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치아노 베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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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 루치아노 베리오(L.Berio, 1925~2003)
루치아노 베리오는 이태리 북부 리구리안 연안의 작은 마을 오넬리아의 오랜 음악적 전통을 지닌 가문에서 태어났다. 베르디의 예탄자이면서 바그너의 음악을 경시하던 조부 아돌포와 베리오에게 화성학, 대위법, 피아노 등을 가르친 부친 어네스토는 오르가니스트 겸 작곡가로써 베리오의 작곡 성향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다.
베리오는 내면적인 체험이나 생각을 항상 어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어휘 즉, 글이나 음악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게 된 것은 오넬리아의 시골 생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릴케의 시를 토대로 문학과 음악을 직접적으로 접목 시켜 12세의 나이에 <목가>라는 곡을 창작했다. 이 곡은 실내악으로써 베리오가 9세 때 실내악 연주를 즐겨 공연하면서 독특한 경험을 쌓아 새로이 창작곡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것을 토대로 그는 밀라노 음악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 곳에서 그는 쇤베르크의 음악을 듣고 자신이 추구한 전통화성을 크게 확장하여 작곡기법적 어휘를 더욱 발전 시켰다. 이외에도 파리베니에게서 대위법을 배우고 게디니에게서는 색체가 뚜렷한 관현악법을 토대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곡법을 창조해 낸다.
이렇게 꾸준한 노력을 한 베리오가 터득하여 작곡에 사용한 특성들을 1971년 전후로 나뉘어 보자. 먼저 1971년 이전에는 그가 사용한 작곡 기법을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캐논적 방식의 음렬 기법과, 인성에 관한 음성학적 전자음악적 접근 그리고 부연기법이다.
첫째로 케논적 방식의 음렬기법은 달라피콜라에게서 터득했는데 단지 음악적 측면뿐만이 아닌 넓은 의미에서의 정신적, 도덕적, 문화적 척도를 제시 받아 <두개의 소품>, <다섯 개의 변주곡>, <실내악>, <변주곡>등의 작품을 내 놓는다.
둘째로 베리오는 움베르토 에코와의 만남을 통해 음성학적으로 더욱 구체화시킨 인성에 대한 실험을 1957년에 시도 하였다. 그는 이 실험으로 인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방송 목적이 아닌 순수 전자음악작품을 만들기로 계획하여 <테마>라는 작품을 만들어 낸다. 이 작품은 인성과 악기 사운드를 다르게 구분하지 않고 동일시하는 원리로 이루어 졌다. 이 작품과 같이 베리오를 먼 훗날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번져가는 작곡가 베리오로 명성을 다지는 기초가 되게 만들어준 <시퀀차>라는 작품도 같이 이 기법으로 인해 등장한다. 이 <시퀀차>는 시리즈 별로 나뉘어 작곡 되어지는데 이 곡들은 시리즈 마다 화성, 리듬, 텍스처, 음색 등의 기교면에서 서로 다르고 여러 가지 면에서 실험적인 요소들을 영입해 만들어진 곡들이다.
셋째로 부연기법이 대표적으로 사용 된 작품은 <신포니아>로 꼽을 수 있는데 이 곡은 청중들에게 친근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은 그의 탄탄한 조성적 감각과 원리에 근거한 또 다른 작곡기법에 있다고 본다.
1971년 이후의 베리오는 전자음악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하게 되는데 그는 기존의 시스템을 통해 자신의 새 전자 음악 작품을 시작하기 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주력하였다. 그는 쥬세페 디 쥐뇨가 개발해 낸 4X 디지털 시스템으로 인해 연주자와 전자적 장치 사이에서의 섬세한 상호 작용이 가능했고 여러 가지 불가능했던 기능들을 가능케 했다.
이 시스템과 더블어 민속음악에 관한 그의 관심은 시칠리에서의 자료 수집과 연구를 바탕으로 더욱 본격화 되었다. 그는 <이것의 의미는>에서 서유럽 민요의 비음창법에 의한 다양한 예들이 녹음 된 테입과 이태리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브리타니 등의 민요로부터 악구들을 노래하는 성악 앙상블을 통해, 다양한 나라의 민요를 직접적으로 재료로써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는 대중적인 음악극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그에 따른 곡도 창출 했다. 그가 대규모 음악극이나 오페라 작곡에 치중하게 되는 현상은 유년기로 부터의 그의 환경과 작곡가로서 나타난 성향이었던 것 같다.
베리오는 50,60년대를 통해 빠르게 변모하는 현대 음악계의 양상 속에 나타난 어법적 변화를 자신의 고유성 속으로 흡수하였고, 흡수된 음악어법들을 기초로 하여 현재 음악극을 통해 다양한 요소들의 예술적 통합을 시도하고 있었다고 한다.
2. 루치아노 베리오의 주요 작품
1) 1971년 이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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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페라의 이해] 오페라의 이해
  • 루치아노 베리오(1925~),『르 그랑 마카브』의 리게티, 『라신느』의 부솟티(1931~),깊은 신비주의와 동양 음악, 프랑스적 전통을 절묘하게 혼합한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4), 음향 음악으로 주목받은 『루동의 악마』의 펜데르츠키(1933~) 등을 꼽을 수 있다. 1980년대에 유행했던 미니멀리즘 음악의 선두에 선 필립글래스는 『해변의 아인시타인』, 영화와 오페라를 결합한 『미녀와 야수』 등을작곡하였으며 독일의 볼프강 림(1952~)이 새로운 경향을 선보인

  • [공연이론] 통영국제음악제
  • 루치아노 베리오를 추모하며” 등 통영과 서울에 걸쳐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였다. 2004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선보인 “카겔 프로젝트”(통영/호암아트홀)를 비롯하여, “피아니스트 장형준과 TIMF 앙상블 협주곡의 밤”(금호아트홀), “달에 홀린 피에로”(호암아트홀/두물 워크샵)등 다양한 레퍼토리의 현대음악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특히 “피아니스트 장형준과 TIMF앙상블 협주곡의 밤” 에서 연주하였던 이강율의 “Rainy Day”가 2004년 문예진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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