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료 향수의 역사 화장품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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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향료(향수)의 역사는 인류 자체의 역사만큼 오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향수는 부귀와 세련됨의 정수이다. 인류는 자신을 치장하기 전에 향료를 통해 신을 포함한 다른 상대방을 매혹시켜 왔다. 최초에는 단순히 꽃이나 풀 또는 나무의 진을 사용하였다. 곧 나무의 진이나 향유(balm)가 열을 가하면 그 강도가 더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er fumus"(라틴어로 연기로서라는 뜻)라는 말은 문화적 사치 중에서 가장 고상한 것 중의 하나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좋은 향기의 영향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예수 탄생 이전 몇천 년 전부터 이미 향료의 제조법을 알고 있었다. 고대에는 향료물질에 대한 수요가 공급에 비해 매우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대에는 중국, 이집트, 페르시아 및 로마 등지에서 모두 신체나 주위의 물건에 무절제하게 향수를 뿌리고 다녔으며 부유한 사람은 향수를 뿌린 물로 목욕을 하기도 했다. 향수가 너무 과다하게 소비되자 지배계급은 비싼 금화가 향료 생산국에 유출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따라서 외국으로부터의 향료의 수입에 대한 금지조치가 취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향료를 취급하거나 생산하는 것은 명예로운 일로 여겨져서, 성직자나 주로 의사 또는 교육받은 이들에 의해 수행되었다. 또한 향료업이라는 것은 의학의 한 분야로 여겨지기도 했었다. 약초에 대한 고대 앗시리아의 기록에 의하면 의료용 약초에 대한 조성뿐 아니라 향료연고나 향수에 대한 기술이 있었고, 또한 향을 가진 음료가 구강의 악취를 치유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동양에서는 중국이나 아라비아가 문화적인 면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다. 아라비아인들은 향을 사용하는 즐거움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위생이나 의학에 대한 놀랄 만큼 진보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약초를 비롯한 다른 식물 및 동물에서 추출물들을 치료용이나 향장용으로 생산해내었다. 서양의 암흑시대인 중세에 아랍은 경험적인 지식만을 전해준 것이 아니라 두 가지의 과학적 환상을 같이 수출하였다. 연금약액(Phlilosophers stone : 비금속을 금으로 만든다고 함)과 만병통치약(Life elixir)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흔한 물질로부터 금을 만들려는 시도가 계속되었고, 이런 연금술사는 비록 위의 두 가지의 환상을 실현하지는 못하였지만 이들의 노력으로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는 유용한 방법들이 개발되었다. 이들은 유럽에 화약의 제법을 재발견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향료산업에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가치를 지닌 증류의 과정을 개발하였다.
이런 시절에는 서양에서는 동양으로부터 유입되는 보물이나 향료는 오로지 부자들만의 것이었다. 1202년에 베니스인은 콘스탄티노플이 점령되었고, 그 결과 동양으로 통하는 지중해의 해로에 대한 지배권을 갖게 되었다. 베니스의 세력과 부가 확장됨에 따라 유럽의 향료산업계도 번창하게 되었다. 많은 이국적 특산물들이 흘러 들어오게 되어, 비단, 자수품, 화려한 직조 카펫, 향신료, 향연고, 식물향료 등이 유입되었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사치품들을 더욱 요구하게 되었고, 이런 수입의 창구는 베니스였다. 향료 구성성분의 교역은 아랍인들의 과학의 진보에 의해 힘입은 바 크다. 즉, 증류기술 덕분에 향료물질을 추출물의 형태로 쉽게 운송할 수 있었다.
이런 동안에도 연금술사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금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으나 술을 정제함으로써 농축된 알코올을 만드는 방법을 터득하였다. 알코올의 생산으로 많은 관련 기술이 진보하였다. 즉, 알코올의 사용은 단지 마시는 것뿐만이 아니라, 약초나 향신료 및 향을 가진 식물로부터의 추출 및 추출물의 보관에도 쓰이게 되었으며, 의료행위를 비롯한 여러 가지 과정에 사용되어 이 당시에는 알코올에 대한 믿음이 매우 컸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시기에 로즈메리(rosemary)와 수지(樹脂)로부터 알코올로 추출한 Oleum Miracle 이라고 불리는 것이 생산되었다. 이것은 내복약으로 쓰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제조상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고, 그중 한 경우는 수지의 추출물을 제거해내고 남은 로즈메리 증류물을 묽혀서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Hungarian Water 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이것이 오데코롱(Eau de Cologne)의 효시가 되었다.
고대부터 중세의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향수제조자(perfumer)는 특수한 전공자로서 인식되었으며, 독일에서는 향수의 생산은 전적으로 성직자에 의해 행해지고 있었다. 수도원은 교육의 주된 중심지였으며 향수는 주로 의약의 용도로 제조되었다. 수도원에서 유럽시장에 알코올과 식물로부터의 추출물이 공급되고 있었다.
