 내가 짐을 풀기 전 이 곳은 있어야 할 것은 없고, 별 필요도 없는 가구는 쓸데없이 용량이 큰, 휑한 공간이었다. 예를 들면, 기본적인 책장은 없고 현관 옆(직사각형의 짧은 변 쪽)으로 천장 높이의 붙박이장이 한 면을 다 차지하거나 화장실에 세면대도 없으면서 거울은 저기 위쪽에 붙어 있는 식이었다. 다행히 이사 올 때 스누라이프를 통해 단돈 4만원에 들여온, 낡았지만 무려 원목이기까지 한 책상-책장 세트가, 원래 이 방에 있었던 조그만 사무직원용 책상과 바퀴 달린 서랍장이 빚어내던 부조화를 걷어냈다. 위치 또한 화장실과 부엌 사이의 맞은편이자, 동생 책상과 내 침대 사이에 놓임으로써 확고부동한 이 방의 안방마님이다.
‘방 불은 어디서 켜?’ 밤에 누군가 이곳에 들어온다면, 그는 한참을 찾다가 결국 화장실과 부엌 사이 가느다란 벽에 붙어 있는 스위치로 화장실과 부엌 불만 켜게 될 것이다. 함께 사는 동생 빼고는 붙박이장과 신발장 사이 5센티미터의 틈새로 깊숙이 팔을 집어넣어야 스위치가 만져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고의적인 조치는 결코 아니었다. 공간 활용의 달인이 돼 가는 내 상상력으로도 가구들이 놓일 자리가 마치 카스트처럼 딱딱 정해져 버리고, 크고 작은 틈새를 메울 수 없는 방 구조를 보며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게다가 8월의 어느 날, 갑자기 치솟았던 생의 불안함은 괜히 현관문 열쇠로 불똥을 튀겼고, 이 건물에서 내 방과 다른 방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열쇠가 두 개씩 달려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자, 자기 전에 거는 걸쇠라도 설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걸쇠를 부드럽게 걸고 빼기 위해서 결국 신발장 왼쪽 아래에만 나뭇조각을 끼우는 불균형이 초래된 것이다.
새로운 무늬들은 살면서 하나 둘 더해지고, 그 무늬들은 소우주 503호의 공기를 조금씩 채우고 또 바꿔간다. 흰 벽지 위로 10월인데도 기운 넘치는 모기를 때려잡은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고, 한 달 전부터 덮고 자는 개어진 겨울이불 위에는 친구가 생일 선물로 준 피그렛이 기운 없이 늘어져 있다. 또 ‘아비숑 모텔’이라는 왠지 우스꽝스러운 이름의 간판이 보이는 창문으로 맞은 편 건물의 사람이 옷을 갈아입는 순간과 마주친 어느 저녁녘이나, 동생이 일찍 나간 후 모처럼 혼자 있는 시간의 고즈넉함을 만끽한 하루라면 그래도 괜찮다. 새벽 한두 시에 시도 때도 없이 경박스러운 박수를 쳐대는 옆방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혹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닐지, 그것도 아니면 애완견과 놀면서 너무도 즐거운 상태인 것인지를 몇 달 째 궁금해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집에 엄마가 없으면 집이 텅 빈 것 같다’는 모 아파트 광고 속 아이에게 ‘집은 곧 엄마다.’ 나의 경우, 이 방은 엄마는 물론 아니거니와 그 아이에게 엄마로 상징되는 것만큼 절대적이지도,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편안하지만도 않다. 오히려 언제부턴가 ‘나도 ‘방’이 아닌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 되거나, 환율은 자꾸 오르는데 나는 언제쯤 어린 왕자처럼 이 소우주를 떠나 긴긴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까를 공상하면서 조바심만 내게 된다.
하루 종일 방 안에 있는 날이면 벽이랑 대화하고 싶어진다는 친구 말처럼, 원치 않아도 히키코모리가 되는 듯한 기분을 피워내는 곳이고, 신문을 삼세번 접어 꼭꼭 집어넣는 배달원 때문에 ‘쇠로 된’ 우체통이 망가진다며 입구를 테이프로 봉해놓는 주인과 마주쳐야 하는 곳이지만, 그래도 한편으로 내가 태어난 이 낯선 도시에서 유일하게 발을 쭉 뻗을 수 있는 공간이고, 이 안에서만큼은 아무런 겉치레도 필요 없고 실력을 평가받아야 한다는 압박도 누그러지는, 자족의, 무중력한 소우주이기도 한 것이다. 바쁜 10월도 곧 다 지나가면, 대청소도 좀 하고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도 미리 막아 놓고, 이불 속에서 뒹굴거릴 수 있을 것이다. 말랑말랑한 귤의 계절이 오길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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