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安昌浩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6.04.16 / 2016.04.16
  • 4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8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본문내용
안창호(安昌浩; 1878.11.9~1938.3.10)
1. 생애와 활동
호는 도산(島山)으로 평안남도 강서(江西)에서 출생했다. 한학을 배우다가 서당 선배로부터 신식학문에 눈을 뜨고, 조국의 앞날을 염려하던 중 청일전쟁(淸日戰爭)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보고 깨달은 바 있어 1895년 상경, 구세학당(救世學堂)에 들어가 그리스도교도가 되었다.
1897년 독립협회(獨立協會)에 가입하고 평양에 지부를 설치하기 위한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를 쾌재정(快哉亭)에서 개최하여 약관의 몸으로 많은 청중에게 감동을 안겨준 연설을 하였다.훗날 종교가이며 교육자로서 민족의 지도자가 된 이승훈(李昇薰)은 이 연설에 감명을 받고 독립운동의 의지를 굳혔다고 술회할 정도였다.
1899년 고향 강서에 한국 최초로 남녀공학의 점진학교(漸進學校)를 세우는 한편 황무지 개척사업을 벌였고, 앞으로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학문을 더욱 받아들일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고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노동을 하면서 초등과정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 이듬해에는 교포들의 권익보호와 생활향상을 위해 한인공동협회(韓人共同協會)를 만들어 《공립신보(共立新報)》를 발간하였다.
그 후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1906년 귀국, 1907년 이갑(李甲)·양기탁(梁起鐸)·신채호(申采浩) 등과 함께 항일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를 조직,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新報)》를 기관지로 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다. 대구에 태극서관(太極書館)을 세워 출판사업을 벌이고 평양에 도자기회사를 설립하여 민족산업육성에 힘쓰는 한편 평양에 대성학교(大成學校)를 설립하고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를 조직하여 민족의 지도자 양성에 힘쓰는 등 다방면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에는 신민회 간부들과 함께 개성헌병대에서 3개월간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는데 이는 1909년에 있었던 안중근(安重根)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암살사건에 관련되었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그 후 시베리아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 1912년 그 곳에서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중앙총회를 조직하여 초대 총회장에 취임하고, 기관지 《신한민보(新韓民報)》를 창간하였다.
‘105인사건’으로 신민회·청년학우회가 해체되자 1913년 흥사단(興士團)을 조직하였다. 3·1운동 직후 상하이[上海]로 가서 임시정부 조직에 참가하여 내무총장·국무총리대리·노동총장 등을 역임하며 《독립신문(獨立新聞)》을 창간하였다. 1921년 임시정부가 내부분열을 일으키자 이를 수습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1923년 상하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1924년 미국으로 건너가 흥사단 조직을 강화하였다.
1926년 다시 상하이로 가서 흩어진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위해 진력하였으며 독립운동기지를 마련하기 위하여 이상촌(理想村) 건설에 뜻을 두고 이를 추진하였으나 일제가 중국침략을 본격화하면서 실패하고, 1932년 윤봉길(尹奉吉)의 훙커우공원[虹口公園] 폭탄사건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2년 6개월을 복역한 뒤 가출옥하여 휴양 중 동우회(同友會)사건으로 재투옥되고, 1938년 병으로 보석되어 휴양 중 사망하였다.
그의 기본사상은 《민족개조론(民族改造論)》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자주독립을 이룩하려면 넓은 의미의 교육, 즉 국민운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 무실역행(務實力行)을 근간으로 하는 그의 흥사단 정신은 오늘날에도 민중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2.도산 사상의 구조
1)자력주의
내가 이에 간절히 원하는 바는 이것이외다. 여러분은 힘을 기르소서 힘을 기르소서.. 참배나무에는 참배가 열리고 돌배나무에는 돌배가 열리는 것처럼 독립할 자격이 잇는 민족에게는 독립국의 열매가 있고 노예될 만한 자격이 있는 민족에게는 망국의 열매가 있습니다. 독립할 만한 자격이라는 것은 곧 힘의 열매입니다. 힘이 작으면 성공이 작고,힘이 크면 성공이 크고, 힘이 없으면 죽고 힘이 있으면 사는 것이 하늘이 정한 원리요, 원칙이외다,... 그런고로 千客萬來(천객만래) (썩 많은 손님이 번갈아 찾아옴) 하여 보아도 우리의 독립을 위하여 믿고 바랄 바는 오직 우리의 힘뿐이외다.
참고문헌
5.참고자료
1.현대 한국교육사상사(김선양, 양서원)
2.안창호 평전 (안병욱)
3.한국사상사(문음사)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한국문학의 이해 - 문인답사 보고서 - 이광수 선생의 생가 답사보고서
  • 안창호(安昌浩)가 미국으로부터 귀국하는 중 동경에 들러 행한 애국연설을 듣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 메이지학원의 분위기에 따라 청교도적 생활을 흠모하게 되고 서양선교사들의 성경시간에서 익힌 기독교생활을 하기로 결심하기도 하였다. 홍명희(洪命熹) 문일평(文一平) 등과 공부하며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하고 회람지 《소년》을 발행하면서 시 소설 문학론, 논설 등을 쓰기 시작하였다.1909년 11월 7일에 〈노예(奴隸)〉, 18일에 일문 〈사

