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뮤얼 베케트 SamuelBeck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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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새뮤얼 베케트(Samuel Beckett)
1. 작가 소개
사무엘 바클리 베케트는 1906년 4월 13일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의 남쪽 폭스록크에서 태어났다. 경제적 어려움이 없던 그는 아일랜드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의 작품은 1930년부터 80년대 초까지 걸쳐 출판되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작품은 2차 세계 대전 후에 쓰여 졌다. 그는 영어권 작가이면서 작품의 절반은 영어로 절반은 프랑스어로 썼다. Trinity대학에서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하여 학위를 취득하는데, 이 때, 단테를 처음 접하게 되고 연극과 영화의 세계, 특히 익살스런 미국 영화를 접하게 된다. 그리고 예술가와 문학가들의 모임에 자주 드나들게 된다. 1928년 파리로 건너가 고등사범학교에 영어교사로 2년간 근무하고, 여기서 아일랜드의 위대한 소설가인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를 알게 된다. 제임스 조이스는 베케트의 평생 스승이요, 우상이다. 그에게서 문체, 글 쓰는 태도, 말투, 몸가짐 등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 중에서 괄목할 만한 것은 침묵이었다. 침묵은 베케트의 극작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1930년 아일랜드로 돌아온 작가는 그 다음 해에 교사직을 사임하고, 집필에 몰두한다. 작가는 이 기간 동안 시, 수필, 단편 소설, 첫 장편 소설인 「머피 (Murphy,1983)」를 출간하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베케트의 삶은 마지막 파리에 정착할 때까지 아일랜드, 런던, 파리를 오가며, 마치 떠돌이와 같은 생활을 했다. 이 기간 동안 작가는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 어려움을 겪는다. 2차 대전이 일어난 후 아일랜드에 머물고 있던 작가는 프랑스가 독일에 패배한 후, 스스로 프랑스로 건너가 레지스탕스 조직에 뛰어든다. 1942년 동지들이 독일군에게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겨우 피신한 작가는 미점령 지역인 보끌뤼즈(Vaucluse)에서 농부로 변장하여 생활 하면서, 영어로 된 마지막 소설을 쓴다. 전쟁 후 1946년과 1948년 사이, 작가가 파리에 머문 시간은 빈곤한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가장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시기이다. 이때 작가는 세 편의 소설과 두 편의 희곡을 집필하는데 이 중 한 편이 바로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1953년 바빌론(Babylon)극장에서 상연된 「고도를 기다리며」작품은 충격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1969년 베케트는 노벨 문학상을 수여 받고, 그 후 이따금 짧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긴 하지만 거의 은퇴한 삶을 누리다 1989년에 숨을 거둔다. 「고도를 기다리며」,「승부의 종말」,「아름다운 나날들」,「코미디(Comedie)」,「쓰러지는 모든 사람들(Tous ceux qui tombent)」과 같은 희곡 작품이 작가의 주요 작품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다면, 「머피」,「몰로」,「마론은 죽다」,「천한 것(Linnommable)」,「왜 이것이」와 같은 소설 또한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다.
2. 문화적, 시대적 배경
문화적- 세계 문단은 실존주의를 표방하는 싸르트르(Sartre)와 까뮈(Camus), 공산주의자인 아라공(Aragon)과 엘뤼아르(Eluard), 드골주의자인 모리악(Mauriac)과 말로(Malraux) 등과 같은 문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연극을 위한 사회여건이 많이 개선되어 연극이 새롭게 태동하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연출가를 위한 국가장려금을 지급하고, 파리와 지방에서는 소극장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리고 1947년 아비뇽(Avignon)에서 열린 제1회 연극 축제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몽떼를랑(Montherlant)과 아누이(Anouilh)는 대전 후 프랑스 연극계의 두 거장으로 인정받고, 까뮈와 싸르트르는 자신들의 철학을 연극을 통해 표방하기도 하였다. 몽떼를랑과 아누이는 전통적인 연극 양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카뮈와 싸르트르는 부조리라는 철학적인 주제를 기존의 연극 양식을 빌어 표현할 뿐,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기 위한 탐구는 없었다. 2차 대전 이전까지 전통에 뿌리를 둔 연극은 인간의 심리적 묘사, 현실세계와 유사성, 이야기 전개의 일관성, 행동과 언어의 일치를 중요시해왔다. 대전 후 연극에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기존의 연극 체계를 반박하였다. 이 새로운 연극 혹은 부조리 연극이라고 불리는 이 움직임이 일어났다.
