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업적 조선 의자 동물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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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물시계는 해시계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시계로 알려져 있다. 물시계는 용기 밑바닥에 구멍을 뚫어 그곳을 통해 나가거나 들어오는 물의 양으로 시간을 측정한다. 이런 특징을 가진 측정방식 덕분에 해가 뜨지 않는 흐린 날이나 밤중에도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밤중의 시간을 알려주는 공식적인 시계로 사용되어 왔다.
2. 우리나라 물시계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물시계를 제작, 사용한 것은 ‘삼국사기’ 기록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는데 누각이라는 물시계가 신라에서 718년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된다. 그후 물시계를 만드는 기술은 일본으로까지 전해졌는데 서기 671년에 제작된 일본최초의 물시계 누각은 백제천문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고려시대에도 이용했을 것이나 전해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398년(태조 7년)에 경루라는 국가표준 물시계가 제작되었다. 이 물시계로 시간을 측정해서 종을 쳐서 밤시간을 알렸다. 이 종을 치던 종루가 있던 곳이 바로 종로이다. 세종 때에는 매우 정교한 자동시보장치가 붙은 물시계가 제작되었다. ‘세종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자격루는 장영실등이 2년여의 노력 끝에 세종 15년(1434) 6월에 완성해 경복궁 남쪽에 세워진 보루각에 설치되었다. 이 자격루는 조선왕조의 새로운 표준시계의 하나로 등장하였다. 자격루는 만들어진지 21년 만인 단종(端宗) 3년(1455) 2월 자동 시보 장치의 사용이 중지되었다. 장영실이 죽어 고장난 자동장치를 고칠 수 없었던 게 주요한 원인이었다고 생각되고, 그 후 14년 만인 예종(睿宗) 1년(1469) 10월에 다시 가동되었다. 자격루는 연산군(燕山君) 11년(1505)년 11월에 창덕궁으로 이전되었다. 그리고 성종대에 자격 장치에 의한 시보와 시간이 서로 맞지 않게 되면서 자격루가 창설된지 백년 만인 중종 29년(1534) 9월에 마침내 보루각자격루의 개조와 새 자격루의 제작이 착수되기에 이르렀다. 새로운 자격루는 중종 31년(1536) 6월에 완성하였다. 이 때 만들어진 자격루의 구조는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와 같은 것이었고 경점을 자격할 뿐만 아니라 인정,파루도 자격할 수 있게 개량된 것이다. 구.자격루는 경복궁 보루각에 옮겨져 여러 번 수리되면서 사용되다가 임진왜란 때 타버리고 새로 만든 자격루만 창덕궁 보루각에 여러 번 수리되면서 사용되었다. 효종 4년(1653) 시헌력시행(하루 100각제에서 96각제로 바뀜)으로 중종 때 만든 물시계는 자격부분을 제외한 누기 부분만 사용하였다. 결국 자격루에는 자동시보장치가 사라졌고 이후에는 사람이 수동으로 시간을 알리게 되었다. 현재 누기부분만이 덕수궁에 전시 보존되어 있는 상태이다.
3. 자격루
3.1 자격루의 제작 배경
우주와 자연의 이치, 인간본성의 문제와 인간사회의 도덕관을 다룬 성리학은 태조 이성계가 고려왕실을 무너뜨리고 중소지주출신의 신흥사대부와 함께 조선을 건국하면서 받아들이고 체계화한 학문이다. 성리학은 조선사회가 차츰 안정되어가면서 지배개념으로 굳어졌다. 이에 조선왕조의 체제, 제도의 정비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였다. 특히 천문학이 세종 때에 집중적으로 발달하였는데 유교사상에서 왕은 하늘의 뜻을 대행하는 자로 인식되고 제왕의 책무 중에서도 관천수시 즉 천기와 기후를 살펴 역법을 밝히고 백성들에게 농사지을 때를 가르쳐 주는 것이야말로 최우선의 과제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는 농업 진흥정책과 연결되어 자연히 농업발달에 도움되는 많은 과학 기기의 발명으로 귀결되었다. 조선 초에는 한양 한복판에 종루를 세워 큰 종을 걸고 물시계를 설치하여 아침저녁으로 종을 울려 백성들에게 일하고 쉬는 시각을 알려주는 파루와 인정제도를 시행함에 따라 연중 절기에 따라 변화하는 밤의 길이에 맞추어 이를 제때에 알릴 수 있는 정확한 계시기가 필요하게 되었다. 자격루가 제작되기 전에 설치된 물시계는 사람이 옆에 지키고 있다가 떠오르는 잣대의 눈금을 읽어서 시보하는 방식이었으므로 시각을 알리는 데에 착오가 잦았고, 이럴 경우마다 물시계를 지키는 사람은 벌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는데 이를 걱정하던 세종대왕은 장영실 등에게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시보가 가능한 물시계’를 개발하도록 명령하여 자동 시보장치를 갖춘 물시계를 만들었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자격루이다.