  • [도산안창호, 도산, 안창호] 도산 안창호의 역사적 의의, 도산 안창호의 생애, 도산 안창호의 4대정신, 도산 안창호의 교육사상 심층 분석
  • 안창호의 생애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는 1878년 평남 강서군 초리면의 대동강 하구 동롱섬에서 농사를 짓던 안교진(安敎晋)의 3남으로 출생하였으며, 그후 평양 대동면 국수당과 남천면 노남리 등으로 옮겨 15세까지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목동생활을 하는 등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17세 되던 해인 1894년에는 상경하여 경신학교(敬新學校)의 전신인 구세학당(救世學堂,일명 언더우드학당)에 입학하여 공부하는 한편 예수교장로회에 입교하였다.

  • (교육사 4학년) 교육사 교재에 소개된 우리나라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교육사상가 및 실천가 중 1명을 선정하여 생애와 교육사상의 특징을 설명하시오.
  • 안창호의 교육사상 배경3. 도산 안창호의 교육활동1) 학교 교육 운동2) 사회 교육 운동3) 시민 양성교육 운동4) 국가 부흥교육 운동4. 도산 안창호의 교육사상 특징1) 지속적인 학습과 실천 교육2) 건강, 체력, 보건의 중요성3) 평생교육4) 근대적인시민의 양성5) 건전인격체5. 나의 의견Ⅲ. 결론참고문헌Ⅰ. 서론도산(島山)안창호(安昌浩, 1878-1938)는 우리 민족이 독립을 쟁취하고 번영하는 길은 건전한 국민 교육에 있음을 지적하고, 지식 위주의

  • [논문요약][한국근대사] 안창호의 생애와 대공주의
  • 안창호의 생애와 대공주의, 손동유目 次Ⅰ. 머리말 Ⅱ. 安昌浩의 生涯1.출생과 미국생활2.국내활동(1907∼1910)3.망명후의 활동Ⅲ. 安昌浩思想의 形成過程1.새로운 문화에 대한 관심2.기독교 입교와 실력양성론3.평등의식과 민족의식의 양성4.민족통일 전선운동 Ⅳ. 大公主義1.大公主義의 내용 2.民族主義 運動史上의 大公主義Ⅰ. 머리말 一齊下 抗日民族運動의 이념은 크게 民族主義와 社會主義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중 민족주의는 19세기 말

  • 신민회
  • -신민회(新民會)-제 목 | 신민회 내 용 | 신민회 기관지 《소년》창간호, 1908년 11월 1907년 서울에서 조직된 비밀결사. 전국적인 규모로서 국권을 회복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1907년 4월 안창호(安昌浩)의 발기로 양기탁(梁起鐸)전덕기(全德基)이동휘(李東輝)이동녕(李東寧)이갑(李甲)유동열(柳東說)안창호 등 7인이 창건위원이 되고, 노백린(盧伯麟)이승훈(李昇薰)안태국(安泰國)최광옥(崔光玉)이시영(李始榮)이회영(李會榮)이상재(李商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