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촌民村이기영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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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민촌(民村) 이기영론
1. 생애 및 작품 활동
이기영은 1895년 충남 아산군 배방면 화룡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1892년 무과에 급제하면서부터 서울에 머물며 가계를 돌보지 않아 가난한 살림은 더욱 몰락해갔다. 그의 집안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천안군 북원면 중엄리로 이사를 하게 되는데, 그곳은 상민들이 모여 사는 민촌이었다. 그의 일가는 마름 노릇을 하며 얼마간 소작도 했으나 생활은 점점 어려워져 갔다. 게다가 11살 되던 해에 장티푸스로 어머니를 여의게 되는데, 그는 이 사실을 ‘마치 광명한 천지가 암흑으로 변한 것 같았다’라고 표현할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그 후 마음 붙일 곳이 없어 고대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1906년에는 낙향한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설립한 사립 영진학교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배우며 신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할머니의 회갑을 앞두고 13세 때 조병기와 결혼하게 되는데, 자신의 의사가 개입될 여지가 조금도 없었던 조혼이 그에게는 속박이 되고 만다. 14세 때에는 더욱 나빠진 집안 사정으로 학교를 중퇴하였다가 가정교사 자격으로 숙식을 제공받으며 소학교를 졸업하였다. 1912년 소학교 친구와 일본으로 건너갈 궁리를 하다가 실패하고, 1914년 다시 집을 뛰쳐나가 수년간 남쪽 지방을 방랑하였다. 1918년에는 귀향하여 마을에 기독교가 들어오자 열렬한 신자가 되어 권사직을 맡게 되고 기독교 계통의 논산영화여학교에서 교원 생활을 했다.
한편 31운동 이후 동아조선일보가 발간되자 그는 신문지상에 발표된 글들을 통해 문학에 접근하게 된다. 그리하여 문학 공부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일본으로 건너가는데 동행한 친구와 고학을 해가며 일본 정칙영어학교를 다닌다. 같이 간 친구가 얻어준 사회주의 서적을 탐독하면서 서서히 계급의식에 눈을 뜨게 되는 동시에 고리끼의 작품을 탐독하게 되었다. 일본에서 관동 대지진이 터져 간신히 귀국한 그는 문학의 길로 들어선 그는 가족들의 취직 권고를 뿌리치고 장편 「암흑」을 써서 서울로 올라간다. 그러나 퇴짜를 맞고, 서울서 십여 일을 지내는 동안 《개벽》의 현상 공모를 우연히 발견하고 「옵바의 비밀편지」라는 글을 투고하여 3등으로 당선된다. 그 후 조명희의 알선으로 《조선지광》에 취직하고 문학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한편으로는 카프에 가맹하게 되었다 그는 이때 “나는 카프에 가맹하는데 조금도 사상적 주저를 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무산자에 속했던 계급적 의식이 나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도록 하였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 이로써 그의 방랑생활은 일단 종결되고 왕성한 창작활동이 시작된다.
1927년 카프의 1차 방향 전환 이전에는 주로 그의 젊은 시절 체험한 빈궁을 소재로 한 작품을 썼으며, 카프가 ‘예술의 볼셰비키화’를 위한 재조직을 하자 그 안에서 출판부의 책임을 맡아보았다. 1931년 일제의 카프에 대한 검거로 구속되었다가 이듬해 초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카프 1차 검거 때 옥중에서 구상한 「서화」와 장편 「고향」을 발표하고, 문학예술로서의 사상성을 부정하는 김동인, 이광수 등과 맹렬한 이론 투쟁을 전개하였다. 1934년 카프에 대한 2차 검거로 구속되어 감옥생활을 하고 집행유예로 풀려나고부터는 농민소설로부터 벗어나 간간이 도시생활에서의 궁핍상을 묘사하고, 1938년 후에는 위장 전향을 하게 되고, 1940년 이후에는 주된 대상이 농촌에서 벗어난 빈민들의 생활난, 가족사 이야기, 인간적인 몰락의 묘사에 치중하였다. 1944년에는 강원도 내금강 병이무지리로 이주하여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해방을 맞이하였다. 해방과 함께 카프의 주도적 역할을 하다가 ‘북조선 문화예술총동맹건설’에 참여하였고, 1946년에는 북한 문학상 최초의 장편소설 「땅」을 발표하였다. 해방 후 북한에서도 왕성한 창작활동으로 ‘인민상’을 수상하는 등 북한에서는 최대,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다가 1984년 사망하였다.
2. 작품 세계의 특징 및 한계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기적 체험과 새롭게 접한 사상, 그가 가담한 카프라는 단체의 방향전환 등은 이기영의 작가 의식을 지배한 창작동력이 되었다. 이 당시 카프에 가담한 작가들은 대부분 카프의 방향전환에 따라 변모를 보이지만, 특히 이기영은 민감하게 대처해 나간다. 즉 그의 문학의 변모양상은 프로문학의 전개양상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1) 가난 체험과 자전적 소설
이기영의 작품 활동은 1924년 잡지 《개벽》의 현상문예에 입선한 소설 「오빠의 비밀 편지」에서부터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가적 태도와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1925)에서부터이다. 이는 카프에 가맹하기 직전에 쓴 작품으로, 신경향파 계열 작품들의 영향으로 자신의 궁핍한 생활을 자전적으로 묘사하였다.
이 작품은 이기영의 문학 세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두 가지의 중요한 모티프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우선 식민지 지배하에서 빈궁을 모면하지 못하고 있는 농민들의 고통과 절망적인 삶에 사실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작가 의식을 들 수 있다. 가난한 농민들의 삶은 이기영의 문학적 주제를 형성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서, 거의 모든 작품에 걸쳐 반복적으로 문제시되고 있는 영역이다. 이 작품의 경우에는 관동지진으로 일본 유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고향에 돌아온 지식인 청년 성호가 등장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취직이 되지 않아, 소작 농사로 연명하는 아우의 집에 얹혀 살게 된다.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곤궁을 직접 겪으면서도 아무런 방책을 세우지 못하는 절망의 삶이 계속된다. 또 하나의 특징은 봉건적 인습에 대한 저항과 비판이다. 가난 속에서도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농민들의 체념적인 삶의 태도는 각성된 지식인에 의해 거부된다. 그리고 삶의 고통과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계급의식의 자각과 그 투쟁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이 세상은 악마가 사는 세상이다. 그래 살라면 악마가 되어라! 저 살라고 남을 못살게 구는 놈들의 악마 이상의 악마를 쳐죽여라! 그렇다! 죽여라! 죽여라! 아귀가 아귀를 죽여라!”고 외치며 강한 복수심을 표출하는 것은 신경향파문학의 마지막 장면과 유사하다.
2) 농민 소설의 의식화 과정
1927년 카프의 1차 방향전환 이전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는 「민촌」(1925), 「농부 정도룡」(1926) 등을 들 수 있다. 초기 신경향파의 작품이 철저한 빈궁과 결말 부분에서의 방화살인강도 등의 도식화가 보이는데 비하여, 이 시기의 작품들은 주로 비참한 하층 생활에서 견디고 있는 피압박자들을 묘사하여 사회에 대한 자연발생적인 반항과 계급의식을 주제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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