3.2 자격루에 대하여
자격루는 조선 세종 16년(1434)에 장영실 등이 제작한 물시계로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저절로 움직여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를 부착하여 제작되었다. 작동원리는 파수호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수수통에서 고이면 시간의 눈금이 있는 살대가 떠오르면서, 지렛대 원리의 자동조절장치를 움직여 스스로 종과 북과 징을 쳐 시간을 알려주도록 되었다. 제작 당시 자격루는 시계 장치의 움직임이 귀신과 같아서 보는 이마다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거의 완전하여 사람의 손이 필요치 않았다고 한다. 세종 16년(1434) 7월 1일을 기하여 세종은 자격루를 공식적으로 사용해 조선시대의 야간 표준 시계로 사용하였다. 굳이 자격루를 야간 표준 시계라고 한 것은 당시의 대표적인 천문관측기기인 간의가 태양 그림자에 의해 시간을 측정하였기 때문 해가 떠 있는 낮 시간 동안의 시간측정은 물시계가 아무리 정밀하다 하더라도 물의 마찰력 등이 수온에 따라 달랐으며 물의 유량에 많은 변수들이 좌우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간의의 정밀도에는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세종 때 자격루의 모습은 아쉽게도 현재 보루각기 속에 기록으로만 남아있지만 자격루의 본 모양은 우리가 국사책에서 보아온 단순한 기계장치만은 아니었다. 우선 그 크기만 보더라도 폭(가로)이 3미터, 높이가 5.3미터, 세로가 2미터 가량이고, 시보장치는 가로와 세로가 각각 2미터, 높이가 6미터로 그 규모가 집 한 채의 크기여서 사료에 의하면 자격궁루라고 하였다.(그림1,2참조) 물시계가 궁 안에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궁자를 붙였는데 보통은 이를 줄여 자격루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궁 안에 설치된 시계라면 궁중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던가? 그렇지 않다. 자격루의 가장 중요한 용도는 운종가(현 종로)에 세워진 종루의 대종에 정확한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종루 대종은 새벽과 저녁에 두 번 울려 도성 사람들의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려주었다. 세종대에는 현 보신각 서쪽 길 건너편으로 5층 5간의 종루가 높이 솟아 있었으며 거기에 보신각종보다도 훨씬 큰 대종이 달려 있었다고 한다. 자격루의 특징은 아날로그식 물시계와 디지탈식 시보장치를 연계시켜주는 아날로그/디지털변환기에 있다. 시보장치는 변환기에서 발생된 작은 신호를 증폭하여 큰 에너지를 발생시켜 시보인형들이 종, 북, 징을 울려주고, 십이시 시보인형을 차례로 전시하여 시간의 경과를 알려주는 이러한 방식은 동방 최초의 디지털식 계수기로 인류의 시간 측정사를 장식하는 위대한 발명이다. 현재 세계과학사가 서양위주로 구성되어있는데 자격루는 15세기 동양과학기술을 대표하는 제어계측 기술의 백미이며, 우리나라 자동제어사의 역작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발명이다.
3.3 자격루의 구조와 작동원리
자격루의 구조는 크게 세 가지 장치로 이뤄졌는데 계시장치와 시보신호발생증폭장치 그리고 보시장치이다.
1)계시장치
참고문헌
5. 참고자료
-문화재청 홈페이지
-국가문화유산종합정보서비스(www.heritage.go.kr)
-서울문화재 홈페이지
-한국과학기술사, 전상운, 정음사
-한국의 물시계, 남문현, 건대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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