시대적- 베케트가「고도를 기다리며」를 구상하던 시기는 세계 제2차 대전이 막 끝나고 2~3년밖에 되지 않은 혼란기였다. 미국과 소련,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국을 중심으로 세계 질서는 재편되고 있었으나, 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와 후유증은 상상을 초월했다. 1차 대전에 이어 2차 대전을 차례로 겪은 유럽은 미증유의 대참화, 바로 그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전쟁을 종식시키는 역할은 했지만,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가공할 파괴력은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전쟁에 버금가는 핵무기의 등장과, 미&소간의 이념적 대립이 낳은 냉전체제 구축은 지식인들의 우려를 자아냈다. 전쟁이 끝났다고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전쟁은 결코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인간은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고, 혼란만 존재할 따름이다" 전쟁을 겪으면서 인간성 상실을 몸으로 직접 체험한 베케트의 탄식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군홧발에 짓밟히고 생존을 위한 동물적인 몸부림은 부조리 그 자체인 것이다.
이러한 베케트의 인식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도 고발이나 풍자 형식으로 나타난다. 등장인물들이 세상을 향해서 뱉듯 침을 뱉는 짓거리, 럭키를 짐승 다루듯 무자비하게 학대하는 포조의 포악성에서도 시대적 배경을 엿볼 수 있다.
3. 베케트의 작품세계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베케트의 작품이 쓰레기통을 뒤지며 사는 뜨내기나 절름발이 등 인간 존재의 추한 면을 집중적으로 다룬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근본적인 오해이다. 베케트는 한계상황에 처한 인간을 다루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삶의 더럽고 병적인 측면에 관심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인간 경험의 본질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의 문학에서 그토록 많이 다루어지는 주제들, 즉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 그들의 태도와 재산, 신분과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투쟁, 성적 대상들을 정복하는 것 등의 존재의 단순한 겉치레를 인간 조건의 기본적인 문제들과 근본적인 고뇌를 가려버리는 우연적이고 피상적인 측면들로 보았다. 그의 관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들은 스스로 요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내던져진, 즉 존재하게 된 사실을 어떻게 용납할 수 있으며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 자신의 참된 본성은 무엇인지, 그리고 한 인간이 나라고 말할 때 그것은 무슨 의미인가 하는 것들이다.
피상적인 눈으로 볼 때 베케트가 비참한 면에 그냥 집중하는 것으로만 보이지만 이 집중은 사실 인간 조건의 매우 본질적인 면을 붙잡기 위한 시도인 것이다.
베케트는 인간의 주체성, 그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인간 자신의 주체성이 무엇인가 하는 자아의 본질을 탐구하기보다는 연극을 보는 관객들에게 주변에 이상하고 불확실한 조건들이 실제하고 있음을 직면하게 된다. 작가는 단지 문제를 제기할 뿐,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4. ‘고도’란 무엇인가..
여기에서 “고도”라는 존재는 구체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막연한 희망이다. 희망의 의미는 그저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대단한 것일 필요가 없다. 그 희망이 이루어진 이후, 즉 고도가 온 후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고도가 오면, 아마도 또 다른 고도가 필요할 것이다. 고도는 어쩌면 인류를 존속시켜 온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고도는 신이고, 미래고, 천국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겐 그것은 자유였고, 해방이며, 고통의 끝이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것은 권력이나 부 또는 명예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고도에 대한 기다림은 계속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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