그러나 15세기에 들어서 이탈리아에서는 그 사정이 달라지게 되었다. 베니스는 동양에서의 물품이 들어오는 첫 번째 관문이 되었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매우 부유하게 되었고, 수입된 동양 및 비잔틴으로부터의 사치품들을 구입하였다. 이런 번영하는 도시나 국가에서의 상류층들은 향수가 생활의 필수품이 되었다. 15세기에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1453년 터어키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의 지배권이 넘어가게 되었다. 1489년에는 포르투칼이 아프리카 항해에 성공하였고, 1492년에는 서인도제도의 항로가 컬럼부스에 의해 개척되었다. 이때부터 해양을 개척하는 국가는 동양에서는 물론 나중에는 남미의 보물들을 자신들의 배로 실어 나르게 되었다. 이러한 지리학적인 발견에 즈음하여 르네상스가 북유럽에서 시작되었고, 예술 및 과학과 함께 향료산업도 발전하게 되었다. 헨리 2세의 아내인 메디치가의 캐서린은 현대적 향수를 프랑스에 소개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의심스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신부로 오는 여행에서 1533년에 그라스(Grasse)에 들렸을 때 프랑스 왕실에 향수의 제조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은 자국에서 약초를 중세로부터 의약용으로 재배 사용하고 있었다. 향을 가진 식물을 경작하였으며, 마르세이유를 통해 이국적인 식물향료를 수입하였다(곧 마르세이유는 비누산업이 번창하게 된다). 향장품 및 향수가 이탈리아인들과 마찬가지로 과량으로 소비되게 되었다. 르네라는 이름의 캐서린의 시종이 파리에 처음으로 이탈리아 향수판매소를 열었고, 여기에서는 향수 및 미용향연고를 함께 판매하였다. 그러나 향수의 제조는 파리가 아니라 그라스가 중심이었다. 남부프랑스는 지중해 알프스의 끝자락에 위치하는데, 피혁 가공산업의 중심지였으며 많은 무두질공장(tannnery)이 위치하고 있었다. 탄닌과 염료를 만드는 식물 및 화공원료가 근처의 마르세이유를 통해 수입되었다. 가죽을 무두질하는 사람들은 단지 숙련공인 것이 아니라 화학자이며 세일즈맨이었다. 가죽은 인류가 가장 많이 사용한 것 중의 하나이며, 왕실에서 향수를 상용하는 습관은 가죽류의 제품에도 사용되었다. 가죽류를 청소하는 방법이 개발되지 않았으므로 향수의 과도한 사용이 방치되었다. 그라스가 향수산업의 중심으로 발전하는 데는 몇 가지 지리학적인 이점이 있었다. 이 지역은 천혜의 약초 재배지로서 인도, 페르시아, 이브리아 반도에서 수입된 식물, 특히 시트러스 과일이 잘 자라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정향나무(clove), 월하향(tuberose), 쟈스민과 라벤더가 다량으로 경작되었다. 이외에도 숙련공 및 기술, 그리고 마르세이유를 통해 지중해로 연결되는 수출-수입에 매우 편리한 교통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15세기말에 사치와 화려한 삶, 왕실의 문화 등의 중심이 프랑스로 옮겨졌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향수의 기술도 같이 옮겨오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 전에부터 향수생산 시설이 프랑스에 있었으며, 이후에도 계속되어 프랑스의 중요한 상품이 되었다.
향수를 제조하는 방법은 그 후에도 계속 발전되었지만, 기본적인 기술, 즉 증류, 압착 및 추출의 방법은 지금도 계속해서 쓰이고 있는 중요한 과정이다. 현대에는 휘발성 용매에 의한 추출이 중요한 단계가 되고 있다. 에센셜 오일을 만들지 않는 쟈스민이나 월하향 같은 것은 증기증류의 방법이 개발되었다. 그러나 유지를 통해 추출하는 방법(enfleurage : 냉침법-꽃향기를 지방에 흡수시켜 향료를 제조하는 방법)은 그라스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행해졌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이 가운데 첫 번째 방법이 번창하게 된 화학공업에 의해 제시되었는데 휘발성 용매인 석유에테르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라스에서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바는 천연향료 물질의 수율 및 가공의 효율성의 증대였다. 반면 현대 향료산업의 개척자들은 독일의 실험실에서 발견할 수가 있었다. 이런 실험실에서의 목표는 실제 천연의 향료의 성분 및 구조를 알아내어 중요한 향료의 구성성분을 합성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고전적인 향료제조업자들은 이러한 실험실 내의 작업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으나, 새로운 발전의 방향을 돌리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여성은 이러한 새롭고, 신선하며, 자극적인 향수를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이 향수들은 종래 사용하던 꽃향기나 동양에서 유래한 향수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향수는 시간에 따라서 변화하는 생산물이었고, 지상에서 가장 기쁨을 주는 상품의 하나로 인식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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