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윤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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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윤리설
성 아우구스티누스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에서 신플라톤주의자들의 저술을 처음 접하였으며 신플라톤주의자들의 영향으로 그는 더욱 적극적으로 우리의 삶과 세계가 비물질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는 실재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신플라톤주의자들의 저술은 그로 하여금 내적인 것에, 즉 자신의 영혼과 손으로 만져서 확인할 수 없는 내면의 존재 그리고 정신적인 영역의 실재성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만들었다.
후에 밀라노에서 교수 생활을 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위대한 가톨릭 주교였던 암브로시우스의 저술을 접하게 되었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로부터 지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의 유명한 기독교에로의 개종이 이루어진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그는 어떤 의지나 지성의 노력도 자신을 죄악에서 구원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고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 오직 신의 은총의 능력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그는 신의 은총을 통해서 모든 주의를 전적으로 신에게로 돌리고 세속적인 욕망이나 야망을 버릴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그는 놀랄 만큼 많은 분량의 뛰어난 저술들을 하였으며 따라서 막대한 분량의 저서와 소논문들이 오늘날까지도 전해진다. 그리고 이들은 초기 기독교 문학 및 사상의 핵심적인 저술들로 평가된다. 유명한 <고백>과 더불어 그의 <신국론> 또한 서양 문명의 고전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우리의 최고선
우리는 그의 윤리학이 고대 그리스 철학의 이론과 함께 시작됨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아구스티누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이 행복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그의 언급에서 중심이 되는 용어는 사랑이라는 것인데 이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매우 일반적으로 모든 형태의 욕구나 열망을 포괄적으로 지칭하기 위해서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완벽하게 선한 것”을 소유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또한 우리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분명히 완벽하게 선한 것 중에 우리가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일을 피할 수 있어서 완벽하게 선한 것은 곧 인간의 최고선을 지칭하나. 그러므로 행복은 “인간의 최고선이 되는 것을 사랑하고 또 그것을 소유하는데서” 성립한다.
그렇다면 다시 이 최고선은 무엇인가?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소유하고 사랑하여야만 하는 이 완전성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의 기본적인 실재의 개념이 구체화된 것으로서의 세계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는 인간은 물리적 세계의 물질성도 지니고 있는 동시에 더욱 상위의 영역인 정신적 요소도 지니고 있다. 물질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수많은 물리적인 것들을 필요로 하며 욕구하는데 이때 욕구의 대상은 그 자체가 물질적인 것이다. 이 때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들은 신의 실재성에 더욱 가까운 정신적인 것들보다는 분명히 열등하다. 그러나 영혼을 지닌 존재로서의 인간은 더욱 상위에 있는 정신적인 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더 나아가 완전한 존재인 신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지니고 있다.
사랑의 질서
그에 따르면 신은 완전한 존재인 반면에 물질적 세계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인간은 사라져버리는 육체를 소유하고 있는 중간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또는 신학적인 개념은 아우구스티누스로 하여금 사랑의 종류를 구별하는 것이 가능하게 해준다. 신을 사랑하는 것이 사라질지도 모를 물리적 대상이나 육체를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이성적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실재의 계층적인 구조는 자신 안에 서로 다른 수준의 실재를 소유하고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개념과 더불어서 “인간의 최고선”을 정의하는 단계를 구성하게 된다.
어떤 것의 최고선은 그 자체보다 우월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만일 그러한 어떤 것이 존재한다면 생각을 근거로 하여 아우구스티누스는 육체의 최고선은 쾌락, 아름다움 등의 육체적 상태가 아니라 그보다 높은 실재성을 지닌 어떤 것, 즉 영혼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그가 의미한 바는 육체의 최선의 상태는 영혼의 의해서 지배받는 상태라는 점이다. 따라서 영혼이 더욱 큰 덕을 갖추면 갖출수록 육체도 더욱 나은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영혼의 최고선은 무엇인가? 영혼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추구하여야 하는가?
우리가 신을 사랑할 때 우리는 우리보다 우월한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의 가장 위대한 선은 바로 신이다. 우리는 신을 사랑함으로써 신에 도달하게 되고 결국 행복에 이르게 된다. “잘 산다는 것은 오직 온 마음과 온 영혼, 온 정신을 다하여 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주 이러한 주장을 지복이라는 성서적인 개념을 도입하여 표현한다. 지복은 행복을 느끼는 상태이며, 더욱 상세히 말한다면 덕이 있는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상태이다. 이러한 지복 또는 행복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용했던 것과 같은 이론적인 관조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사랑하는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며 한 개인의 지적이고 감정적인 필요와 욕구가 완전히 충족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항상 명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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