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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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율곡전서
영웅설화를 방불케 하는 일대기나 생소한 용어로 가득한 그의 사상에 대한 설명 때문인지 이번에 읽은 율곡전서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찾기가 힘들었다. 다만 그의 정치사상을 엿볼 수 있는 부분만을 간추려 보기로 하였다.
율곡의 정치사상의 근본은 전형적인 유가의 이상정치인 군주의 수기를 바탕으로 한 도덕정치의 실현이다. 특히 그는 그것이 말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실현되도록 하기 위한 구체적인 폐단의 개혁을 역설하였다. 이것이 그의 무실론과 경장론이다.
율곡은 당시 성숙된 사림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사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국정을 쇄신하려던 조선중기의 대표적 경세가이다. 그래서 사림들이 정계에 진출해서 그 뜻을 펼 수 있도록 군주가 허심종선하여 현자를 신임하고 등용할 수 있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물론 이것은 율곡만의 주장은 아니며 ‘서경’등에서부터 제왕의 대법으로 강조되었던 것이다.
군주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부모의 마음으로 자식의 어려움을 보살펴 주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며 백성의 부모된 마음으로 백성들의 고역을 덜어주고 백성들의 생업을 후하게 해주며 백성들의 먹을 것을 넉넉하게 해주어 그 본연의 선심을 보존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곡이 군주가 수기를 통해서 허심종선해야함을 강조하는 궁극목적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불합리와 모순, 부조리, 고통 등을 해소함으로서 안민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수기가 치인의 근본이 된다.
허심종선이란 함께 폐단을 개혁할 수 있는 인재를 등용하기 위한 바탕일 뿐이다. 그러므로 폐단의 개혁이 없는 이상정치란 있을 수 없다. 율곡에 따르면 성인의 정치는 백성의 괴로움을 풀어주고 백성을 자식처럼 보살필 수 있는데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정치에 있어 수기가 근본이 되어야 함은 불변의 진리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구체적인 업적으로 드러나 백성에게 실제적인 이익을 주기 위해서는 그 때에 가장 절실하고 적합한 것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또 경장에 앞서 시의가 요청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이렇게 안민을 위한 실제적인 치효의 중시가 무실로 표현되는 그의 사상의 특징이다. 다시 말하면 민생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율곡 경세설의 궁극적인 입장이므로 정치는 말이나 이론에 그쳐서는 안 되며, 민생을 개선하는 실공을 동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효를 얻기 위해 실공에 힘써야 한다는 그의 무실사상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이 무실이란 구체적인 경장의 원동력이 된다.
그런데 유가의 정치관의 기본적인 특성은 부와 교의 병행을 강조하는 데 있다. 이상적인 정치는 물론 통치계층의 도덕적인 자각으로부터 비롯되지만 이는 또한 모든 백성들의 도덕적인 각성에서 비로소 완결되는 것이다. 정치가 단순히 부국강병에서 그친다면 이는 올바른 정치라고 볼 수 없으며 마땅히 사람마다 인간적인 완성을 이룬 단계까지 도달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유가 정치사상의 특징인 동시에 율곡 정치사상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륜을 근본으로 한 의리의 실현을 위한 교육이 경세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도달하게 될 이상사회의 모습은 기본적으로 공자가 말한 대동사회이다.
그런데 이런 삼대의 이상에 도달할 수 있는 직접적인 방법이 곧 경장과 개혁이라는 구체적인 정책의 실천에 있다고 보는 것이 율곡 경세설의 큰 특징이다. 즉 율곡이 주장하는 경장이란 유가적인 이상사회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이고도 점진적인 방법인 것이다. 특히 이런 이상을 실현하는 주체가 왕이므로 왕의 마음가짐 여하에 따라 이것이 좌우된다는 생각은 당시의 체제에 대한 긍정 위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근원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려던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또 성리학적 경세가로서의 율곡이 갖는 특징이기도 하다.
왕의 올바른 마음가짐이란 왕이 독단으로 정사를 처리하려는 게 아니라 도덕과 의리를 갖춘 선비를 등용하여 그로 하여금 폐단을 개혁하고 교화를 베풀게 하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율곡이 생각하는 이상사회란 성군과 현상이 뜻을 합하여 실제로 인정을 펴나감으로써 도달될 수 있는 것이다. 성군과 현상이 힘을 합쳐야만이 이상적인 정치현실이 가능해진다는 생각 때문에 율곡을 비롯한 유학자들은 제갈공명과 유비의 관계를 이상적인 군신관계로 많이 거론하였다. 이런 입장을 율곡은 그의 ‘동호문답’에서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다.
이처럼 도덕과 의리를 갖춘 올바른 인재를 등용할 수 있고 또 등용이후엔 신임하여 정사를맏길 수 있기 위해 군주의 수기가 먼저 요청된다. 왜냐하면 사심이 극복되지 않고서는 허심종선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곡에 따르면 애초에 군주는 성인이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왕위계승은 성인에서 성인으로 이어지는 선양이 원칙이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므로 왕은 아래에 있는 현자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왕의 수기에 허심종선을 근본으로 여기는 까닭이다.
또한 율곡은 실제성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현실적으로 왕은 만백성 위에 군림하여 실제적으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세력을 가진 존재’라는 점을 중시하였다. 그러므로 왕이 뜻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치란이 나누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수기가 빈말에 그칠 수 없고 반드시 허심종선의 실효가 있어야 하는 까닭이며 허심종선하기 위한 근본은 바로 기질을 바로 잡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군주의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고, 시의를 올바르게 파악하며 인재들을 빠짐없이 등용하여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 등은 모두 실제적으로 보민, 안민의 정치를 펴나가기 위한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율곡의 정치사상의 대개는 보민안민의 정치관을 바탕으로 하여 그러한 이상의 실현방법으로서 폐단을 개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장설은 율곡 경세사상의 특징인 동시에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
상세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내 것으로 받아들임에 있어 흡족함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앞서 언급한대로 한자에 대한 이해와 주변지식의 부족함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스스로가 이런 뉘우침에 머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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